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방문객

큰 소나무 아래

일출 1

일출 2



헬리오스 58/2


이거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

이발소며 여염 집이며 하다 못해 수학여행 기념품 연필꽂이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배경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도 있었고.
금언과 격언의 남발시대였을까. 
지리산 기슭에서 반벌거숭이로 뛰어다니던 그 때 그 시절, 나는 '인내'라는 것이 무슨 식물 이름인줄 알았다. 
식물 아니면 '그 열매'가 왜 나오겠냐는 말이지.

그리고 베토벤.
나는 이 쑤세미 머리의 베토벤이 그 때 그 시절의 이발소며 여염집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걸려 있어야 할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며, 더우기나 아예 음악이나 예술 전반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었던, 참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었던 사촌 형의 공부방에 이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던 까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촉발시킨 첫 그림. 오늘도 무사히.
그 때 그 시절 급행버스 운전수 앞쪽 벼름박이나 택시 '다찌방'에는 거의 반드시 있었다.
멀미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한 버스 앞유리창 벼름박에는 비로드에 노란 술 달아 흔들흔들 멋진 커튼까지 걸쳐놓고 
그 한 가운데 쯤에는 반드시 오늘도 무사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뒤적거리던 해 묵은 오디오 잡지의 탐방기사 사진에서
아마도 그 집 안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 스킬 자수의 이 그림을 보았고,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수십년을 휘돌아서 어릴 때 보았던 그 뽀얗고 예쁘게 생겼던 소녀의 기도가 괜히 다시 보고싶어져 안달이 났었지.

내가 이런 그림을 줏어다 모은다 했더니
뜬금없는 웬 박학다식한 안다이박사 왈,  
그건 소녀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이며,
누구라더라, 거시기, 하여튼 유명한 서양화가의 그림이 원본이라드만,
하지만 그 말씀이야 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으로 유식한 말씀이지. 

이 그림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오늘도 무사히'이며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시절 한국의 고물 급행버스 운전사를 아버지로 둔 어여쁜 소녀였더라는 말씀이니
이런 엄연한 사실 앞에서 원본이 어떻고 구약성경이 어떻고
영국 화가 거시기며  다니엘이니 사무엘이니 개 풀뜯어먹는 소릴 말라는 말씀이야.

길을 막고 물어 봐 봐.
모사건 베껴 그렸건 네다바이를 해 먹었건 간에 어쨌든 이제 이 그림은 이 나라에서 만큼은  난공불락의 네오크라식이라니까. 
그러게 참 벨일이다. 뜬금없이 이게 왜 보고싶었지?
구할 수 있다면 하나 구해서 우리집 벼름빡에 액자해서 걸어놓고싶구마는..
산에 오르기 시작할 때 부터 엷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비가 올 듯도 했지만.
산정에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 바다에서 뭍으로 안개가 흐르기 시작했다.

바다 안개가 뭍으로 흘러드는 모습은 볼만하다. 
그 양이 하도 어마어마해서 때로는 만화같은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슨 생물체처럼 무리 지어서, 혹은 진득한 액체처럼 슬금 슬금 낮은 곳부터 흘러드는 해무,
혹시나 그 흐르는 안개 속에 전설의 바다 용이 숨어 드는 것은 아닐까, 만화같은 상상도 잠시 해 보고.
아, 정말 다 말라 붙은 상상력이라니.

어쨌든 안개는 꽤나 매력있는 거시기다. 분위기 잡기로는 밤안개가 그 중 으뜸이고.
내 고향은 안개가 많다. 밤안개도 잦고.
하지만 고향은 멀고 오래 되었으니 오늘은 그냥 밝고 건전하게 새벽 안개로 만족하기로.





낙수를 잡았는데 빗방울은 덤으로 찍혔다.



오일장.
새벽부터 비 오는 바람에 아침부터 파장 분위기.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재미도 없고 흥도 안나고.
그래도 어떻든 먹고 살기는 살아야 하고.
사물의 크기가 반드시 그것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것저것 생각 해 볼 겨를 없이 그냥 압도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새벽 등산길에 찍은 사진이다. 
해를 찍은 사진이지만 사진을 꺼내서 보다보니 오히려 그 아래 엑스트라로 등장한 배에 자꾸 눈이 간다.
바다를 내려다 본 각도 때문인지 하늘의 크기에 비해 작아도 너무 작아 보인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랬다는 것이 우습지만 이걸 보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해를 바라본 각도가 좀 낮았더라면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빛이 다르면 사물도 많이 달라 보인다.
사진은 참 재미있다. 시공 속의 사물을 국한시키고, 그걸 보고 또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카메라는 재미있는 물건이다.    





아침 산보길에.
등산을 끝내고 산을 돌아 나가는 길에서 만난 트럭.
초소 근무를 끝내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대기조 출동이었는지 신새벽에 일개 분대쯤이 단독 군장으로 졸고 앉아 있었다.

고생스럽기야 말해 뭐하랴마는
그래도 겨울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사나흘 워카 끈도 제대로 못 풀고 패대기 치다가 꼭두 새벽에 비상 걸려서 트럭 꼭대기에 달아놓은 캐리바 30인지 뭐였는지 다 썩은 기관총 붙들고 서서 한겨울 김포반도 칼바람.... 
춥기도 더럽게 춥더라마는 꼭 추워서만 이가 갈리나?
벌써 한 삼십년 다 됐구나. 지금 가서 더듬어보면 그 부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라나.
.........
사람이 낡기는 참 많이도 낡았나보다. 이제는 별 게 다 그립구나.







    


날이 갈 수록 손이 뜸해지는 LP.
불편함과 귀찮음, 
하지만 하도 오래 돼서 오히려 그런 불편함과 귀찮음이 더 익숙해진 물건. 턴테이블.
전원을 넣고 판을 얹고 돌리자면 조금은 부지런을 떨어야하지만
정작 올려놓고 몇 곡 듣자하면 그 모양은 참 지극히 게을러보이는 배신자.
중언부언 해 봤자 어차피 끝까지 안고 갈 것이 뻔한(그렇게 보이는) 애물단지.
그래도 아직은.
그래.
이것도 이 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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