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했습니다.
이제 막 사고가 난 듯 도로공사 무쏘에서 직원들이 막 뛰어내려서 차량 통제를 시작하던 참이었지요.
이른 아침이라 한적한 길에서 과속을 하다 졸았는지 차종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앞뒤로 완전히 깨져버린 차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그 여자는 길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머리 쪽이 많이 손상되어 아마도 그 자리에서 죽은 듯 했습니다.
도로공사 직원의 경광봉 지시에 따라 갓길 쪽으로 돌아서 서행을 하는데 그 시신은 일 차선에 부서진 차체들과 뒤엉켜서 머리를 분리대 쪽으로 향하고 엎드린 자세였습니다. 머리 쪽으로는 거의 형체를 분간할 수 없었고 옷 아래쪽으로 맨발인 채로 던져진 하얀 종아리가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어리둥절 고개를 빼고 보려는 것을 황급히 제지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뒷자리에 있던 큰 아이는 결국 보고 말았는지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 사람도 뭔가 바쁜 일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을 텐데 하늘에 매인 명이 무엇이길래 저렇듯 허망하게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지, 사고현장의 처참함도 그랬지만 사람이 그런 시각에 그런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뭔 쓸모없는 잡념이 며칠간 꽤 많았습니다.
몇 년 사이에 내 주변으로 부쩍 죽음이 많아집니다.
사고무친 우리 식구가 어머니처럼 의지하던 앞집 할머니가 훌쩍 세상 버리고 가셨고
팔자 기구한 큰 누님의 외아들 서른두 살 조카 놈은 뇌종양으로 불의에 쓰러져 두 해를 못 넘기고 세상을 떴습니다.지인의 돌배기 어린 딸은 세상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떠났습니다.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마음에 이른 아침 고속도로에서 낯모르는 이의 죽음까지 목격을 하고 보니 심사가 몹시 편찮았습니다.
오십이면 지천명이라는데 이게 대체 하늘이 내린 수명을 짐작한다는 것인지 또한 그리하여서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글자 그대로 그 어떤 하늘의 명을 알아듣는다는 말인지,
그렇다면 하늘의 명이라는 것이 대체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의 힘 말고 또 다른 어떤 무엇이 있는지, 쉰이라는 나이가 바야흐로 그러한 무거운 명제들을 충분히 감당하고 삭일 수 있는 대단한 나이라는 건지..
누군가의 말처럼 나이에 맞는 치레를 하는 것인지, 그 나이 치레가 그런 것인지는 나도 이렇다 할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만 지천명이 내가 여태 알고 있던 그런 뜻에 다름 아니라면 나는 아직 지천명을 받들어 모실 그릇이 못되는 모양입니다. 불혹도 버리고 지천명을 받들어야할 지경에 아직 세상에 대한 의혹도 다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이지요.
그릇이 그 모양이다 보니 살다가 수틀리면 하늘에다 대고 말뚝질도 서슴치 않는 잡종입니다만 이러 저러이 허망하게 꺾이는 목숨들을 보자 하니 대고 먹이는 감자에도 힘이 빠집니다.
생각이 많습니다.
술에 물 탄 듯 흐리멍덩하게 수삼 년을 살다가 요새 들어 별별 잡념에 온갖 상상까지 다 하고 꿈자리까지 뒤숭숭한 것이 아주 개떡 같습니다.
자다 깬 땡중이 붙들고 놓지 못하는 화두처럼 세월이 내게 왔다가는 것인지 내가 세월 속에 왔다 가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생각만 어수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