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면 달리 보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가 처음 본 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물 가 풍경들이 눈에 삼삼하길래 두 번을 더 갔지만
만들어진 그림들은 어쩐지 재탕이란 느낌이거나 아니면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그림이라는 냄새만 난다.

흑백 변환으로 조금 깨끗해 진 그림들.
살다 보면 키도 크고 살도 붙어 몰라 볼 경우도 많지만
사람이건 사물이건 역시 대체로 첫 인상이 맞는 거야.



해가 들길래 또 챙겨 나갔다.
어제도 갔다 오고는 또 조급증이다.
꼭 해 드는 날이 다시 안 올 것 같이 말이지.
오늘은 작정을 하고 아예 자전거를 갖고 나간다.
강 하구에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로 읍내까지 간다. 편도로 삼십 분 쯤 된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하늘이었지만 그래도 간혹 내밀어 주는 저녁 햇살로 그림 몇 장을 만들었다.

마른 나무와 물 그림자

강아지 풀 무리.
헬리오스 44k 58/2.0

강아지 풀 근접.
별로 평도 좋지않은 이 싸구려 러시아 렌즈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펜탁스 50.7이 찬밥 신세다. 팔아 먹어버릴까.

역시 이 렌즈는 역광에 취약하다.
해를 마주보지도 않았는데도 플레어가 한다발이다.
이 또한 즐기려면 즐기지 못할 것은 없지만 기피하고 싶을 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한 컷.

구름 사이로 내 민 순간 놓칠세라 서둘러서 한 컷.
그런데 그림이 왜 이리 우중충하다는 말이냐.

.
.
.

사진은 누가 찍었는데 대체 누구를 탓하는 것이냐.



하루 내 구름이 낮아 우중충하더니 저녁 나절에야 날이 들길래 오십천변으로 나들이를 한다.




유년 시절의 내 고향도 이런 강변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섭섭하지만.
강변에 이렇게 살이 붙어 있으면 속이야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우선은 살아있는 강이라는 느낌이 있다.

맨 아래 그림이 그 중 마음에 든다.
해가 좋은 날에 다시 와 보기로 한다. 부디 코스모스가 지기 전에.



왕거미에게는 저녁 식사지만
고추잠자리에게는 삶의 끝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또 다른 그들은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은 서로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神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지만
때로는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 놓은 것들은 위대하지만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은 믿을 수 없을만큼 작은 존재다.

혹, 내세가 있다 하더라도
이승의 기억과 집착을 고스란히 가져가지 못한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허구에 가깝다.
그렇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생각이 많다.
 



She is mother.

사진 클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목이다.
대개 젊고 예쁜 여인네들을 멋지게 그려 낸 그림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진의 속의 인물이나 사진 자체의 호불호 여부를 떠나서 그다지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었다.
그냥 가벼운 겉멋이거나 괜히 있어보임직한 제목 쯤으로 치부했었다.

이 사진을 올려놓고 싶었지만 도무지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머리 속에 뱅뱅 도는 이미지가 있기는 한데 그걸 한 마디로 묶어 둘만 한 단어가 없었다.
궁리 끝에 결국 저 제목을 차용 해 봤는데 당연히 그 아래 부연 설명까지 묶어서야 겨우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에 얼추 비슷하게나마 접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그녀는 어머니다. 이렇게 쓰면 왜 어색해 보일까?
아니면
인물. 어머니. 

아무튼 어떠랴마는 송구스럽게도 낯 모르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을 담기는 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라도 참 아름답고 고마운 모습이라 혼자 내내 흡족하기는 했다.  
늘 카메라를 가까이 두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    

1월. 흐린 날.
동네 앞에서 바다 쪽을 바라 보면 이렇게 보인다.
하늘만 바꾸면 수년 전에 찍은 일출 사진하고 똑 같다. 시골은 몇 년이 지나도 공제선이 잘 안변한다.


2월. 마당의 산수유.
내 주변에서는 가장 빨리 움이 트는 꽃.
애 엄마가 두 그루를 가져다 심었지만 잎이 나면 그다지 모양이 나지 않아서...

3월. 월포.
 


4월. 봄날은 간다.
마당에 핀 민들레.
이런 정물의 느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집 마당에 이것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는 것은 사실 집 주인이 상당히 게으르다는 말이 되겠다.  

5월. 비 온 뒤 물그림자.
월포 들어가는 진입 도로 근처의 논에서.



6월. 해 지는 언덕
동네 뒤의 언덕에서.
내 배짱에 잘 맞아서 기분 좋은 그림이지만 원본은 날아 가버리고 없다. 인화 해 두고싶었은데. 


7월. 젖은 날개. 
비가 잦았던 올 7월.
집으로 들어오는 길 모퉁이에서

8월. 남아있는 여름의 기억. 조카 승현이


9월. 창으로 찾아 온 9월.


언제나 그렇지만
다시는 찾아 오지 않을 9월이 가고 일생 본 적이 없는 10월이 온다.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녹아 내리고 펜탁스클럽의 서버가 뒤집어지고,
올해 여름 부서지고 깨진 사진이 수백인지 수천인지.

어쨌든 十月이다.



다만 때때로 그럴 뿐이다. 
神이 있다면 나 또한 神에 가까이 다가 가고싶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소부재 전지전능의 人格神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神에게 묻고싶다.
그 시각에 이 아이 곁을 지켜주지 못할만큼 바쁘고 긴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부디,  
사람의 궁리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심오한 섭리로 이 아이가 겪어야 할 일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그래야겠다면 이 아이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만.
최소한 나를 납득 시킬 수 있는 언어만이라도.
  
이 글을 보지 말았으면 좋았을까.
잠 들기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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