탁자를 치우라고, 탁자 위를 좀 치우라고 잔소리 좀 고만 해.
뭔 장사 집 점포도 아니고 진열장 정리하듯 말끔하면 그게 뭔 사는 재미라고.
대충 밀어 놓기도 하고 우루루 쌓아 뒀다가 또 들고 나가기도 하고 뭐 그렇게 사는 거지

그냥 내 가진 것들 쳐다만 봐도 배가 부르니까
이것들 다 엇다 쓰는 거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안 쓰는 것들 내다 버리자고 야금야금 밀고 들어오지도 말고
재 놓은 물건때매 방구들이 꺼져도 좋고 꺼진 방구들에서 귀신이 나와도 좋으니까 가만 좀 내비 둬.
삼대 구년 거들떠도 안보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듣고싶은 비니루 LP도 있고
꿈자리 사나워 오밤중에 벌떡 일어나서 그게 뭐더라 뒤적거려보고싶은 삼십년 묵은 문고판도 있는 법이야.

그럴리가 있겠냐만
살다가 어느 날 돈 많이 생겨서 근사한 새 집 지어 이사 간다하면 그 때는 또 모르되
이 집 방구들 깔고 앉아 사는 동안에는 그냥 좀 편하게 살다 가게 내비 도.

그렇게 치우고 싶거든 니꺼나 좀 치워.

오늘은 뭘 하고 내일은 또 뭘 하냐고 내 방에 부지런쟁이 일귀신 불러 들여서 업고 댕기지 말고

사람이 오거나 가거나 밀어놓고 앉을 자리만 있으면 그만이지 뭔 손님맞이를 한다고

아 글쎄 있는대로 생긴대로 보고 듣고 살면 된다니까.  
부디 관절이 늘어질 때까지 게으름 피고 앉았다가 그냥 찬 물에 밥 말아서 마른 멸치나 고추장에 찍어서 먹자니까. 내 살도 썩어나가는 삼복에 이 눅눅한 장마철에 글쎄 웬 지청구는 그리 팔자로 늘어지냐는 말이지.  

 




 


컴퓨터 하드가 돌덩어리가 됐단다.
컴퓨터가 지 몸뚱이에 돌덩어리 달지 말란단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뭔 바이러스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다.
덕분에 글 수백편과 사진 수천장이 날아갔다.
워낙에 대형사고라서 그런지 실감이 안난다.
다행히 그동안 꾸역꾸역 블로그에 채워 놓은 것들과 이전에 드나들던 방에 남아있는 글들을 끌어모으면 글은 어지간히 메꿀 수는 있겠는데 올 초부터 반년 동안 찍었던 사진들은 영원히 사라진 셈인가.
혹시나 뭔 기계에 걸어서 돌려내면 데이터들을 다소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아 손이 오그라지는 걸 보면 아마도 그만한 돈을 들여서 찾을만 한 데이터들은 아닌가보다.
황망한 중에도 배가 고픈 걸 보면 뭐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으려나보다.
어쨌든 날아간 것들 찾을 길은 막연하고 텅텅 빈 컴퓨터 들고 앉아서 인터넷만 뒤적거리자니 꽤 허전하다.
돈으로 환산하지도 못할 찌끄레기들, 그거 붙들고 앉아 있으나 마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거 꽤 어지간한 뒷심이었는데.
되지도 않을 거 붙잡고 맴맴 돌지 말고 일찌감치 찬물 마시고 정신 채리라는 오마니 뜻인지도 모르겠다.

뭐, 
하도 황망하다보니 이리도 재 보고 저리도 기대보고 그런 거지 뭐.
짝에도 못 쓸 깡통.
후대에 물려 줄 중대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돌판에 새길 일이다.
하다 못해 점토판에 그려서 꿉어 놓든지.
이제 세상은 되돌릴 수 없는 디지털이지만
아날로그는 다 낡아 부서져도 흔적은 남는다.

아날로그 만세.
대를 이어 충성.


아날로그 by 아날로그

코닥 Tmax 400 + 니콘 F3

 

자전거

 MTB 처럼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원과 직선의 균형이 매우 아름다운 내 자전거.
나름대로 자전거에 대한 철학(소신?)은 확고하므로 나는 이것이 좋다.
산으로 끌고 올라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공도의 한 귀퉁이나 시골길을 달리는 데 갖가지 완충장치가 달린 복잡한 자전거는 필요치 않다.
모름지기 자전거라는 물건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안다면.



구속

 비바람이 많은 계절이라서인지 배들을 뭍으로 끌어 내서 묶어 두었더라.
묘한 느낌을 주는 풍경인데 제대로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오지 마!

그물 망 사이에 낀 생선을 후벼 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도둑 고양이.
그래. 먹어라. 먹고 살아야지. 그 생선 쥔장이라고 길냥이가 건드릴 걸 모르고 그리 뒀겠나.


노인과 바다

파도에 떠밀려 오는 해초들을 건져 올리는 노인들. 
먹으려고 건지는 건 아니겠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시멘트 바닥에다 넓게 펴서 말리는 걸 보면 어디다 거름으로 쓰려는지.
하기사 움직이는 모습이나 풍상에 찌든 얼굴이며 입성이 그런 걸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더라마는.
물도 맑았고 짭짤한 갯냄새 품은 바람도 괜찮았지만 내사 답답하기만 하더라.

 
//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의 의미가 일순 퇴색되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하던 순간에 옆구리를 찔리듯 찾아 오는 생각.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존재나 소멸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느낌. 예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듯 한 느낌.

나이가 들면 애착이나 집착이 느슨해 지는 것일까.
삶과 죽음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꽤나 천착해 본 적도 있었지만
때때로 일순간에 찾아 오는 이런 망연한 느낌이 이런 저런 미망에 대한 가닥 추림을 너무도 쉽게 끝내 버린다.  
우울증? 이런 것 과는 좀 다른데,
하여간 시간 속에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어떤 독소 같은 것 들이 있다.
그게 독인지 약인지는 얼마나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라는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담배 연기.

어구들을 대충 정리해서 던져 두고 배 뜨기 전 뭍의 지인들과 나누는
짧은 담소와
유쾌한 웃음과
저 한 모금의 담배 연기와
......갯냄새와 버무려 빨아들인 담배연기는 얼마만큼 맛있을까.


........
나는 왜 담배를 끊었을까.......


경매

다들 부둣가에서 서성이다가 배가 들어오는 족족 그 배 앞에서 번개처럼 시작해서 번개처럼 끝나는 경매.
그렇게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하는 경매는 처음 구경했다.
메가폰을 메고 있는 험상궂은 사내가 경매사.
뭔가 좀 친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 새벽 경매장에서 만큼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뭐를 잡아왔는고?

다라이 하나씩 들고 막 들어 온 배를 기웃거리는 새벽 어시장의 아낙들.
얼핏 보면 구경꾼처럼 보이는 저들도 모자 쓴 경매인들 못지않은 고수들이다.
직접 시장 좌판에 앉을 칼잡이들이라는 말이지.


경매가 끝나고 떠날 준비를 하는 똑딱이 어선.
배를 부두에 갖다 대서 경매가 끝날 때까지 길어봐야 고작 오분에서 십분?
뱃사람들은 앞뒤가 짧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
이제 저 배는 해안선을 따라 숱하게 흩어져있는 작은 포구 중의 하나로 스며들어서
닻을 내리고 젖은 그물을 던져놓고 긴 장화도 벗어 놓고 소금내 나는 손과 얼굴을 씻고
그리고 바닥도 없이 고단한 잠으로.. 
 
 


하필 날아가 앉은 곳이 다 타버린 숯덩이 위. 
니도 참 기구하다.




헬리오스 58/2




양촌리 출신 장관이 작품을 하나 만든 모양이다.
원체 연기자나 가수들에 열광해 본 적도 없고 그 사람들의 본색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그냥저냥 매끔하게 생긴 얼굴에 더러 교양프로그램에 나와서 대본 들고 제법 건전하게 한마디씩 해쌓길래
앗따 그냥반, 이름도 뭐 있어보이게 그럴싸 하더니 머리도 꽤나 있나보다 그러고 말았지.

그러다가 한 이삼년 전쯤인가
무슨 TV 프로그램에서 무슨 국토 순례를 한다고 배낭 매고 나와서는 한 마디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느닷없는 애국심 멘트를 늘어놓길래 얼추 짐작이 가데.

 
하여간에 그 때 느낀 것이, 아하, 이 사람, 이미지하고는 참 마이 다른 사람이구나. 
별로 관심이 안 가는 연기자여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랄 것도 없었지만, 

그렇지. 늘 보던 사람도 가까이 겪어보면 모르던 얼굴이 보이는데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그런데 뜬금없이 국토 순례는 왜 하지?......

그러고 난 뒤 얼마 안 있어서 연예란이 아닌 정치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덜커덕 한 자리 차지하시드만. 
꼭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걸 보고는 그 때 그 국토 순례를 보면서 느꼈던 의아함이 얼추 해소가 되는 듯 해서 그냥 혼자 피식 웃고 말았던 적이 있었네만.
 
여하튼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잘 생긴 배우 장관이 이번에는 회심의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한늬우스라는 구닥다리 문화의 부활에는 흥미가 있다는 말씀이지. 
안그래도 요즘 들어서 유소년기의 향수에 못이겨 이런저런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 있는 차에 아주 거국적으로 나랏돈 들여서 그 때 그 시절의 문화적 향수를 자극해 주겠다는 데야 고마운 일이고 말고.
다만 대한늬우스의 부활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속이 빤히 보이다못해서 요새 말로 손발이 다 오그라 드는 삼류 꽁트를 기획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지.

하도 떠들어 쌓길래 궁금해서 찾아봤지. 홍보가 아니라 코메디라길래. 

.......


'덮어놓고 사다보면 그으지꼴을 못면한다'는 11번가 광고가 백배쯤 더 재미있다. 
대한늬우스가 코메디가 아니라 그런 걸로 환심을 사 보겠다는 발상이 코메디라니까.
2009년의 민도를 너무 알로 봐도 너무 낮춰봤다. 물 갖고 장난 치기 전에 주변 참모들 물갈이나 좀 하지 그랬냐고.
.......이거 오래 가면 애먼 개그맨 애들 한 둘 잡을 수도 있겠는데.       



추신/
호흡이 짧아서 그래.
그 놈의 사대강인지 오대강인지를 홍보를 하고싶어서 목구멍에서 손이 올라 오더라도
그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 냈다면 일단은 한 숨 고르고 난 뒤에 좀 더 호흡을 길게. 
차후에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꺼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진짜 '코메디'를 선물했더라면 모르긴 해도 훗발이 꽤 괜찮았을걸? 그런 서비스 정신으로 한 일년 쯤 끌고 갔더라면 말이지.

아, 
인제는 늦었지. 만회하려고 발사숭을 해봤자 이미 간 다 봤네. 긔네 아니네 굳이 애 쓸 것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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