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굳이 九月로 써 보고싶은 달이다.
구월은 한글로 구월이라고 써도 괜찮아 보인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매달아 둘만하기도 한 달이다.
벌써 구월이냐. 해마다 이맘때면 내딛는 걸음이 한번씩 휘청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긴 버릇이다. 
별 관심없이 처박아 두었던 블로그를 뜬금없이 열어서 쓸고 닦고 처음 몇 달은 꽤나 의욕적으로 시작했었는데
날이 갈 수록 점점 힘이 부친다. 동력이 상실된 때문인지. 글쎄.


하늘이 높아졌고
창을 닫아 두어도 별로 갑갑하지 않으며
손에 잡히지않는 무엇인가 때문에 허둥거리고 있는 구월이다. 

저녁 나절 마을 길을 걸어가는데 하늘도 구월이다.
욕심에 카메라를 들고 나서기는 했는데 욕심의 반에 반도 못 담았다. 
내심 카메라며 렌즈가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기실은 내공이 개발인 탓이다.
그 탓도 있지만 사실 사진을 기다리는데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come september / Billy Vaughan



지난 4월 1022번 지방도에서 찍은 사진.
낙동강 하구의 물금역 풍경이다.

원본은 지난달 컴퓨터 날려먹을 때 같이 날아 가버리고 어쩌다 USB에 남아있던 걸 찾아냈다.
크기를 줄여버린 파일이라 이리저리 만지다보니 그림이 좀 뭉개지는 느낌이라 갑갑하지만 그래도 하나 건진 게 어디냐고 또 올려 놔 보기로했다.
철로 위에 기차가 얹혀있는 그림도 있었는데 그건 아마 아주 잃어버린 모양이다.
별 건 아니지만 아깝다. 잃어버리고 나면 더 아까운 법이지.
또 언제 어디서 흔적도 없이 홀랑 날려 먹을지 모르는 노릇이니 모쪼록 부지런히 여기저기 어질러 놓을 따름이다.

디지털은 깡통이다.

  

바람 부는 날.
해맞이 공원 뒤쪽의 풍력발전단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배경이었지만 흑백변환하면서 커브를 틀었더니 좀 우울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원본도 좋았지만 나는 이 쪽이 더 좋다.

새벽 항구.
올림푸스 e20N들고 한참 돌아다닐 때의 사진.
어쩐지 밋밋한 느낌이라 던져 두었다가 수채화 효과로 변환했다.
얼핏 회화적인 느낌이 있기는 한데 이걸 그림으로 봐야하는지 사진으로 봐야하는지?
후보정이 옳네 그르네 따지는 이들도 더러 있더라만
사진이건 그림이건 떠받들고 살 일이 없으니 그렇게 매이기는 싫다. 어쨌든 나는 느낌이 나쁘지만 않다면 괜찮다는 주의니까. 
 
새벽 구계항.
이것 역시 애매한 그림을 수채화 효과로 변환한 것.
포토샵이란 물건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참 재미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속임수만 아니라면, 그리고 오리지날리티를 굳세게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참 유용한 물건.

산 아래 마을
회 1리에서 회 2리를 바라본 풍경.
같은 산 아래 마을이라도 평지에서 바로 솟은 산은 느낌이 다르다.

忙中閑.
배는 그 자신의 기능을 숨기지 않기때문에 참 매력적인 피사체다.
단, 그것이 고전적인 어선일 경우에 한해서.
그것이 매끄러운 유선형의 여객선이나 철갑 두른 이지스 함이라면 나는 별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배 사진 중의 하나.
특별할 것은 없지만 배라는 피사체를 수직으로 내려다 볼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계조.
삼사 공원에서 포항 쪽을 바라 본 풍경.


모두 다 올림푸스 e20N으로 찍은 그림이다.
지금은 장기 휴면 중인  e20N.
이제는 펜탁스 캔디.
성능은 훨씬 나아졌지만 진지함은 좀 덜해진 것 같다. 
당연하지. e20N의 그 느려터진 스피드로는 느리고 진지할 밖에....
거의 필름 카메라 수준의 속도. 때로는 필름 카메라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했던...
그래도 참 부지런히 가지고 다녔는데.


드물게 속사로 건진 그림.

꼬맹이 한자 시험 데려갔다가 얻은 그림.

연이어 그럭저럭 눈에 들어 온 그림 몇 장.

낯 선 곳을 어슬렁거리며 날리는 스냅은 즐거운 일이다.

탁자를 치우라고, 탁자 위를 좀 치우라고 잔소리 좀 고만 해.
뭔 장사 집 점포도 아니고 진열장 정리하듯 말끔하면 그게 뭔 사는 재미라고.
대충 밀어 놓기도 하고 우루루 쌓아 뒀다가 또 들고 나가기도 하고 뭐 그렇게 사는 거지

그냥 내 가진 것들 쳐다만 봐도 배가 부르니까
이것들 다 엇다 쓰는 거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안 쓰는 것들 내다 버리자고 야금야금 밀고 들어오지도 말고
재 놓은 물건때매 방구들이 꺼져도 좋고 꺼진 방구들에서 귀신이 나와도 좋으니까 가만 좀 내비 둬.
삼대 구년 거들떠도 안보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듣고싶은 비니루 LP도 있고
꿈자리 사나워 오밤중에 벌떡 일어나서 그게 뭐더라 뒤적거려보고싶은 삼십년 묵은 문고판도 있는 법이야.

그럴리가 있겠냐만
살다가 어느 날 돈 많이 생겨서 근사한 새 집 지어 이사 간다하면 그 때는 또 모르되
이 집 방구들 깔고 앉아 사는 동안에는 그냥 좀 편하게 살다 가게 내비 도.

그렇게 치우고 싶거든 니꺼나 좀 치워.

오늘은 뭘 하고 내일은 또 뭘 하냐고 내 방에 부지런쟁이 일귀신 불러 들여서 업고 댕기지 말고

사람이 오거나 가거나 밀어놓고 앉을 자리만 있으면 그만이지 뭔 손님맞이를 한다고

아 글쎄 있는대로 생긴대로 보고 듣고 살면 된다니까.  
부디 관절이 늘어질 때까지 게으름 피고 앉았다가 그냥 찬 물에 밥 말아서 마른 멸치나 고추장에 찍어서 먹자니까. 내 살도 썩어나가는 삼복에 이 눅눅한 장마철에 글쎄 웬 지청구는 그리 팔자로 늘어지냐는 말이지.  

 




 


컴퓨터 하드가 돌덩어리가 됐단다.
컴퓨터가 지 몸뚱이에 돌덩어리 달지 말란단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뭔 바이러스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다.
덕분에 글 수백편과 사진 수천장이 날아갔다.
워낙에 대형사고라서 그런지 실감이 안난다.
다행히 그동안 꾸역꾸역 블로그에 채워 놓은 것들과 이전에 드나들던 방에 남아있는 글들을 끌어모으면 글은 어지간히 메꿀 수는 있겠는데 올 초부터 반년 동안 찍었던 사진들은 영원히 사라진 셈인가.
혹시나 뭔 기계에 걸어서 돌려내면 데이터들을 다소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아 손이 오그라지는 걸 보면 아마도 그만한 돈을 들여서 찾을만 한 데이터들은 아닌가보다.
황망한 중에도 배가 고픈 걸 보면 뭐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으려나보다.
어쨌든 날아간 것들 찾을 길은 막연하고 텅텅 빈 컴퓨터 들고 앉아서 인터넷만 뒤적거리자니 꽤 허전하다.
돈으로 환산하지도 못할 찌끄레기들, 그거 붙들고 앉아 있으나 마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거 꽤 어지간한 뒷심이었는데.
되지도 않을 거 붙잡고 맴맴 돌지 말고 일찌감치 찬물 마시고 정신 채리라는 오마니 뜻인지도 모르겠다.

뭐, 
하도 황망하다보니 이리도 재 보고 저리도 기대보고 그런 거지 뭐.
짝에도 못 쓸 깡통.
후대에 물려 줄 중대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돌판에 새길 일이다.
하다 못해 점토판에 그려서 꿉어 놓든지.
이제 세상은 되돌릴 수 없는 디지털이지만
아날로그는 다 낡아 부서져도 흔적은 남는다.

아날로그 만세.
대를 이어 충성.


아날로그 by 아날로그

코닥 Tmax 400 + 니콘 F3

 

자전거

 MTB 처럼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원과 직선의 균형이 매우 아름다운 내 자전거.
나름대로 자전거에 대한 철학(소신?)은 확고하므로 나는 이것이 좋다.
산으로 끌고 올라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공도의 한 귀퉁이나 시골길을 달리는 데 갖가지 완충장치가 달린 복잡한 자전거는 필요치 않다.
모름지기 자전거라는 물건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안다면.



구속

 비바람이 많은 계절이라서인지 배들을 뭍으로 끌어 내서 묶어 두었더라.
묘한 느낌을 주는 풍경인데 제대로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오지 마!

그물 망 사이에 낀 생선을 후벼 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도둑 고양이.
그래. 먹어라. 먹고 살아야지. 그 생선 쥔장이라고 길냥이가 건드릴 걸 모르고 그리 뒀겠나.


노인과 바다

파도에 떠밀려 오는 해초들을 건져 올리는 노인들. 
먹으려고 건지는 건 아니겠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시멘트 바닥에다 넓게 펴서 말리는 걸 보면 어디다 거름으로 쓰려는지.
하기사 움직이는 모습이나 풍상에 찌든 얼굴이며 입성이 그런 걸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더라마는.
물도 맑았고 짭짤한 갯냄새 품은 바람도 괜찮았지만 내사 답답하기만 하더라.

 
//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의 의미가 일순 퇴색되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하던 순간에 옆구리를 찔리듯 찾아 오는 생각.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존재나 소멸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느낌. 예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듯 한 느낌.

나이가 들면 애착이나 집착이 느슨해 지는 것일까.
삶과 죽음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꽤나 천착해 본 적도 있었지만
때때로 일순간에 찾아 오는 이런 망연한 느낌이 이런 저런 미망에 대한 가닥 추림을 너무도 쉽게 끝내 버린다.  
우울증? 이런 것 과는 좀 다른데,
하여간 시간 속에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어떤 독소 같은 것 들이 있다.
그게 독인지 약인지는 얼마나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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