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봤다. 처음부터 보지는 못하고 끝에서 대여섯회 쯤 봤나보다.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가 인터넷이 버벅거리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마침 재방송 중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애 엄마가 그 얼마 전에 무슨 이야기 끝에 곁말로 흘리던게 기억나서 자리 잡고 앉았지. 
어디 얼마나 재미 있는지 한 번 보자 하고.
.........
뭐, 그럭저럭 괜찮긴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됐었다. '허당' 때매...
1박 2일의 부작용인가?
맨날 나와서 어벙한 짓만 하던 녀석이 인상 쓰고 나와서 분위기 잡는게 도무지 몰입이 안된다는 말이지.
그래도 연기는 꽤 하드만. 전문 연기자들에 비해서 전혀 손색 없이.
하여간에 끄트머리를 시청했던 소감은 최소한 내가 싫어라하는 국산 드라마의 단골 설정들이 '덜'하더라는 것.

지상파에 케이블에 수십개 채널에서 하루 종일 돌려대는 국내외 드라마만 해도 아마 수십개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드라마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들.
필연적인 이유 없이 배배 꼬였거나
전혀 현실감 없는 황당한 설정과 같은 '편'으로 설정된 사람들끼리의 참, 말도 안되는 '오해'들도 그렇고 
이야기의 전개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하등 쓸모 없는 갈등. 
조마조마한 대목에서 싹둑 잘라 다음회의 시청률을 확보하는 고전적인 꼼수야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성립 자체가 의심스러운 억지스러운 상황을 위기 일변도로 밀고 나가거나 
천편일률, 하나같이 주인공을 좌절 일보직전까지 밀어부쳤다가 마지막에 후닥닥 대반전시키고
얼렁뚱땅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명색 '작가'들의 납작한 사고방식때문이다. 지겹거든.
그래서 때로는 그 '작가'라는 분들의 머리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이야기를 쓸려면 사람을 알고 써야지.
캐릭터의 일관성조차 제대로 지켜주지않는 작가가 뭔 작가냔 말이지.
실컷 장황하게 일 벌여놓고 일 좀 꼬였다고 대번에 낯 색을 바꾸고 등 돌리고....
그러다가 오해 풀렸다고 하루 아침에 '감동적으로' 끌어안고 눈물 짜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성격이나 사는 방식이 그리 자반 뒤집듯 하지는 않지.
사람으로 사람들과 더불어서 세상을 산다는 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거든.
식구들은 그런 날더러 그냥 보여주는대로 보지 않고 그런 걸 따지고 드냐면서 참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는데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왜 견디면서 봐야하는지.
그렇다고 내가 싫으니 너희도 보지 말아라는 말도 아닌데 '나는 그렇다'라는 생각조차도 듣기 싫다는 것인지,
이러쿵 저러쿵 결론이 날 이야기도 아니고
아니, 별 것 아닌 드라마 몇 편 보다가 가족끼리 앉아서 날 세우고 심지 세우게 생겼다 싶어 그만 중동무이 하기는 했지만, 개개의 취향이나 생각이 왜 비난을 받고 평가를 받아야 하냐는 말씀이지.   

뭐 어쨌든 그랬었다는 이야기니 일단 각설하고,
내가 본 대목이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단은 호감이었다.
뭐 그렇다고 젊은 애들 나오는 멜로 드라마가 수삼년 전의 모래시계나 얼마 전 나 혼자만 기를 쓰고 챙겨 봤던 대왕세종같은 무게로 느껴지기는 어렵겠지만, 일단은 '나쁜 놈'들이 일을 꾸미고 쑥덕거려도 일단 중심 캐릭터가 흔들리지 않아서 이야기의 흐름이 위태롭지는 않더라는 정도의 호감이다.
아, 물론 여차해서 구태의연하게 또 오해, 갈등, 시련 모드로 들어가면 그 길로 돌려버릴 참이었지만.

지금은 챙겨 보는 드라마가 없다.
기억에 남아있는 드라마는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모래 시계. 허준. 대장금. 하얀 거탑. 대왕세종. 베토벤 바이러스 정도다.
그 중에서 정말 몰입해서 챙겨봤던 드라마는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모래 시계. 하얀 거탑. 대왕세종 정도.
허준은 동의보감을 읽었던 관성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그저 그랬고 큰 아이의 채근으로 보기 시작했던 대장금은 그보다는 조금 나은 편. 베토벤 바이러스는 본격 음악 드라마라는 주장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은 그럭저럭 하더니 뒷부분의 이야기가 아주 산으로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황당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모래시계와 하얀 거탑. 그리고 약간 허술했지만 대왕세종.


지금은 챙겨 볼 드라마도 없고 사실은 드라마 자체가 그다지 큰 관심거리는 아니다. 
위의 것들 중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챙겨 본 드라마는 하나도 없고 '재미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간 쯤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보다가 뒷심이 빠져서 중동무이 한 것도 있으니 뭐, 식구들이 비난했듯이 나는 참 재미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챙겨 보는 게 거의 없다.
밥상 앞에 앉아서 되는대로 채널 돌리다보면 꼭 하나 둘씩 얻어 걸리는 1박2일이나 NCIS(이거 뜻밖에 참 재미있다. 캐릭터들이 다 살아 있지) 외에는 아직 그다지 챙겨 보고싶은 게 없다.
사는 게 드라마틱 하지 않으므로 해서 모쪼록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드라마 하나 쯤은 챙겨 보고싶다.
얼추 이만큼 살아오다보니 살아가는 즐거움이 반드시 심오하거나 고상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더라. 꿩 잡는 게 매라는 이야기지. 바라건대, 멜로건 사극이건 스릴러건 상관 없으니 부디 구질구질하게 쥐어 짜고 비틀고 하지 말고 조금은 선 굵고 반듯한 드라마 한 두개쯤 보면서 살자. 즐거운 것을 기다리는 것은 엔돌핀이다.
당신들이 만드는 것이 어떤 분야이건 상관 없이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는 법이다. 제발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놈의 귀때기만 붙들고 이리 저리 비틀지는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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