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한 접.
이 집은 사람이 산다.


이 집은 빈 집이다.
집은 참 이상하다. 쓰지 않고 아껴 두면 저절로 낡아버린다.
사람이 부대끼고 만져야 집이 살아난다.
이 집은 수삼년 전에 묘지 문제로 동네 사람들과 크게 한 번 다투고 난 후로 마을을 떠나버렸다.
이 쪽이건 저 쪽이건 내사 상관은 없었지만 
몇 달 동안 그 추운 겨울에 움막 짓고 묘터를 지키던 동네 사람들의 극성을 보면 나라도 버티지 못하고 떠났을 것이다.

비어버린 지가 벌써 수삼년인데 씨강냉이는 누가 걸어두었을까.

여기는 이웃 마을의 또 다른 빈 집.
이 쪽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뭔 작업을 한답시고 이 집의 아랫채 방을 빌려서 썼던 적이 있다. 
그 때 집 주인 할머니는 이 집을 떠났는지 세상을 떠났는지...
잠도 자지 않고 쓰지도 않는 화장실세를 내노라고 어깃장을 놓던 사람이라 별로 그립지는 않지만. 

이십년을 살면서 오늘 처음 들어가봤던 골목.
결국 나오는 구멍은 아는 길이드만 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멀찌감치 보이는 집의 앞집에 처음 이사를 왔었다. 포니네 집. 포니는 강아지 이름이다.
그 집 아주머니 건강이 좋지않아 보였었는데 어떠신지.
그 앞으로 지나치는 김에 안부라도 물어 볼 양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주변머리가 없어서 담 너머로 한 번 기웃거리다가 그냥 와버렸다.


남의 집 지붕.
바람이 많은 동네라 부실한 지붕은 이렇게 잡동사니들로 눌러놓아야 하는 모양이다.
하기는 마른 하늘에 단지 바람 때문에 휴교를 한 적이 있는 동네이니 오죽하랴 싶긴 하다.  

처마 밑에 메주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 해 농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다.
농사도 지을 줄 모르고 농사에 대해서는 개 코도 아는 바 없지만
촌에서 한 이십년 살다보니 얼추 그리 짐작이 가더라.


농사건 뭐건 다 사람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며
살아 보니 그 먹고 사는 일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장(醬)이더라.
장이 맛이 없으면 한 해를 시달리고
장이 잘 되면 한 해가 입이 즐겁다.
장이 맛있으면 한 해 입 걱정을 덜고 장이 잘 못 되면 한 해 근심을 달고 사는 법이지.  

가을 들판이 비고 하늘에 철새들이 날고
그리하여 논 농사 밭 농사 다 거두고 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메주.

한 해 농사의 끝은 메주.
그리고 한 해 농사의 시작은 정월 장 담그기.
 

얼마 지나면 집집마다 줄줄이 달리겠지만
일단은 눈에 보이는 첫 집의 메주를 기념하여.


......

추신/
이맘 때면 달리기 시작하는 메주는,
댓돌 아래 가지런한 비니루 슬리퍼처럼
해만 지면 아득히 잦아들어서 깜깜한 지붕 아래 간신히 어른거리는 푸르스름한 TV 불빛이 또한 그렇듯이
인기척도 없이 쥐 죽은 듯 고요한 그 집에 아직 사람이 살아 있어 양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깃발이기도 하다.

맨날 뒷동산 아니면 동네 앞바다 밖에는 갈 데가 없으니 맨날 같은 그림이다.
모쪼록 시내 나들이를 해서 뭔가 분주하고 탄력있는 그림도 맹글어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싸돌아다녀야 솟증이 풀릴 것 같아서 해가 기웃 할 때 또 잠시 땡땡이를 쳐 본다.

부경 2리.
건조대를 횃대처럼 붙들고 앉은 갈매기들.
멀리 보이는 게 포항 신항만 등대인지 아니면 좀 더 가까운 곳인지....

부지런한 바닷가 아지매들.
갯가 사람들은 말 보다 몸이 더 빠르다.

오후 네 시가 좀 넘었는데도 벌써 저녁 시간 같은 색깔이다.
각도 때문인지 아주 작은 포구인데도 제법 커 보인다.


까치밥.
맨날 배 하고 물만 찍나 싶어서 부러 만들어 본 그림.

회리 가는 길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k135/2.5는 나하고 배짱이 잘 맞는 모양이다.
때로는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를 이어 충성할 만 하지 아니한가.




해가 빨리 지는 구계항.
왼쪽으로 산을 끼고 달리는 7번 국도 바로 아래 있는 마을이라서
가을 겨울이면 오후 네시 쯤이면 해가 넘어가버린다.
해 지는 포구를 찍어보고싶어 매번 시도하지만 노을도 지기 전에 밍숭맹숭하게 픽 넘어 가버리는 해를 보면 그만 서해안으로 이사를 가고싶어진다. 
그래서 해 지는 구계항은 늘 산 마루에 해가 간당간당 걸려 있는 오후 네 시 전후에 줄타기를 한다. 

물비늘 뜨기.
분명 사람이 없는 배였는데 사람의 그림자같은 것이 보여서 놀랐던 사진.
가스 통이구만.


생선 상자

배의 앞부분이 이물인지 고물인지 몰라서 찾아봤다.
이물이다.
밧줄을 감아 돌리는 저런 말뚝들도 따로 이름이 있을텐데 선박에 쓰는 용어는 아는 것이 없다. 



이제 해가 떨어진다.
해가 산 능선에 걸리기만 하면 바다는 금세 빛을 잃어버린다.
그림도 생기가 없어진다. 적적한 그림이다.

 

가마솥과 땔감들. 뭘 하던 솥일까.

녹 슬어 부러진 닻. 그리고 생선 궤짝. 

집으로 들어 오는 길에 옆집 마당의 고추. 
바닥에 깔린 저런 싸리 발은 탐나는 물건이다. 재료가 있다면 두어개 만들어 놓고싶다.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보고 바닷가로 달렸는데
갈매기는 다 놓치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니 날씨는 춥고
그냥 심심한 돌만 찍었다.
새 식구를 들였으니 사랑 땜을 해야지.
삼곤이로 찍어 보니 맨날 보는 돌도 좀 달라 보이네. 삼곤이에 눈이 멀었나보다.

그냥 뻥 뚫린 바다 그림 세 장.



덕분에 현역으로 열심히 견마지로를 다 하던 16 45랑 50.7은 팔려 나가고 렌즈가 광각 쪽으로 쏠렸다.
16 45가 나간 자리는 번들2가 대타로. 

동네 앞의 갈대밭.
예제 사진에 올라 온 갈색 톤에 혹해서 들여 온 구식 렌즈.

갈색 톤이 무겁고 초점이 잘 맞은 부분은 기분 좋을만큼 예리하게 잘 잘라진다.

동네 앞의 갈대밭.
정체불명의 홀애비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을 배경으로..

강구항.
테스트 겸해서 역광으로 눈싸움. 대놓고 마주보지만 않으면 괜찮은 듯.


강구항.
강풍으로 발 묶인 오징어 배들.

역시 강구항.

풀. 아니면 바다. 아니면 동네 주변.
좀 다른 것도 담아 보고 싶은데 짬이 안 난다. 
삼곤이는 내 체질에 잘 맞는다. pentacon 35/3.5  


24mm 를 구하기로 했다.
16-45를 갖고 있지만 제아무리 뛰어나다느니 어쩌니 해도 줌은 줌일 뿐이다.
나도 칼날같은 광각을 갖고 싶다는 말씀이지.
시그마 24mm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심한 후핀.

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판매자와 핀 확인차 두 번을 주고 받는 줄다리기 끝에 반품. 송료만 날렸다.
궁여지책으로 다시 시그마 28-70을 사들였지만 역시 광각에서 후핀.<- 단렌즈를 사자고 시작하고서는 이게 무슨 헛짓인지. 마음이 후달리면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습성. 
그래도 이번에는 구매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해 두었으므로 그다지 신경 곤두서는 일 없이 반품.
역시 송료는 날렸다.

시그마가 맞지 않는 것인지 자동 렌즈가 맞지 않는 것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근 열흘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시그마', 혹은 '자동렌즈', 라면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을만큼 정이 뚝 떨어져버렸다. 
 점점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가급적 자동렌즈를 구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래도 미더운 건 역시 구식 수동 렌즈다.

그렇게 거의 2주일을 허비 한 끝에 찾아 낸 것이 타쿠마 24.

기대 반 걱정 반 끝에 받아보니 이게 도대체 40년 묵은 렌즈가 맞는지.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깨끗하다.
캡과 케이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마운트의 나사산에 도색도 벗겨지지 않은 물건.
액운은 시그마가 갖고 가고 이번에는 운이 닿았나보다.
결과물도 마음에 닿는다. 좋은 렌즈다.

며칠을 집 주변만 뱅뱅 돌다가 오일장 근처의 오십천변으로 첫 나들이를 했다. 

대궁만 남은 것들 중에 겨우 찾아 낸 분홍색 코스모스

상투적인 테스트. 키다리 강아지 풀

달걀 후라이 개망초. 왜 푸른 빛이 돌지? 

이름을 모르는 식물.  
아무래도 구식 렌즈라 역광에는 좀 약하다. 플레어 발생.

갈대밭인 듯?

역시 강아지 풀.

늪? . 늪이라기에는 너무 작은 물 웅덩이. 그렇다고 연못도 아니고.


이상으로 M42 Super Takumar 24mm F3.5와의 첫 대면 끝.
조리개라든지 셔터 스피드는 기록이 남지 않은 관계로 생략.
시간상 한낮이라 썩 마음에 드는 그림은 없지만 그럭저럭.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빛 좋은 시간에 다시.
16-45는 이제 편히 쉬든지 아니면 팔아 묵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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