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MTB 처럼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원과 직선의 균형이 매우 아름다운 내 자전거.
나름대로 자전거에 대한 철학(소신?)은 확고하므로 나는 이것이 좋다.
산으로 끌고 올라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공도의 한 귀퉁이나 시골길을 달리는 데 갖가지 완충장치가 달린 복잡한 자전거는 필요치 않다.
모름지기 자전거라는 물건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안다면.



구속

 비바람이 많은 계절이라서인지 배들을 뭍으로 끌어 내서 묶어 두었더라.
묘한 느낌을 주는 풍경인데 제대로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오지 마!

그물 망 사이에 낀 생선을 후벼 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도둑 고양이.
그래. 먹어라. 먹고 살아야지. 그 생선 쥔장이라고 길냥이가 건드릴 걸 모르고 그리 뒀겠나.


노인과 바다

파도에 떠밀려 오는 해초들을 건져 올리는 노인들. 
먹으려고 건지는 건 아니겠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시멘트 바닥에다 넓게 펴서 말리는 걸 보면 어디다 거름으로 쓰려는지.
하기사 움직이는 모습이나 풍상에 찌든 얼굴이며 입성이 그런 걸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더라마는.
물도 맑았고 짭짤한 갯냄새 품은 바람도 괜찮았지만 내사 답답하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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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의 의미가 일순 퇴색되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하던 순간에 옆구리를 찔리듯 찾아 오는 생각.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존재나 소멸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느낌. 예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듯 한 느낌.

나이가 들면 애착이나 집착이 느슨해 지는 것일까.
삶과 죽음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꽤나 천착해 본 적도 있었지만
때때로 일순간에 찾아 오는 이런 망연한 느낌이 이런 저런 미망에 대한 가닥 추림을 너무도 쉽게 끝내 버린다.  
우울증? 이런 것 과는 좀 다른데,
하여간 시간 속에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어떤 독소 같은 것 들이 있다.
그게 독인지 약인지는 얼마나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라는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담배 연기.

어구들을 대충 정리해서 던져 두고 배 뜨기 전 뭍의 지인들과 나누는
짧은 담소와
유쾌한 웃음과
저 한 모금의 담배 연기와
......갯냄새와 버무려 빨아들인 담배연기는 얼마만큼 맛있을까.


........
나는 왜 담배를 끊었을까.......


경매

다들 부둣가에서 서성이다가 배가 들어오는 족족 그 배 앞에서 번개처럼 시작해서 번개처럼 끝나는 경매.
그렇게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하는 경매는 처음 구경했다.
메가폰을 메고 있는 험상궂은 사내가 경매사.
뭔가 좀 친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 새벽 경매장에서 만큼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뭐를 잡아왔는고?

다라이 하나씩 들고 막 들어 온 배를 기웃거리는 새벽 어시장의 아낙들.
얼핏 보면 구경꾼처럼 보이는 저들도 모자 쓴 경매인들 못지않은 고수들이다.
직접 시장 좌판에 앉을 칼잡이들이라는 말이지.


경매가 끝나고 떠날 준비를 하는 똑딱이 어선.
배를 부두에 갖다 대서 경매가 끝날 때까지 길어봐야 고작 오분에서 십분?
뱃사람들은 앞뒤가 짧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
이제 저 배는 해안선을 따라 숱하게 흩어져있는 작은 포구 중의 하나로 스며들어서
닻을 내리고 젖은 그물을 던져놓고 긴 장화도 벗어 놓고 소금내 나는 손과 얼굴을 씻고
그리고 바닥도 없이 고단한 잠으로.. 
 
 


하필 날아가 앉은 곳이 다 타버린 숯덩이 위. 
니도 참 기구하다.




헬리오스 58/2




양촌리 출신 장관이 작품을 하나 만든 모양이다.
원체 연기자나 가수들에 열광해 본 적도 없고 그 사람들의 본색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그냥저냥 매끔하게 생긴 얼굴에 더러 교양프로그램에 나와서 대본 들고 제법 건전하게 한마디씩 해쌓길래
앗따 그냥반, 이름도 뭐 있어보이게 그럴싸 하더니 머리도 꽤나 있나보다 그러고 말았지.

그러다가 한 이삼년 전쯤인가
무슨 TV 프로그램에서 무슨 국토 순례를 한다고 배낭 매고 나와서는 한 마디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느닷없는 애국심 멘트를 늘어놓길래 얼추 짐작이 가데.

 
하여간에 그 때 느낀 것이, 아하, 이 사람, 이미지하고는 참 마이 다른 사람이구나. 
별로 관심이 안 가는 연기자여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랄 것도 없었지만, 

그렇지. 늘 보던 사람도 가까이 겪어보면 모르던 얼굴이 보이는데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그런데 뜬금없이 국토 순례는 왜 하지?......

그러고 난 뒤 얼마 안 있어서 연예란이 아닌 정치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덜커덕 한 자리 차지하시드만. 
꼭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걸 보고는 그 때 그 국토 순례를 보면서 느꼈던 의아함이 얼추 해소가 되는 듯 해서 그냥 혼자 피식 웃고 말았던 적이 있었네만.
 
여하튼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잘 생긴 배우 장관이 이번에는 회심의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한늬우스라는 구닥다리 문화의 부활에는 흥미가 있다는 말씀이지. 
안그래도 요즘 들어서 유소년기의 향수에 못이겨 이런저런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 있는 차에 아주 거국적으로 나랏돈 들여서 그 때 그 시절의 문화적 향수를 자극해 주겠다는 데야 고마운 일이고 말고.
다만 대한늬우스의 부활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속이 빤히 보이다못해서 요새 말로 손발이 다 오그라 드는 삼류 꽁트를 기획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지.

하도 떠들어 쌓길래 궁금해서 찾아봤지. 홍보가 아니라 코메디라길래. 

.......


'덮어놓고 사다보면 그으지꼴을 못면한다'는 11번가 광고가 백배쯤 더 재미있다. 
대한늬우스가 코메디가 아니라 그런 걸로 환심을 사 보겠다는 발상이 코메디라니까.
2009년의 민도를 너무 알로 봐도 너무 낮춰봤다. 물 갖고 장난 치기 전에 주변 참모들 물갈이나 좀 하지 그랬냐고.
.......이거 오래 가면 애먼 개그맨 애들 한 둘 잡을 수도 있겠는데.       



추신/
호흡이 짧아서 그래.
그 놈의 사대강인지 오대강인지를 홍보를 하고싶어서 목구멍에서 손이 올라 오더라도
그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 냈다면 일단은 한 숨 고르고 난 뒤에 좀 더 호흡을 길게. 
차후에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꺼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진짜 '코메디'를 선물했더라면 모르긴 해도 훗발이 꽤 괜찮았을걸? 그런 서비스 정신으로 한 일년 쯤 끌고 갔더라면 말이지.

아, 
인제는 늦었지. 만회하려고 발사숭을 해봤자 이미 간 다 봤네. 긔네 아니네 굳이 애 쓸 것 없다니까.


   

이른 아침의 방문객

큰 소나무 아래

일출 1

일출 2



헬리오스 58/2


이거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

이발소며 여염 집이며 하다 못해 수학여행 기념품 연필꽂이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배경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도 있었고.
금언과 격언의 남발시대였을까. 
지리산 기슭에서 반벌거숭이로 뛰어다니던 그 때 그 시절, 나는 '인내'라는 것이 무슨 식물 이름인줄 알았다. 
식물 아니면 '그 열매'가 왜 나오겠냐는 말이지.

그리고 베토벤.
나는 이 쑤세미 머리의 베토벤이 그 때 그 시절의 이발소며 여염집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걸려 있어야 할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며, 더우기나 아예 음악이나 예술 전반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었던, 참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었던 사촌 형의 공부방에 이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던 까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촉발시킨 첫 그림. 오늘도 무사히.
그 때 그 시절 급행버스 운전수 앞쪽 벼름박이나 택시 '다찌방'에는 거의 반드시 있었다.
멀미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한 버스 앞유리창 벼름박에는 비로드에 노란 술 달아 흔들흔들 멋진 커튼까지 걸쳐놓고 
그 한 가운데 쯤에는 반드시 오늘도 무사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뒤적거리던 해 묵은 오디오 잡지의 탐방기사 사진에서
아마도 그 집 안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 스킬 자수의 이 그림을 보았고,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수십년을 휘돌아서 어릴 때 보았던 그 뽀얗고 예쁘게 생겼던 소녀의 기도가 괜히 다시 보고싶어져 안달이 났었지.

내가 이런 그림을 줏어다 모은다 했더니
뜬금없는 웬 박학다식한 안다이박사 왈,  
그건 소녀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이며,
누구라더라, 거시기, 하여튼 유명한 서양화가의 그림이 원본이라드만,
하지만 그 말씀이야 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으로 유식한 말씀이지. 

이 그림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오늘도 무사히'이며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시절 한국의 고물 급행버스 운전사를 아버지로 둔 어여쁜 소녀였더라는 말씀이니
이런 엄연한 사실 앞에서 원본이 어떻고 구약성경이 어떻고
영국 화가 거시기며  다니엘이니 사무엘이니 개 풀뜯어먹는 소릴 말라는 말씀이야.

길을 막고 물어 봐 봐.
모사건 베껴 그렸건 네다바이를 해 먹었건 간에 어쨌든 이제 이 그림은 이 나라에서 만큼은  난공불락의 네오크라식이라니까. 
그러게 참 벨일이다. 뜬금없이 이게 왜 보고싶었지?
구할 수 있다면 하나 구해서 우리집 벼름빡에 액자해서 걸어놓고싶구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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