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끄트머리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하나다.
여차한 사정으로 고향을 등지고 공원묘지에 누우신 관계로 올 때마다 그럭저럭 말끔하던 아버지 산소가
올해는 적잖이 덥수룩하다.
여기저기 예초기 소리가 아득한 걸 보니 지금 한참 추석 성묘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이쪽 라인은 좀 늦는 모양이지.
날짜를 너무 일찍 잡은 탓인 듯 생각했다.
그나마도 내가 우겨서 갖고 오는 것이니 아버지는 날 원망하지 마시길,
돌아가시기 이삼년 전에 기독교로 전격 개종하지 않으셨다면 혹시라도 머리 깎은 사과 몇 알과 부침개 한 두접시라도 놓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야 순전히 아부지 탓이오.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기야 뭐 그렇다고 나 또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보니 참 휑뎅그렁해 보이는 것이 마음이 조금 그렇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는 것이고 살아 남은 자들의 가슴을 달래는 일이니 이 다음부터는 진주의 누님을 귀찮게 해서라도 부침개 몇 개라도 올려 놓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아부지. 기대 하이소.
다듬지 못해 비죽비죽한 풀들이 좀 거시기하기는 하네. 부산 큰 누님은 지각이라 아버지 산소는 불참이다.
꼬맹이가 보더니
'아빠, 산소가 없어요.'
......
조금만 더 가까이 있다면 한 해에 두어번은 더 손질을 할 수 있겠는데 한식 성묘하고는 겨우 이맘때 한 번이다보니 참 볼 때마다 기가 막히긴 하다.
하기사 뭐 그랬더라면-- 하는 것도 핑계지. 마음이 그걸 넘어서지 못하는 때문이지. 그저 내 탓이오.
여태 낫 두 자루로 이 짓을 어떻게 했나 싶은 생각이 수삼번도 더 든다.
지금 다시 낫 들고 하라면 다시 못하지싶은데.
수안아, 할머니 산소 찾았다.
그래, 찾기는 찾았다만, 일을 하다보면 참 마음이 구깃구깃해지는 것이,
이놈의 집구석은 어찌 된 영문인지 사내가 참 드물다.
벌초꾼 여덟 중에 나 혼자.
저기 갈쿠리로 풀 걷어내는 양반이 올해 환갑 된 둘째 누님이란 말이지.
아, 누님들이며 조카들이라고 못하리란 말은 아니지만
어깨와 허리가 부실한 나도 그렇고 그런데다가 세상에 환갑 전후의 누님들이 갈쿠리며 낫을 들고 덤비는 걸 보자하니 참 그렇다는 말이지.
그나마도 조카 둘이 팔 걷고 나서서 거들었으니 그만했지.
조카 놈들도 사내라고는 달랑 둘 밖에 없더니 한 놈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몇 해전에 먼저 떠나버리고.
나머지 한 놈은 의사 노릇 한다고 밤낮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으니 데리고 와서 일도 못 시키지.
하기사 키만 꺽다리로 솟았지 손재주라고는 아주 손방이라는데 델고 와봤자 어디 써 먹을 수나 있을라는지.
여자들이라고 자식이 아니랴마는 그래도 이런 바깥 일에는 사내 손이 있어야하는데.
거기다가 혼자 오면 공연히 쓸쓸하고 막막한 마음이 들어서 그것도 참 싫다.
모쪼록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한 걸음이라도 더 다닐 일이다. ......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시퍼런 하늘 배경으로 소풍 나온듯 그림이.... 흥.
그럭저럭 봉분도 찾고 비니루 꽃이나따나 꽃도 꽂아놓았으니 생전에 좋아하셨다던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어마이 산소 앞에는 소주는 커녕 맹물도 한 잔 없다.
형제 중에 어머니 산소를 가장 각별히 생각하는 양반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어머니 앞에만 오면 그리 마음이 젖어오나보다.
처음에 예초기란 물건에 겁 먹고 충전식을 샀더라면 낭패를 볼 뻔했다. 가스 예초기로도 간신히 할 일을..
그림자가 길다란 걸 보니 해가 제법 기울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해 놓고보면 좋은 일이지.
그러니 이 다음에는 김밥이라도 몇 줄 사다가 아주 가족 소풍을 겸해서 정례화 시켜 볼 일이다.
올해처럼 참석자들이 많으니 좀 보기 좋으냐고. 즐비하게 서 있는 자손들 보고 어마이 입이 귀에 걸리셨겠구마.
게다가 뜻밖의 일로 예정에 없이 따라 붙은 며느리까지.
일 안하고 카메라 들고 땡땡이 친 애 엄마 덕분에 생각보다 사진이 많이 남아서 잘 됐네.
출발할 때 준비가 조금 소홀했으니 내년엔 무딘 낫도 날을 세우고
손도끼며 톱이며 갈쿠리도 두어개 더 들고 올 일이다.
깜빡 잊어버리기 전에 아카시아를 박멸할 방법도 어디 찾아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