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할 필요가 없는 공원 묘지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고
지리산 끄트머리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하나다.
여차한 사정으로 고향을 등지고 공원묘지에 누우신 관계로 올 때마다 그럭저럭 말끔하던 아버지 산소가
올해는 적잖이 덥수룩하다.
여기저기 예초기 소리가 아득한 걸 보니 지금 한참 추석 성묘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이쪽 라인은 좀 늦는 모양이지.
날짜를 너무 일찍 잡은 탓인 듯 생각했다.
아버지 상석에는 늘 깡소주에 과자 부스러기다.
그나마도 내가 우겨서 갖고 오는 것이니 아버지는 날 원망하지 마시길,
돌아가시기 이삼년 전에 기독교로 전격 개종하지 않으셨다면 혹시라도 머리 깎은 사과 몇 알과 부침개 한 두접시라도 놓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야 순전히 아부지 탓이오.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기야 뭐 그렇다고 나 또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보니 참 휑뎅그렁해 보이는 것이 마음이 조금 그렇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는 것이고 살아 남은 자들의 가슴을 달래는 일이니 이 다음부터는 진주의 누님을 귀찮게 해서라도 부침개 몇 개라도 올려 놓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아부지. 기대 하이소.
시간은 한정이고 돌아갈 길들이 아득하니 벌초는 아직 안되었으나마 걸음 한 김에 인사는 드리고 갈 밖에.
다듬지 못해 비죽비죽한 풀들이 좀 거시기하기는 하네. 부산 큰 누님은 지각이라 아버지 산소는 불참이다.
진주에서 한 시간 걸려 닿은 지리산 끄트머리의 어머니 산소.
꼬맹이가 보더니
'아빠, 산소가 없어요.'
......
조금만 더 가까이 있다면 한 해에 두어번은 더 손질을 할 수 있겠는데 한식 성묘하고는 겨우 이맘때 한 번이다보니 참 볼 때마다 기가 막히긴 하다.
하기사 뭐 그랬더라면-- 하는 것도 핑계지. 마음이 그걸 넘어서지 못하는 때문이지. 그저 내 탓이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낫 두자루 달랑 들고 올라 와보면 참 엄두도 안 나고 그랬는데 작년에 마음 먹고 가스 예초기를 하나 준비했더니 그래도 어지간히 덤빌만은 하다.
여태 낫 두 자루로 이 짓을 어떻게 했나 싶은 생각이 수삼번도 더 든다.
지금 다시 낫 들고 하라면 다시 못하지싶은데.
한 시간 넘게 패대기를 치고 나니 그럭저럭 봉분은 찾아 냈다.
수안아, 할머니 산소 찾았다.
그래, 찾기는 찾았다만, 일을 하다보면 참 마음이 구깃구깃해지는 것이,
이놈의 집구석은 어찌 된 영문인지 사내가 참 드물다.
벌초꾼 여덟 중에 나 혼자.
저기 갈쿠리로 풀 걷어내는 양반이 올해 환갑 된 둘째 누님이란 말이지.
아, 누님들이며 조카들이라고 못하리란 말은 아니지만
어깨와 허리가 부실한 나도 그렇고 그런데다가 세상에 환갑 전후의 누님들이 갈쿠리며 낫을 들고 덤비는 걸 보자하니 참 그렇다는 말이지.
그나마도 조카 둘이 팔 걷고 나서서 거들었으니 그만했지.
조카 놈들도 사내라고는 달랑 둘 밖에 없더니 한 놈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몇 해전에 먼저 떠나버리고.
나머지 한 놈은 의사 노릇 한다고 밤낮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으니 데리고 와서 일도 못 시키지.
하기사 키만 꺽다리로 솟았지 손재주라고는 아주 손방이라는데 델고 와봤자 어디 써 먹을 수나 있을라는지.
보다시피 어깨에 예초기 걸머 진 나 빼고는 모두 여자들이다.
여자들이라고 자식이 아니랴마는 그래도 이런 바깥 일에는 사내 손이 있어야하는데.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 혼자서는 힘도 부치고 여기저기 고장도 나고....
거기다가 혼자 오면 공연히 쓸쓸하고 막막한 마음이 들어서 그것도 참 싫다.
모쪼록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한 걸음이라도 더 다닐 일이다. ......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그 와중에 경로 우대 부산 큰 누님은 꼬맹이 둘 데리고 열외.
시퍼런 하늘 배경으로 소풍 나온듯 그림이.... 흥.
예초기 다루는 솜씨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기는 하나
그럭저럭 봉분도 찾고 비니루 꽃이나따나 꽃도 꽂아놓았으니 생전에 좋아하셨다던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어마이 산소 앞에는 소주는 커녕 맹물도 한 잔 없다.
찬송가 부른 뒤에 큰 누님이 기도를 시작하니 진주 누님이 털썩 주저 앉는다.
형제 중에 어머니 산소를 가장 각별히 생각하는 양반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어머니 앞에만 오면 그리 마음이 젖어오나보다.
'최신형 예초기'로 돌려도 워낙에 울창하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처음에 예초기란 물건에 겁 먹고 충전식을 샀더라면 낭패를 볼 뻔했다. 가스 예초기로도 간신히 할 일을..
그림자가 길다란 걸 보니 해가 제법 기울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해 놓고보면 좋은 일이지.
그러니 이 다음에는 김밥이라도 몇 줄 사다가 아주 가족 소풍을 겸해서 정례화 시켜 볼 일이다.
올해처럼 참석자들이 많으니 좀 보기 좋으냐고. 즐비하게 서 있는 자손들 보고 어마이 입이 귀에 걸리셨겠구마.
게다가 뜻밖의 일로 예정에 없이 따라 붙은 며느리까지.
일 안하고 카메라 들고 땡땡이 친 애 엄마 덕분에 생각보다 사진이 많이 남아서 잘 됐네.
출발할 때 준비가 조금 소홀했으니 내년엔 무딘 낫도 날을 세우고
손도끼며 톱이며 갈쿠리도 두어개 더 들고 올 일이다.
깜빡 잊어버리기 전에 아카시아를 박멸할 방법도 어디 찾아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