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안다.

흙이 달구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 하다. 실내에서는 다행히도 아직 뜨겁지 않아서.
2층 복도 뒤쪽으로 보이는 좀 지겨운 풍경.
계통 없이 노출 된 푸석푸석 마른 언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빳빳한 녹색 식물들은 정말 지겹지 않은가.

뒷쪽으로 보이는 문이 바람에 닫히기 전에 찍으려고 카메라 가질러 주차장까지 허겁지겁...
아니나 다를까 이내 문은 쿵 닫혀 버렸지만 다행히도 삼각대 대신 손각대를 선택한 덕에 그새 몇 장은 건질 수 있었다. 

결코 예쁘거나 멋진 사진은 아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뜨겁고 지겨워서 숨이 턱 막힐 그런 그림도 만들어보고 싶다. 
... 그럴려면 정말 숨이 턱 막힐만큼 뜨겁고 지겨운 여름이 와야하는구나. $ㄲㅆ^%^&^%&%@#......


zenit 300/4.5 




사람이 주변머리가 없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놓친 그림이 참 아깝지만 
남의 얼굴 몰래 찍어다가 내가 만든 그림이라고 걸어 놓을 수도 없고.
또 그랬다가는 요즘 같은 대명 천지에 언제 어느 시에 덜미를 잡혀서 망신을 당할 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배 고물 쪽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주머니 서너 분을 꼭 집어넣고 싶었지만 
결국 소심증으로 곁에 섰던 자전거만 집어 넣고 말았다.
남의 고달픈 일상이나 그다지 내보이고싶지 않을지도 모를 모습들에다가 뜬금없이 내 그림좀 만들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그렇고 몰래 찍어 놓고 이 그림 내가 찍었으니 내가 가져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도 참 버성버성한 일이라 결국은 그리 되고 말았다.      


풍파에 시들어 가는 어촌 아지매들의 깊은 얼굴이나 몸짓을 담지 못한 것은 꽤 많이 아깝지만
뭐 그래도 삐딱하게 자세 잡은 자전거나 뻘겋게 녹 슨 돛대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구만 그래.
사람들이 질색을 하건 말건 코끄트머리에다가 렌즈 들이대고 철퍼덕거려야 참 제대로 사람 찍었다고 어깨가 펴 질지는 모르겠지만
내사 원체가 소심증이라서 말이지.....

마미야 세코르 sx 55.8

작년 이맘 때 비 온 뒤의 해 질 무렵.
그림은 마음에 들지만
이런 류의 그림은 까닭도 모른 채 공연히 아프다.




이 날
비 오고 제법 바람이 불었다.

작년 가을 쯤인 듯.
마미야 55미리에 1.4 컨버터를 붙인 변태 77미리.포항 칠포 부근의 해안도로에서 내려다 본 마을

흥해 부근의 폐차장.
노을에 비껴진 폐차장의 실루엣이 꽤 그럴듯 해서 뭔가 철학적인 제목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딱이 근사한 이름이 떠오르지를 않아서.

그냥 막 떠오르는 느낌으로는 아주 옛날에 봤던 만화 영화에서 들었던 '인더스트리아' 라는 이름.
.........
상상력의 고갈.
뭐, 어쩌냐. 이름이야 유치하거나 말거나 어찌됐든 마미야 세코르 55미리는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는 효자다.
정말 헐값으로 손에 넣어서 그렇고
막 굴려도 안타깝지 않을만큼 외관이 적당히 허름한 것도 그렇다. 
게다가 마운트에 걸려서 조리개 링 뒷쪽을 갈아 내버렸으니 아마도 십년이 지나도 팔려 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을걸.
이래저래 기특한 애물단지지.


안개가 낀 날을 좋아한다.
내 고향도 안개가 많은 도시다.
하지만 이 곳의 안개는 내 유소년기의 추억 속에 있는 막막히 가라앉은 안개와는 다르다. 이 곳의 안개는 흐른다. 
海霧다. 식은 바다로 부터 흘러드는.

초여름 새벽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혼자 진주 망경산 위에 올라 내려다보던, 마치 구름 위에 올라 서 버린 듯 눈 아래 분지를 말끔히 지워버린 채 천천히 넘실거리던 안개.
안개 속에 있건 안개를 딛고 올라 서 있건 안개는 내게 어떤 위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적막하고 막막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곳의 안개는 무슨 전설의 해룡이 뭍으로 흘러 드는 듯 
낮은 곳을 따라 구불텅 구불텅 유유히 흘러 드는 움직이는 안개다.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된 후, 뭍으로 슬금슬금 흘러드는 안개 뭉치를 처음 봤을 때 하도 신기해서
정말 저 짙은 안개 뭉치 속에 뭔가 숨어서 들어 오고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이 곳의 안개가 좀 더 짙다.
느낌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약간 짠 맛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여기는 강구항이다.
새벽에 마을을 까마득히 덮고 있는 안개를 보고는 서둘러 챙겨 나갔지만 욕심보다는 좀 늦은 시각이라 안개는 많이 걷혀버렸다.
카메라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 구계항으로 되돌아 갔다.


강구항 보다는 구계항이 우리 마을에서 더 가깝다.
물론 거대한 거미를 닮은 뻘건 게딱지들로 유명한 강구항 보다는 훨씬 덜 유명하며, 작고 조용하고 구석진 곳이다.
그러니 항구라기보다는 포구에 가깝다. 
나는 강구항보다 이 곳을 더 좋아한다.
어촌의 원형질에 좀 더 가깝고, 조금 더 원초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 각도가 마음에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뭐, 사실 이런 저런 이유는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 붙인 것이겠지.
사랑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나는 이러저러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연유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멍청이가 어디있냐고.
눈에 꽁껍디가 덮이면 뭔 핑계를 못댈까.
그러니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는 거다. 쓸 데 없이 구질주질하게 사연을 갖다 붙이는 것도 습관이다.

늘 느끼지만
안개는 사진빨이 좋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덕분에 사물의 채색이 좀 더 짙어지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뒷쪽의 배경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아웃시켜서 과감히 정리해버리는 무지막지한 폭력성에서 더욱 그러하다.
안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재주일지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게 배경을 쓱싹 지워버리고 각자의 낯선 상상력으로 뒷마무리를 맡겨버리는...
어쨌든 맑은 날의 그것 보다, 궂은 날의 그것 보다, 일껏 시간 맞춰서 시도 해 봤던 해 질녘의 그것 보다 안개 낀 구계항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안개는 여전히 내게 위안인가 보다. 


안개는 해가 머리 위로 오르면 꽤 빠르게 걷힌다. 
안개 속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으로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 새 정수리 부근이 훤해지고
이내 쨍 하게 떠 올라버린 해가 안개를 흩어버리면
순식간에 무방비로 노출 되어버린 내 꼴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해서 짜증스러운 기분이 되고 만다.
혹,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사라져가는 안개의 끝자락을 붙들지 못해서 허무해지기 일쑤고.  

그러니 모쪼록 그런 꼴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멀쩡한 일상으로 돌아 갈 일이다.
아니라면 어디 포구 구석지의 선술집 포장을 들치고 들어가서 뜨끈한 해장국이라도 한 사발 들이키든지.
하마나 그 시간에 벌써 문을 열었을리는 없겠지만. 



벼르고 벼르고 몇 달을 벼르다가 현상소에 맡긴 필름이 사진으로 되돌아 왔다.
일반 스캔이지만 우선 느낌은 괜찮다. 다만 흑백이 거의 다 날아 가버려서 좀 섭섭하다.

오십천변의 낚시꾼.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내 사진을 완성 시켜주기를 바랬지만...... ㅡㅡ
아마도 깔개나 낚시 의자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끝까지 저 옹색하고 불편한 자세를 바꾸지 않던 사나희.
야시카 35ME.  

가족들과 구룡포 나들이 때 적산 가옥에서.
일포드 125

부흥리 앞바다.
펜탁스 135였는지 니코르 105였는지 도무지 오락가락...

이것도......... @@

큰 놈 수시 전형 때 들렀던 서울 모 처의 까페.
맞은 편에 앉았던 큰 놈이 찍었다.
초점이 살짝 나갔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역시 야시카에 대한 과도한 편애.... 

마을 뒷 산 산기슭. 기대보다 한 참 못해서 실망했던 그림.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다. 욕심껏 집어넣으면 이꼴이 난다는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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