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크기가 반드시 그것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것저것 생각 해 볼 겨를 없이 그냥 압도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새벽 등산길에 찍은 사진이다. 
해를 찍은 사진이지만 사진을 꺼내서 보다보니 오히려 그 아래 엑스트라로 등장한 배에 자꾸 눈이 간다.
바다를 내려다 본 각도 때문인지 하늘의 크기에 비해 작아도 너무 작아 보인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랬다는 것이 우습지만 이걸 보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해를 바라본 각도가 좀 낮았더라면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빛이 다르면 사물도 많이 달라 보인다.
사진은 참 재미있다. 시공 속의 사물을 국한시키고, 그걸 보고 또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카메라는 재미있는 물건이다.    





아침 산보길에.
등산을 끝내고 산을 돌아 나가는 길에서 만난 트럭.
초소 근무를 끝내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대기조 출동이었는지 신새벽에 일개 분대쯤이 단독 군장으로 졸고 앉아 있었다.

고생스럽기야 말해 뭐하랴마는
그래도 겨울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사나흘 워카 끈도 제대로 못 풀고 패대기 치다가 꼭두 새벽에 비상 걸려서 트럭 꼭대기에 달아놓은 캐리바 30인지 뭐였는지 다 썩은 기관총 붙들고 서서 한겨울 김포반도 칼바람.... 
춥기도 더럽게 춥더라마는 꼭 추워서만 이가 갈리나?
벌써 한 삼십년 다 됐구나. 지금 가서 더듬어보면 그 부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라나.
.........
사람이 낡기는 참 많이도 낡았나보다. 이제는 별 게 다 그립구나.







    


날이 갈 수록 손이 뜸해지는 LP.
불편함과 귀찮음, 
하지만 하도 오래 돼서 오히려 그런 불편함과 귀찮음이 더 익숙해진 물건. 턴테이블.
전원을 넣고 판을 얹고 돌리자면 조금은 부지런을 떨어야하지만
정작 올려놓고 몇 곡 듣자하면 그 모양은 참 지극히 게을러보이는 배신자.
중언부언 해 봤자 어차피 끝까지 안고 갈 것이 뻔한(그렇게 보이는) 애물단지.
그래도 아직은.
그래.
이것도 이 맛에.

 



마을 뒷쪽의 다락논.



이른 아침 등산길에 내려다 본 부경리.



비 그친 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 질 무렵 마을 뒷 산.




/2008년 2월 22일 강원도 정선 레일바이크 아우라지 역 부근에서/


산판 같은 곳에는 이 물건이 더러 현역으로 남아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듣기는 들었으되 정말 살아 있는 이 물건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생경스러움이란.

전설의 육발이.
6,70년대 먼지 자욱한 유년의 신작로를 주름잡던
아니, 거 참,
도무지 전설로만 떠돌아 그 사실을 확인 할 방법은 막연하되
어쨌든 들리는 소문에 그 힘이 참 무지막지하여 천하에 견줄 짐차가 없더라던 그 육발이.

이 물건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애초에 이걸 만든 양키들이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라면 육이오때부터 굴러 다녔다던 이런 고물딱지를 내다버리지 않고
수십년동안 죽어라고 고쳐 쓰고 있는 우리가 지독한 건지
혹,
그만큼 오래 굴려 먹어도 괜찮을만큼 썩 훌륭한 물건이란 것을
정작 육발이를 만든 저것들은 모르되 안목 깊은 우리만 알아 챈 것인지
짐승이 오래 살면 요물이 되고
물건이 오래면 도깨비가 된다던데
이제는 이 물건은 바야흐로 고물의 경계를 넘어서 골동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모르지.
간사하기 짝이없는 사람의 심사를 어떻게 믿어.
안그래도 수십년 굴러 먹다보니 이런저런 병통이 없지를 않을 것이니
어느 날 아침 뜬금없이 시동이 불통이라거나
아니래도 뭐 어쩌다 털털거릴 날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목에 땀내 나는 수건 두르고
그 팔뚝 한번 건장하게 굵은 쥔장 심기 사나운 날이면
짜증스러운 담배 연기 한 모금에 목숨이 간당간당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폐차장에 끌려가 납작하게 눌려질 지 누가 알아. 
그나마 오래 된 쇳덩어리라고 아주 값나가는 미제 고물로 추켜 세워 줄 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 시대 한 두어번 타 본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시발 택시는 또 어디 없는지.
하기야 인자는 정말 골동품 수집가가 아니라면 그게 택시로 남아 있을 턱이야 없지.
어쨌든 이 숨차고 어지럽게 달려 가던 세월이 살짝 비껴 간 어느 한 귀퉁이
누가 오래 된 세월을 저리 붙들어 놨는지
저 물건이 꽤 멀쩡한 꼬라지를 하고 저리 서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잖아?
저런 물건에까지 공연히 뭉클해지는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이란 것이 때로는 참 끔찍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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