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지 오래 된 고향은 낯 설면서도 낯 설지 않다.

아니, 낯 설지 않으면서도 낯 설다.
커피 한 잔 사 먹게 풋고추 한 소쿠리 사 가라시던 시장 할머니. 반주로 기분 좋게 한 잔 하셨는지. 

볶은 땅콩 한 사발.

한 사발에 삼천원이라시더니
'이천원을 내줘야 하나 삼천원을 내줘야 하나. 그러케, 내가 돈을 잘 몰라서, 흐흐흐...'
 

신발 굽이 닳도록 드나들던 시내 상가. 어느 해 부터인가 차 없는 거리가 됐더라.

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엉거주춤 하다보니 어디서 온 촌놈일까 싶은지 오가는 이들이 힐끔거린다.
아, 이 사람들아, 나도 고향 까마귀라니까.

수복 빵집.

메뉴는 사십년동안 찐빵. 꿀빵. 단팥죽. 팥빙수.
납작한 찐빵에 뜨거운 팥죽을 끼얹어 주는 게 아주 일품이지. 물론 입맛의 절반은 추억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찐빵 꿀빵은 진작에 동이 나고 되는 건 팥빙수 밖에 없다.
늘 그런 집이니 또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 것만 먹고 나온다.
손님들도 칠팔십년대 진주 언저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중년의 남녀 까마귀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그 까마귀들의 2세들이든지.
은행 달력에 이발소 그림. 의자는 바뀌어도 탁자는 그 때 그대로다. 저 빨간 탁자는 몇 번이나 덧칠을 했을까. 


함양.

옆집 마당에 찾아 온 가을.
날은 아직 더웠지만, 오랜만에 이모님께 인사 드리고 뒤꼍을 어슬렁거리다가 한 컷.

삼천포 어시장.

내가 아는 한, 가장 활기찬,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보다 또 다른.
이제는 친지라고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삼천포는 아내의 고향이다. 
  

castaway

떠난지 오래 된 고향은 他地보다 더 낯 설다.
고향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나는 자꾸 사라진 고향을 찾아다닌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다면 고향이 다시 나를 알아 볼 수는 있을까?



지난 4월 1022번 지방도에서 찍은 사진.
낙동강 하구의 물금역 풍경이다.

원본은 지난달 컴퓨터 날려먹을 때 같이 날아 가버리고 어쩌다 USB에 남아있던 걸 찾아냈다.
크기를 줄여버린 파일이라 이리저리 만지다보니 그림이 좀 뭉개지는 느낌이라 갑갑하지만 그래도 하나 건진 게 어디냐고 또 올려 놔 보기로했다.
철로 위에 기차가 얹혀있는 그림도 있었는데 그건 아마 아주 잃어버린 모양이다.
별 건 아니지만 아깝다. 잃어버리고 나면 더 아까운 법이지.
또 언제 어디서 흔적도 없이 홀랑 날려 먹을지 모르는 노릇이니 모쪼록 부지런히 여기저기 어질러 놓을 따름이다.

디지털은 깡통이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봤다. 처음부터 보지는 못하고 끝에서 대여섯회 쯤 봤나보다.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가 인터넷이 버벅거리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마침 재방송 중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애 엄마가 그 얼마 전에 무슨 이야기 끝에 곁말로 흘리던게 기억나서 자리 잡고 앉았지. 
어디 얼마나 재미 있는지 한 번 보자 하고.
.........
뭐, 그럭저럭 괜찮긴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됐었다. '허당' 때매...
1박 2일의 부작용인가?
맨날 나와서 어벙한 짓만 하던 녀석이 인상 쓰고 나와서 분위기 잡는게 도무지 몰입이 안된다는 말이지.
그래도 연기는 꽤 하드만. 전문 연기자들에 비해서 전혀 손색 없이.
하여간에 끄트머리를 시청했던 소감은 최소한 내가 싫어라하는 국산 드라마의 단골 설정들이 '덜'하더라는 것.

지상파에 케이블에 수십개 채널에서 하루 종일 돌려대는 국내외 드라마만 해도 아마 수십개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드라마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들.
필연적인 이유 없이 배배 꼬였거나
전혀 현실감 없는 황당한 설정과 같은 '편'으로 설정된 사람들끼리의 참, 말도 안되는 '오해'들도 그렇고 
이야기의 전개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하등 쓸모 없는 갈등. 
조마조마한 대목에서 싹둑 잘라 다음회의 시청률을 확보하는 고전적인 꼼수야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성립 자체가 의심스러운 억지스러운 상황을 위기 일변도로 밀고 나가거나 
천편일률, 하나같이 주인공을 좌절 일보직전까지 밀어부쳤다가 마지막에 후닥닥 대반전시키고
얼렁뚱땅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명색 '작가'들의 납작한 사고방식때문이다. 지겹거든.
그래서 때로는 그 '작가'라는 분들의 머리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이야기를 쓸려면 사람을 알고 써야지.
캐릭터의 일관성조차 제대로 지켜주지않는 작가가 뭔 작가냔 말이지.
실컷 장황하게 일 벌여놓고 일 좀 꼬였다고 대번에 낯 색을 바꾸고 등 돌리고....
그러다가 오해 풀렸다고 하루 아침에 '감동적으로' 끌어안고 눈물 짜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성격이나 사는 방식이 그리 자반 뒤집듯 하지는 않지.
사람으로 사람들과 더불어서 세상을 산다는 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거든.
식구들은 그런 날더러 그냥 보여주는대로 보지 않고 그런 걸 따지고 드냐면서 참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는데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왜 견디면서 봐야하는지.
그렇다고 내가 싫으니 너희도 보지 말아라는 말도 아닌데 '나는 그렇다'라는 생각조차도 듣기 싫다는 것인지,
이러쿵 저러쿵 결론이 날 이야기도 아니고
아니, 별 것 아닌 드라마 몇 편 보다가 가족끼리 앉아서 날 세우고 심지 세우게 생겼다 싶어 그만 중동무이 하기는 했지만, 개개의 취향이나 생각이 왜 비난을 받고 평가를 받아야 하냐는 말씀이지.   

뭐 어쨌든 그랬었다는 이야기니 일단 각설하고,
내가 본 대목이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단은 호감이었다.
뭐 그렇다고 젊은 애들 나오는 멜로 드라마가 수삼년 전의 모래시계나 얼마 전 나 혼자만 기를 쓰고 챙겨 봤던 대왕세종같은 무게로 느껴지기는 어렵겠지만, 일단은 '나쁜 놈'들이 일을 꾸미고 쑥덕거려도 일단 중심 캐릭터가 흔들리지 않아서 이야기의 흐름이 위태롭지는 않더라는 정도의 호감이다.
아, 물론 여차해서 구태의연하게 또 오해, 갈등, 시련 모드로 들어가면 그 길로 돌려버릴 참이었지만.

지금은 챙겨 보는 드라마가 없다.
기억에 남아있는 드라마는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모래 시계. 허준. 대장금. 하얀 거탑. 대왕세종. 베토벤 바이러스 정도다.
그 중에서 정말 몰입해서 챙겨봤던 드라마는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모래 시계. 하얀 거탑. 대왕세종 정도.
허준은 동의보감을 읽었던 관성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그저 그랬고 큰 아이의 채근으로 보기 시작했던 대장금은 그보다는 조금 나은 편. 베토벤 바이러스는 본격 음악 드라마라는 주장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은 그럭저럭 하더니 뒷부분의 이야기가 아주 산으로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황당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모래시계와 하얀 거탑. 그리고 약간 허술했지만 대왕세종.


지금은 챙겨 볼 드라마도 없고 사실은 드라마 자체가 그다지 큰 관심거리는 아니다. 
위의 것들 중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챙겨 본 드라마는 하나도 없고 '재미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간 쯤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보다가 뒷심이 빠져서 중동무이 한 것도 있으니 뭐, 식구들이 비난했듯이 나는 참 재미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챙겨 보는 게 거의 없다.
밥상 앞에 앉아서 되는대로 채널 돌리다보면 꼭 하나 둘씩 얻어 걸리는 1박2일이나 NCIS(이거 뜻밖에 참 재미있다. 캐릭터들이 다 살아 있지) 외에는 아직 그다지 챙겨 보고싶은 게 없다.
사는 게 드라마틱 하지 않으므로 해서 모쪼록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드라마 하나 쯤은 챙겨 보고싶다.
얼추 이만큼 살아오다보니 살아가는 즐거움이 반드시 심오하거나 고상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더라. 꿩 잡는 게 매라는 이야기지. 바라건대, 멜로건 사극이건 스릴러건 상관 없으니 부디 구질구질하게 쥐어 짜고 비틀고 하지 말고 조금은 선 굵고 반듯한 드라마 한 두개쯤 보면서 살자. 즐거운 것을 기다리는 것은 엔돌핀이다.
당신들이 만드는 것이 어떤 분야이건 상관 없이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는 법이다. 제발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놈의 귀때기만 붙들고 이리 저리 비틀지는 마시고.







바람 부는 날.
해맞이 공원 뒤쪽의 풍력발전단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배경이었지만 흑백변환하면서 커브를 틀었더니 좀 우울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원본도 좋았지만 나는 이 쪽이 더 좋다.

새벽 항구.
올림푸스 e20N들고 한참 돌아다닐 때의 사진.
어쩐지 밋밋한 느낌이라 던져 두었다가 수채화 효과로 변환했다.
얼핏 회화적인 느낌이 있기는 한데 이걸 그림으로 봐야하는지 사진으로 봐야하는지?
후보정이 옳네 그르네 따지는 이들도 더러 있더라만
사진이건 그림이건 떠받들고 살 일이 없으니 그렇게 매이기는 싫다. 어쨌든 나는 느낌이 나쁘지만 않다면 괜찮다는 주의니까. 
 
새벽 구계항.
이것 역시 애매한 그림을 수채화 효과로 변환한 것.
포토샵이란 물건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참 재미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속임수만 아니라면, 그리고 오리지날리티를 굳세게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참 유용한 물건.

산 아래 마을
회 1리에서 회 2리를 바라본 풍경.
같은 산 아래 마을이라도 평지에서 바로 솟은 산은 느낌이 다르다.

忙中閑.
배는 그 자신의 기능을 숨기지 않기때문에 참 매력적인 피사체다.
단, 그것이 고전적인 어선일 경우에 한해서.
그것이 매끄러운 유선형의 여객선이나 철갑 두른 이지스 함이라면 나는 별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배 사진 중의 하나.
특별할 것은 없지만 배라는 피사체를 수직으로 내려다 볼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계조.
삼사 공원에서 포항 쪽을 바라 본 풍경.


모두 다 올림푸스 e20N으로 찍은 그림이다.
지금은 장기 휴면 중인  e20N.
이제는 펜탁스 캔디.
성능은 훨씬 나아졌지만 진지함은 좀 덜해진 것 같다. 
당연하지. e20N의 그 느려터진 스피드로는 느리고 진지할 밖에....
거의 필름 카메라 수준의 속도. 때로는 필름 카메라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했던...
그래도 참 부지런히 가지고 다녔는데.


드물게 속사로 건진 그림.

꼬맹이 한자 시험 데려갔다가 얻은 그림.

연이어 그럭저럭 눈에 들어 온 그림 몇 장.

낯 선 곳을 어슬렁거리며 날리는 스냅은 즐거운 일이다.


대학교 5학년.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소풍 갔다가 비 두들겨맞고 오실오실 떨면서 후배들 따라 들어 간 곳이 진주 예하리 그 집이었지. 낡아서 비끄러지는 기와집 마당에 잔칫날처럼 허연 광목 천막 아래 평상에 앉아서 개다리 소반을 받았다.  

'수육에 맑은 탕 한 사발이면 술도 확 깨고... 속이 뜨끈할낍니다.'

그래. 참 좋았다. 
수육도 부드럽고 좋았지만 생강을 채 썰어넣은 그 처음 보는 맑은 국물은 일품이드만.
콧잔등에 땀이 흐르고 젖은 옷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를만큼 신나게 퍼 먹었다.

'아! 국물 정말 일품이구나.'
'좋치요! 속풀고 술 깨는데는 개탕이 제일입니다. 행님, 개도 묵을만 하지요?'
'??.....................................!!'
'........ 염소'도' 하는 집이라캤지요. 갑돌이가 시켰으니 내는 죄 엄소.'

염소탕 먹으러 가자는 후배 두 놈에게 꼬여서 처음 먹어 본 개고기였다.
속아서 먹기는 했지만 아주 맛이 좋았기때문에 그날 후배 두 놈은 나의 가혹한 응징을 면했다.

그렇게 입문은 괜찮은 편이었다.
술 마신 뒤면 늘 속이 편치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편안한 뱃속을 경험한 탓에 그 뒤로 가까운 이들과 자리를 만들라치면 팔을 걷어부치고 예하리 그 집으로 가자고 굳세게 주장을 하곤 했다.
알고보니 그 집은 내가 몰라 그렇지 개고기로 아주 유명한 집이었는데 마침 내가 가 본 뒤로 얼마 안되어 돈 많이 벌었는지 근사한 건물 새로 지어서 '이전확장개업' 을 하드만. 

그런데 그놈의 '이전확장개업'은 왜 십중 팔구는 뒤끝이 좋지 않은지.
그 새집에는 딱 한 번 가보고는 그냥 발을 끊고 말았다.
널찍한 구식 한옥 마당에서는 못느꼈던 누린내가 새로지은 삼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건물 구석구석 누릿~ 하게 배어 있었거든.
그리고 그날 그 누릿함을 애써 견디며 먹은 그 비싼 음식은.... 
그 후로는 개탕에 대한 믿음도 그냥 시들시들...  누가 먹으러 가자해도 민적민적.......
하긴 그 후로는 아주 발길을 끊고야 말았으니 지금 또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지금은 우루루 무리 지어서 누군가가 깃대 잡고 분위기 휩쓸리면 그냥 못이겨 따라가기는 하지만 내 지갑 열어서 사 먹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뭐 애초부터 개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선입관은 없다.
개나 소나 그게 무엇이든 한 목숨 부지할라면 어차피 다른 동식물의 보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굳이 혐오스럽지만 않다면 된다 안된다 가리고 유난을 떠는 편은 아니다. 다만 먹어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어쩐지 켕기는 그 정도. 

어쨌든 개고기는 처음 먹었던 것이 몸에 아주 잘 받는 듯 해서 흡족해했지만 이내 한 번 낭패를 보고나니 그 낯설음이 길다. 그 모양으로 지금까지 이십여년이다. 고향 떠나서 이쪽으로 온 첫 집이 부업으로 보신탕용 비육견(?)을 사육하는 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개 입장에서 보자면 참 기구하고 참혹한 꼴도 더러 구경하고 그래서 인자는 조금 더 정이 떨어져버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집 뒷산에는 이십 여마리의 식용 개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때때로 왈왈거리며 자리다툼하는 소리가 우리집까지 들리기도 했다.해마다 이때 쯤이면 우리 집 앞 산길 입구에다 개장차를 세워놓고 흥정을 해쌓는다. 복날 준비하느라고.
.......
그 개들 목에 올가미 걸고 아주 사색이 되어 끌려 올라가는 꼴 보면 참....
짐승도 제 죽을 길은 아는게지.


추신/
우리 동네 교회는 작다.
애 엄마는 열심신자고 나는 땡땡이 환자다.
마누라가 닥달하지않으면 일년 가도 교회 한 번 갈까말까... 더러더러 원성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워낙에 콧구녕만한 교회다보니 목사 사모 장로 집사 해서 다들 알고지낸다.
그런데 이 교회 재미있는 것이 때때로 무슨 제목 붙는 날 밥을 해서 같이 먹는데 심심찮게 올라오는 메뉴가 개탕이다.
뭐, 절도 아니고 중도 아니니 개를 잡건 소를 잡건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룩한 교회에서 개탕을 맹글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는 것은 공연히 우습다.
내사 안나가는 날이 더 많으니 못얻어먹는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런 날이면 열성 집사님들이 냄비에 한 가득 담아서 애 엄마 편으로 보내주시는데, 못이긴체 먹어보면 어느 집사 아주머니인지 솜씨는 정말 대단해서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전혀 하잣거리가 없는 일급 개탕이다. 적어도 내가 먹어 본 중에서는.
그래도 좀 거시기하잖아? 개를 즐겨 잡아먹는 교회라...


추신2/
식구들과 근처 공원에 배드민턴 치러 갔다가 공원 주차장에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놈을 보고 아이는 무섭다고 슬그머니 내 곁으로 숨는데 나는 혼자 생각에 복날이 가까운데 저 놈이 어쩌려고 저리 돌아다니나... 객적은 궁리만 굴리다가 주저리 따라나온 이야기다.

개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서양식 잡설들이나 불란서의 어느 늙은 여배우가 뭐란다는 헛소리 등속은 내게는 전혀 무가치하므로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초복 중복 어느 새 지나가고 말복이 코 앞이다.
삼복에 웬 복인지 올 해는 에어컨 리모콘에 손도 안 대보고 삼복 다 지나 간다.
이복이건 저 복이건 어쨌든 복날을 잘 보내야 여름이 편타더라.
부디 복날에 몸보신(뭘로든...)하시고 모쪼록 다들 건강하소서.

  

 


나는 조금 독한 담배를 좋아했었다.
들척지근한 향이 들어있는 담배를 혐오했고 가늘고 긴 담배 역시 혐오했다.

환희, 은하수, 88, 디스...
내가 좋아했던 국산담배 목록이다. 담배 값 순위로 보면 얼추 2등 아니면 3등...
1 등 짜리는 너무 싱겁거나 얄궂은 향 때문에 싫어했다. 

어째서 순수한 담배 그것만으로는 고급 담배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일까?

어쨌든 삼십년간 애연가였지만 그 테두리를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간혹 말보로 레드를 좋아했다. 말보로 레드는 아주 간이 잘 맞아 썩 마음에 드는 담배였다.


그렇다고 아주 독한 독초를 좋아한 것도 아니어서 일전에 골초 중의 골초였던 어느 지인에게 얻어 피워 봤던,
유럽 선원들이 피우는 아주 귀한 담배라면서 몇 가치 피워 본 필터도 없는 지땅 이라는 프랑스 담배는 과연 사내중의 사내들인 선원다운 분위기가 없지 않아서 꽤나 단순하고 거친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컥컥 맵기만 해서 좀 거시기했었고, 꽤 비싸다는 쿠바제 시가도 몇 번 물어봤지만 독하기만 했지 별 매력은 없었다.
소싯적에는 겉멋에 떠서 빨뿌리 담배도 시도를 해봤었지만 그도 귀찮고 신통찮아 던져버렸으니 아마도 나는 애연가이기는 하되 근사하고 낭만적인 로맨티스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물한 살 무렵에 피워 물기 시작했지만  언젠가부터 담배가 싫어지고 담배를 피고 있는 내 자신이 지겨워져서 이제 필 만큼 피웠으니 인자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뭘 해. 생각과는 달리 담배는 과연 참 끊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고 이 핑계 저 핑계 서너 달 뭉기적거리다가 어쩌다 집안에 생각지도 못한 우환이 생기는 바람에 그걸 빌미로 그냥 작심하고 싹둑 끊어버린 셈이지.
한동안 금단증상으로 애를 먹기도 했지만 삼십년 끽연력에 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간 셈이라고 생각한다.


엊그제 누이동생의 가족이 휴가차 잠시 다녀갔는데 매제가 피는 담배 갑을 열어 슬쩍 생담배 냄새를 맡아보니 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련한 향이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강렬하지는 않아서 별로 걱정은 아니되고.
끊을 때도 꼭 끊지 못하면 어떠리라는 절대 절명이 없어 그런지 오히려 못 이기고 다시 피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도 없어 부담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첫 한 달 남짓 금단증상을 제외하고는 아주 수월하게 지났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성공한 셈이지만.


단, 건강을 위한 금연이라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가 싫은 것이,
담배를 끊으면서 늘어 난 체중이 족히 5, 6Kg는 넘는데 이 살을 빼기가 참 만만찮다는 이야기다. 솔직한 심정으로 담배와 늘어난 체중,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내게 더 해로운 것인지는 판단 보류다.
뭐 그렇다고 허릿 살을 빼기 위해서 일껏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 생각은 없으니 그것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데 좀 우스운 것이,
요즘도 아주 가끔 담배에 관한 꿈을 꾸는데, 언젠가는 말보로 한 갑을 사 들고 들어 온 꿈을 꾸었다.
그 말보로는 하드케이스가 아닌 종이 껍데기였고 조금 구겨져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꿈속에서도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내서 베개 위에 던지면서,

'왜 등신같이 유혹에 못 이겨 담배를 샀을까'
 
그리 책망한 것으로 보면
그래도 금연에 대한 강박은 어느 만큼은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리 대단한 한탄은 아니었고 가볍게 그저 그랬다는 정도였지만.
기억에 그 꿈속에서 그 담배를 한가치 피워 물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잠을 깨어 생각해보니 뭐 그리 유혹을 못 이겨 전전긍긍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이런 젠장, 낫살이나 먹어서 뭔 개꿈만 꿔 대는 거냐, 거 참 아리송하고. 그것 또한 뭐 매사가 그렇듯이 그저 그러다 말았지.


시방도 뭔 일거리 꼬여버리거나 잘 안 풀리면,
혹은 무척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갑자기 헛심이 들거나 하면,
그래서 언뜻 담배 한가치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어제 매제가 피는 담배 냄새를 맡아보고는 내 금연 일기도 한 번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래 전에 써 두었던 걸 꺼내서 각색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체물?
내사 워낙에 곰팡내 나는 구닥다리다보니 그것마저도 가장 고전적인 흡연 대체제 은단이올시다.
일제로 알고 있는 카올을 좋아했었는데 인자는 너무 독해서 싫고 그냥 약방에 가서 은단 주슈 하면 꺼내 주는 삼천 원짜리 정력은단이면 그만이지 뭘.
......그렇다고 해서 딱이 정력하고는 별로 상관은 없는 듯 하니 그다지 눈 크게 뜰 일은 아닌 듯 하고. 뭐, 인삼 냄새는 좀 나드만.


뭐 어차피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담배를 끊었고,
끊은 지가 사년이 넘었으니 얼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담배를 버리면서 얻은 체중은 담배보다 버리기가 더 힘이 든다는 이야기이며,
다만, 궁리가 궁할 때는 아직도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이,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담배는 십년을 끊어도 장담을 못한다든지,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일생 참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근거 없지는 않겠더라는 생각이다.

기념으로,
한 때 드나들던 인터넷 동네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감각을 가졌던, 

껍데기라는 필명을 쓰던 이가 담배를 예찬했던 말도 하나 남겨 놓자.



君子三辯

소슬 비 오는 초저녁 처마 밑에서 슈퍼마켓표 의자 걸치고
길게 연기 뿜으며 보던 뿌연 하늘.

쨍쨍한 날 지열 그득한 논밭에서 들풀, 잡초 일구다 땀 절인 코팅 면장갑 벗고
소나무 그늘 막걸리 한 사발에 곁들인 한모금의 담배.

술 취한 날 놀이터 유아용 그네 타다 양말에 흙 튀고 모래 성겨
뭐 원망하며 하늘대고 쏘듯 내뱉는 그 연기.  

-
껍데기



담배를 버리면서 살아가는 낙 중의 하나도 같이 버렸다는 이야기지.
오늘 낮에 누이동생 가족이랑 점심을 먹으면서 했던 농담처럼,
수 년 전에 도진 위장병으로 인자는 술도 무섭고 담배도 끊었으니 머리만 깎으면 나는 중이다....
장욱진 선생의 말씀을 흉내 낸 뭐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어거지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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