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피터 85 구한다고 장터 돌아 다니다가 충동 구매한 35미리.
야시논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했던 야시코(야시코르?). 대체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하긴 뭐 족보 따져서 뭐하게. 적통이건 서출이건 그림만 잘 나오면 그만이지.
야시카 답게 푸른끼가 역력한데다가 역광에서조차 새파란 고스트가 한 다발이다.

그래도 그 푸른끼 덕에 서늘해진 이런 그림은 기분 좋다.
둑길에서 본 오십천변 

억새.

플레어와 고스트.
그나마 어중간하게 흐리멍덩한 누런 색이 아니라서 그나마 좀 나은 편.
없는 것 보다는 불편하지만 억제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존재감이 뚜렷한 것이 낫지.

그늘에서 도드라지는 푸른색. 야시카는 푸르다.


안동 나들이 갔던 날.
큰 아이 시험 치르는동안 즉흥적으로 들렀던 산사.
참 오랜만에 갔던 절 구경.
기대 없이 무덤덤하게 올랐다가 눈호강을 했던 절집.
비구니 절인듯 여승들만 오락가락.

문패는 이렇게 생겼다.
이것저것 읽어보는 습성이 아니라서 모르긴 하지만 꽤 멋져 보이는 서체.
서까래와 추녀 끝이 어울려서 제법 그윽하다.

석등이었는지 석탑이었는지 기억이 벌써 아심하다.
총명탕이라도 한 제 달여 먹어야지 벌써부터 잊음이 이렇게 헐해서야 어디. 젠장.

대웅전.

마침 수능날이어서인지 대웅전에는 기도 소리가 낭자하고
대웅전 디딤돌(木?) 아래에는 엄마들의 신발이 한 짐.....
그렇다면 새끼 시험 치르는데 기도는 못 할 망정 한가하게 절집 구경이나 하고 싸돌아댕긴 나는 아주 빵점 애비인지...
희거나 껌거나 그들의 간절한 자식 사랑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내 새끼 잘 되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 몰라도 불자건 기독자건 '거두절미하고 일단 내 새끼 잘 되게 해 달라'고 뉘한테 비는 이기적인 행태는 내사 도무지 이해도 안 가고 시덥게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라 그것 또한 각자 나름대로 신념대로 행할 일이다. 

선방. 

아마도 살림방인듯.

여기도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러게 사진을 찍어오면 그날 그날 지체없이 정리하고 기록을 해 둬야지
뭐 그리 분주한 일도 없으면서 이리저리 시간은 다 흘려보내고 세월따라 기억도 흘려 보내고...
어쨌든 이 돌 계단 위에 있는 저 집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의 촬영지라던데.

과연 그만한 운치가 없지는 않았던 듯. 
꽤나 고즈넉하고 그윽한 집.

그 집의 뒤꼍. 

 

11월 12일
수능 기념으로 온 식구가 안동 나들이를 했다.
정작 시험을 치른 큰 아이는 멀쩡한데
그날 밤부터 애 엄마와 작은 놈까지 앓아누워서 아주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대체로 스케줄에 사람을 얽어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앞으로는 모쪼록 조금이라도 무리한 일정은 강행하지 말지어다.


대원 카도크 옆의 낡은 건물.


안동대학교 캠퍼스.
숙소와 가까운 덕에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안동대 주변. 34번 국도변.


안동대학교 정문 앞 교차로 부근.


안동대학교 교정의 잔디밭에 떨어진 낙엽.

일주일간 갱신을 못하고 앓아서 입안이 헐어버린 작은 놈과 
알레르기 천식 환자라 신종 플루 고위험군인 큰 놈의 감기 때문에 병원 나들이를 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상황이나 시간에 대한 여유는 조금만치도 없어지고 신경 끝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와진다.
겉 모습의 평정을 이만큼이라도 유지하는 것도 대단히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빵을 산다길래 빵집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며 뒷 유리창을 들여다 본다.
먼지 자욱한 유리창에 먼지 자욱한 일상. 

나는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인데 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제 멋대로 바뀌어간다.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있으면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아서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른다.
통제되지 않는 풍경이라도 때로는 비슷하게나마 내 의도를 반영할 수 있다.
또한 내 의도와 조금씩은 어긋나야 좀 더 신선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오토바이 때문인지 물 날아간 거리 풍경이 더해져서 동남아시아의 어느 거리같은 낯 선 느낌이 든다.

동행인 듯한 행인 둘.

시내 나들이를 하면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과 생동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다.
마음이 부대끼지 않을 때면 더러 나들이를 하고싶다. 


열이 안잡혀서 병원 응급실에 간 우리집 꼬맹이.
그 옆 침대에 누워 손등에 링겔을 꽂고 있던 어느 할머니 가족.

뭔 일인지 심사가 사나운 할머니/
썩을녀러 손. 밥 좀 사오라캤드마 배도 안고픈데 뭔 밥을 벌써 묵냐고
지 배애지가 부르마 넘 배고픈 중도 모린다.(아마도 조금 전에 응급실을 슬그머니 빠져나간 할아버지를 말하는 듯) 

일생 저란다. 야아야 나가서 머라도 좀 사오이라. 


며느린지 딸인지 나가서 밥 사옴.

여전히 심통이 난 할머니/
간호원! 이거 안 빼주나. 이거를 빼 조야 밥을 묵지. 

며느린지 딸인지/
어머이. 고마 그래 묵으소. 밥 묵는다꼬 그거를 또 빼고 꼽고 그라것나.

할머니/
이래 가꼬 밥을 우째 묵노. 아나 봐라 간호원!! 이거 좀 빼 주라카이!!!

예의 바른 간호사1/
할머니, 이거는 이러쿵 저러쿵 그래서 꽂고 계셔야 합니다. 꽂은 채로 그냥 밥 드시면 돼요.

할머니/
이거를 이래가꼬 밥을 무라꼬!!! 손목대기에다가 줄로 칭칭 감고 이래 우찌 밥을 묵으라꼬!! 줄을 빼야 밥을 묵지!!

예의 바른 간호사1/
그냥 드셔도 아무 상관 없으니까 앉아서 식사하세요.

신경질 난 할머니/
그랑께 이거를 밥 물때까지마 좀 빼도라카이. 손에다가 줄을 감고 밥을 우째 무그라꼬!!

멀찌기서 보고있던 예쁘장하고 야무지게 생긴 간호사2 쪼르르 잰 걸음으로 와서/
할매! 그거는 빼모 안된다. 안 빼고 묵어도 안 죽는다. 자꾸 떠들지 말고 고마 무라!!

갑자기 기 죽은 할머니/
운냐. 알았다.

너무 웃겨서 입만 딱 벌리고 소리도 못내고 뒤집어 지는 며느린지 딸인지... 



마늘 한 접.
이 집은 사람이 산다.


이 집은 빈 집이다.
집은 참 이상하다. 쓰지 않고 아껴 두면 저절로 낡아버린다.
사람이 부대끼고 만져야 집이 살아난다.
이 집은 수삼년 전에 묘지 문제로 동네 사람들과 크게 한 번 다투고 난 후로 마을을 떠나버렸다.
이 쪽이건 저 쪽이건 내사 상관은 없었지만 
몇 달 동안 그 추운 겨울에 움막 짓고 묘터를 지키던 동네 사람들의 극성을 보면 나라도 버티지 못하고 떠났을 것이다.

비어버린 지가 벌써 수삼년인데 씨강냉이는 누가 걸어두었을까.

여기는 이웃 마을의 또 다른 빈 집.
이 쪽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뭔 작업을 한답시고 이 집의 아랫채 방을 빌려서 썼던 적이 있다. 
그 때 집 주인 할머니는 이 집을 떠났는지 세상을 떠났는지...
잠도 자지 않고 쓰지도 않는 화장실세를 내노라고 어깃장을 놓던 사람이라 별로 그립지는 않지만. 

이십년을 살면서 오늘 처음 들어가봤던 골목.
결국 나오는 구멍은 아는 길이드만 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멀찌감치 보이는 집의 앞집에 처음 이사를 왔었다. 포니네 집. 포니는 강아지 이름이다.
그 집 아주머니 건강이 좋지않아 보였었는데 어떠신지.
그 앞으로 지나치는 김에 안부라도 물어 볼 양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주변머리가 없어서 담 너머로 한 번 기웃거리다가 그냥 와버렸다.


남의 집 지붕.
바람이 많은 동네라 부실한 지붕은 이렇게 잡동사니들로 눌러놓아야 하는 모양이다.
하기는 마른 하늘에 단지 바람 때문에 휴교를 한 적이 있는 동네이니 오죽하랴 싶긴 하다.  

처마 밑에 메주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 해 농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다.
농사도 지을 줄 모르고 농사에 대해서는 개 코도 아는 바 없지만
촌에서 한 이십년 살다보니 얼추 그리 짐작이 가더라.


농사건 뭐건 다 사람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며
살아 보니 그 먹고 사는 일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장(醬)이더라.
장이 맛이 없으면 한 해를 시달리고
장이 잘 되면 한 해가 입이 즐겁다.
장이 맛있으면 한 해 입 걱정을 덜고 장이 잘 못 되면 한 해 근심을 달고 사는 법이지.  

가을 들판이 비고 하늘에 철새들이 날고
그리하여 논 농사 밭 농사 다 거두고 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메주.

한 해 농사의 끝은 메주.
그리고 한 해 농사의 시작은 정월 장 담그기.
 

얼마 지나면 집집마다 줄줄이 달리겠지만
일단은 눈에 보이는 첫 집의 메주를 기념하여.


......

추신/
이맘 때면 달리기 시작하는 메주는,
댓돌 아래 가지런한 비니루 슬리퍼처럼
해만 지면 아득히 잦아들어서 깜깜한 지붕 아래 간신히 어른거리는 푸르스름한 TV 불빛이 또한 그렇듯이
인기척도 없이 쥐 죽은 듯 고요한 그 집에 아직 사람이 살아 있어 양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깃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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