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독한 담배를 좋아했었다.
들척지근한 향이 들어있는 담배를 혐오했고 가늘고 긴 담배 역시 혐오했다.

환희, 은하수, 88, 디스...
내가 좋아했던 국산담배 목록이다. 담배 값 순위로 보면 얼추 2등 아니면 3등...
1 등 짜리는 너무 싱겁거나 얄궂은 향 때문에 싫어했다. 

어째서 순수한 담배 그것만으로는 고급 담배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일까?

어쨌든 삼십년간 애연가였지만 그 테두리를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간혹 말보로 레드를 좋아했다. 말보로 레드는 아주 간이 잘 맞아 썩 마음에 드는 담배였다.


그렇다고 아주 독한 독초를 좋아한 것도 아니어서 일전에 골초 중의 골초였던 어느 지인에게 얻어 피워 봤던,
유럽 선원들이 피우는 아주 귀한 담배라면서 몇 가치 피워 본 필터도 없는 지땅 이라는 프랑스 담배는 과연 사내중의 사내들인 선원다운 분위기가 없지 않아서 꽤나 단순하고 거친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컥컥 맵기만 해서 좀 거시기했었고, 꽤 비싸다는 쿠바제 시가도 몇 번 물어봤지만 독하기만 했지 별 매력은 없었다.
소싯적에는 겉멋에 떠서 빨뿌리 담배도 시도를 해봤었지만 그도 귀찮고 신통찮아 던져버렸으니 아마도 나는 애연가이기는 하되 근사하고 낭만적인 로맨티스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물한 살 무렵에 피워 물기 시작했지만  언젠가부터 담배가 싫어지고 담배를 피고 있는 내 자신이 지겨워져서 이제 필 만큼 피웠으니 인자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뭘 해. 생각과는 달리 담배는 과연 참 끊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고 이 핑계 저 핑계 서너 달 뭉기적거리다가 어쩌다 집안에 생각지도 못한 우환이 생기는 바람에 그걸 빌미로 그냥 작심하고 싹둑 끊어버린 셈이지.
한동안 금단증상으로 애를 먹기도 했지만 삼십년 끽연력에 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간 셈이라고 생각한다.


엊그제 누이동생의 가족이 휴가차 잠시 다녀갔는데 매제가 피는 담배 갑을 열어 슬쩍 생담배 냄새를 맡아보니 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련한 향이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강렬하지는 않아서 별로 걱정은 아니되고.
끊을 때도 꼭 끊지 못하면 어떠리라는 절대 절명이 없어 그런지 오히려 못 이기고 다시 피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도 없어 부담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첫 한 달 남짓 금단증상을 제외하고는 아주 수월하게 지났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성공한 셈이지만.


단, 건강을 위한 금연이라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가 싫은 것이,
담배를 끊으면서 늘어 난 체중이 족히 5, 6Kg는 넘는데 이 살을 빼기가 참 만만찮다는 이야기다. 솔직한 심정으로 담배와 늘어난 체중,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내게 더 해로운 것인지는 판단 보류다.
뭐 그렇다고 허릿 살을 빼기 위해서 일껏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 생각은 없으니 그것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데 좀 우스운 것이,
요즘도 아주 가끔 담배에 관한 꿈을 꾸는데, 언젠가는 말보로 한 갑을 사 들고 들어 온 꿈을 꾸었다.
그 말보로는 하드케이스가 아닌 종이 껍데기였고 조금 구겨져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꿈속에서도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내서 베개 위에 던지면서,

'왜 등신같이 유혹에 못 이겨 담배를 샀을까'
 
그리 책망한 것으로 보면
그래도 금연에 대한 강박은 어느 만큼은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리 대단한 한탄은 아니었고 가볍게 그저 그랬다는 정도였지만.
기억에 그 꿈속에서 그 담배를 한가치 피워 물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잠을 깨어 생각해보니 뭐 그리 유혹을 못 이겨 전전긍긍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이런 젠장, 낫살이나 먹어서 뭔 개꿈만 꿔 대는 거냐, 거 참 아리송하고. 그것 또한 뭐 매사가 그렇듯이 그저 그러다 말았지.


시방도 뭔 일거리 꼬여버리거나 잘 안 풀리면,
혹은 무척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갑자기 헛심이 들거나 하면,
그래서 언뜻 담배 한가치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어제 매제가 피는 담배 냄새를 맡아보고는 내 금연 일기도 한 번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래 전에 써 두었던 걸 꺼내서 각색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체물?
내사 워낙에 곰팡내 나는 구닥다리다보니 그것마저도 가장 고전적인 흡연 대체제 은단이올시다.
일제로 알고 있는 카올을 좋아했었는데 인자는 너무 독해서 싫고 그냥 약방에 가서 은단 주슈 하면 꺼내 주는 삼천 원짜리 정력은단이면 그만이지 뭘.
......그렇다고 해서 딱이 정력하고는 별로 상관은 없는 듯 하니 그다지 눈 크게 뜰 일은 아닌 듯 하고. 뭐, 인삼 냄새는 좀 나드만.


뭐 어차피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담배를 끊었고,
끊은 지가 사년이 넘었으니 얼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담배를 버리면서 얻은 체중은 담배보다 버리기가 더 힘이 든다는 이야기이며,
다만, 궁리가 궁할 때는 아직도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이,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담배는 십년을 끊어도 장담을 못한다든지,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일생 참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근거 없지는 않겠더라는 생각이다.

기념으로,
한 때 드나들던 인터넷 동네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감각을 가졌던, 

껍데기라는 필명을 쓰던 이가 담배를 예찬했던 말도 하나 남겨 놓자.



君子三辯

소슬 비 오는 초저녁 처마 밑에서 슈퍼마켓표 의자 걸치고
길게 연기 뿜으며 보던 뿌연 하늘.

쨍쨍한 날 지열 그득한 논밭에서 들풀, 잡초 일구다 땀 절인 코팅 면장갑 벗고
소나무 그늘 막걸리 한 사발에 곁들인 한모금의 담배.

술 취한 날 놀이터 유아용 그네 타다 양말에 흙 튀고 모래 성겨
뭐 원망하며 하늘대고 쏘듯 내뱉는 그 연기.  

-
껍데기



담배를 버리면서 살아가는 낙 중의 하나도 같이 버렸다는 이야기지.
오늘 낮에 누이동생 가족이랑 점심을 먹으면서 했던 농담처럼,
수 년 전에 도진 위장병으로 인자는 술도 무섭고 담배도 끊었으니 머리만 깎으면 나는 중이다....
장욱진 선생의 말씀을 흉내 낸 뭐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어거지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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