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시작하던 감기가 한 열흘 되더니 슬그머니 몸살까지 간다.
머리는 무겁고 으슬으슬 추운데다가 콧물 재채기 기침...
며칠 전 부터는 후각 세포가 기절을 해버렸는지 냄새를 전혀 맡을 수가 없다. 당연히 음식이 맛이 없다.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서 바깥 나들이를 못하겠더란 이야기다.
갱신이 귀찮아지니 맨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시난고난...
정신 좀 차리자 싶어서 공연히 주변에 있는 구닥다리들을 챙겨 보기로했다.
그럴듯하게 이름하여 아날로그 :Analog : 미국식으로는 애널러그. 영국식으로는 애널로그.
/연속적으로 변하는 물리량. 혹은 상사체(相似體, 相似形) ..... 짐작이 갈듯 말듯 도무지 무슨 말인지 요령부득.
좌우지간에 내게 있어서 아날로그란 물건의 방식이거나 물건이다. 쉽게 말하면 구닥다리. 혹은 고물.
말 그대로 아날로그. 렌코 L75.
세상에 나온지 족히 삼십년은 더 되었을 아이들러 방식의 고물.
그래도 여태 써 본 것들 중 가장 깊은 소리를 만들어 주는 물건.
아이들러인데도 럼블이 잡히지 않는 신통한 놈. 다만 고무가 경화되었는지 스타트가 느려서 고민 중.
데논 D103과 록산 코러스 두 개를 꼬마 방문객들의 해작질에 날려 먹고는 이제는 고만 번개표 슈어 55로 귀화.
아이고, 인자는 이만 하면 됐지 뭐.
이건 아마도 사십년은 더 되었을 듯. 스코트 7591 PP. 아마도 극장용?
수삼년 전에 퀵실버 KT88 모노블록에서 다운그레이드 이후로 장수 중.
탄노이3838은 그럭저럭 울려주지만 마루에 있는 AR4X를 만나면 볼륨을 웬만큼 올려도 더 이상 오도가도 못하는 약골. 저능률 밀폐형한테는 꼼짝을 못한다.
그러게 힘이 좀 부족하고 지나치게 온순한 게 흠이지만 이것 역시도 이제는 별 불만이 없다.
불만도 없지만 사실은 이제는 크게 관심이 안 간다.... 잡음 없이 소리만 나면 된다는 거지.
초단관의 스펙도 모르고 여태 듣고 있는 걸 보면 바야흐로 득음? 아니면 아주 거렁뱅이 신선이 돼 가는 걸까? @@...
탄노이 3838과 저역을 잘라버린 그룬디히 풀레인지.
통은 사제 알텍용을 강제 귀화... 내부 공명 방지용으로 이불 솜 한 채씩...
싸 보이는 외장을 콩기름으로 그럴싸하게 위장..
딱이 귓 속을 파고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지간 한 놈들은 그다지 눈에 들지 않을만큼의 제 자리를 지켜주는 괜찮은 놈. 이것 또한 나이는 한 삼십년 족히 먹었을 고물.
4륜은 4륜이되 4륜 구동을 위해서는 뻰찌 들고 앞바퀴의 허브를 비틀어야하는 명실상부한 아날로그.
4,5년 전쯤 차를 끌고 온 후로 아직까지 한 번도 세차를 안 해 줬다는(사실은 별로 세차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지않는...) 전설(?)을 간직한, 그래도 기특하게도 큰 고장 없이 여태 잘 구불러댕기는 듬직한 고물.
혹한기만 되면 수시로 방전에다 연료 경화로 아침마다 끌끌거리는 것이 고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포항 시내의 카메라 샵에서 우연히 눌러 본 셔터의 감촉을 뿌리치지 못하고 궁리 끝에 따로 구한 니콘 F3.
내구성이며 기계적인 정확도는 차지하고서라도 정말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그 말초적인(!) 셔터감이라니!!
지금은 흑백 필름을 물고 앉아서 가뭄에 콩 나듯이 출사 중... 필름은 도대체 언제 빼냐.......
펜탁스와 마운트가 호환되지 않으니 당연히 렌즈 구성이 중복이다.... 다만 조만간에 m42 어댑터를 구해서 기존 렌즈를 공유하면 그럭저럭...
한 이십년 보듬고 있던 곰팡이 자욱한 캐논 AE1을 갖다주고 바꿔 온 펜탁스 MX.
배터리가 없어도 노출계를 제외한 전 기능이 작동 가능한 이 놈은 상시용이면서 비상용이다.
유사시의 보험이기도 하고...
야시카 일렉트로 GX.
이건 순전히 인터넷의 예제 사진을 보고 그 느낌에 현혹돼서 충동구매한 물건.
잘만 길들이면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사진을 뽑아 주리라는 희망 품고있는..... 아직까지는 품고만 있는 구닥다리.
챙겨보니 뭐 오갈 데 없는 구닥다리 고물 인생이구만 뭘.
좀 더 챙겨보면 구석구석 뭔 먼지 뒤집어 쓴 고물들이 좀 더 나올 것 같기는 한데 오늘은 이까지만.
책상에 한참 앉아있다보니 허리도 쑤시고 머리도 지끈지끈...
약이나 뭐 그런 걸로 쓱싹 없어지지 않는 걸 보면 혹시 감기몸살도 아날로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