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비 온 뒤의 해 질 무렵.
그림은 마음에 들지만
이런 류의 그림은 까닭도 모른 채 공연히 아프다.




이 날
비 오고 제법 바람이 불었다.

작년 가을 쯤인 듯.
마미야 55미리에 1.4 컨버터를 붙인 변태 77미리.포항 칠포 부근의 해안도로에서 내려다 본 마을

흥해 부근의 폐차장.
노을에 비껴진 폐차장의 실루엣이 꽤 그럴듯 해서 뭔가 철학적인 제목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딱이 근사한 이름이 떠오르지를 않아서.

그냥 막 떠오르는 느낌으로는 아주 옛날에 봤던 만화 영화에서 들었던 '인더스트리아' 라는 이름.
.........
상상력의 고갈.
뭐, 어쩌냐. 이름이야 유치하거나 말거나 어찌됐든 마미야 세코르 55미리는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는 효자다.
정말 헐값으로 손에 넣어서 그렇고
막 굴려도 안타깝지 않을만큼 외관이 적당히 허름한 것도 그렇다. 
게다가 마운트에 걸려서 조리개 링 뒷쪽을 갈아 내버렸으니 아마도 십년이 지나도 팔려 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을걸.
이래저래 기특한 애물단지지.


안개가 낀 날을 좋아한다.
내 고향도 안개가 많은 도시다.
하지만 이 곳의 안개는 내 유소년기의 추억 속에 있는 막막히 가라앉은 안개와는 다르다. 이 곳의 안개는 흐른다. 
海霧다. 식은 바다로 부터 흘러드는.

초여름 새벽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혼자 진주 망경산 위에 올라 내려다보던, 마치 구름 위에 올라 서 버린 듯 눈 아래 분지를 말끔히 지워버린 채 천천히 넘실거리던 안개.
안개 속에 있건 안개를 딛고 올라 서 있건 안개는 내게 어떤 위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적막하고 막막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곳의 안개는 무슨 전설의 해룡이 뭍으로 흘러 드는 듯 
낮은 곳을 따라 구불텅 구불텅 유유히 흘러 드는 움직이는 안개다.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된 후, 뭍으로 슬금슬금 흘러드는 안개 뭉치를 처음 봤을 때 하도 신기해서
정말 저 짙은 안개 뭉치 속에 뭔가 숨어서 들어 오고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이 곳의 안개가 좀 더 짙다.
느낌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약간 짠 맛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여기는 강구항이다.
새벽에 마을을 까마득히 덮고 있는 안개를 보고는 서둘러 챙겨 나갔지만 욕심보다는 좀 늦은 시각이라 안개는 많이 걷혀버렸다.
카메라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 구계항으로 되돌아 갔다.


강구항 보다는 구계항이 우리 마을에서 더 가깝다.
물론 거대한 거미를 닮은 뻘건 게딱지들로 유명한 강구항 보다는 훨씬 덜 유명하며, 작고 조용하고 구석진 곳이다.
그러니 항구라기보다는 포구에 가깝다. 
나는 강구항보다 이 곳을 더 좋아한다.
어촌의 원형질에 좀 더 가깝고, 조금 더 원초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 각도가 마음에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뭐, 사실 이런 저런 이유는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 붙인 것이겠지.
사랑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나는 이러저러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연유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멍청이가 어디있냐고.
눈에 꽁껍디가 덮이면 뭔 핑계를 못댈까.
그러니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는 거다. 쓸 데 없이 구질주질하게 사연을 갖다 붙이는 것도 습관이다.

늘 느끼지만
안개는 사진빨이 좋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덕분에 사물의 채색이 좀 더 짙어지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뒷쪽의 배경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아웃시켜서 과감히 정리해버리는 무지막지한 폭력성에서 더욱 그러하다.
안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재주일지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게 배경을 쓱싹 지워버리고 각자의 낯선 상상력으로 뒷마무리를 맡겨버리는...
어쨌든 맑은 날의 그것 보다, 궂은 날의 그것 보다, 일껏 시간 맞춰서 시도 해 봤던 해 질녘의 그것 보다 안개 낀 구계항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안개는 여전히 내게 위안인가 보다. 


안개는 해가 머리 위로 오르면 꽤 빠르게 걷힌다. 
안개 속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으로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 새 정수리 부근이 훤해지고
이내 쨍 하게 떠 올라버린 해가 안개를 흩어버리면
순식간에 무방비로 노출 되어버린 내 꼴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해서 짜증스러운 기분이 되고 만다.
혹,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사라져가는 안개의 끝자락을 붙들지 못해서 허무해지기 일쑤고.  

그러니 모쪼록 그런 꼴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멀쩡한 일상으로 돌아 갈 일이다.
아니라면 어디 포구 구석지의 선술집 포장을 들치고 들어가서 뜨끈한 해장국이라도 한 사발 들이키든지.
하마나 그 시간에 벌써 문을 열었을리는 없겠지만. 



치과 치료를 하고 오는 길에 지난 주말에 맞춰 두었던 안경을 찾아왔다.
이건 일상용이다.
...
말하자면 일상용으로 쓸 돋보기라는 이야기다... ^@%!%$!%$!...   

이것 이외에 내가 갖고 있는 안경은 일 할 때 쓰는 안경이 집에 한 개, 사무실에 한 개.
그야말로 돋보기 용도의 높은 도수의 안경이 하나, 카메라 들고 나설 때 목에 걸고 가는 막 쓰는 안경이 두 개.
그리고 차에 걸려있는 돋보기 나이방... @@..
돋보기, 돋보기, 돋보기.... 그래서 모두 일곱 개....
안경 값만 해도 수십만원.
결국은 누진 다촛점 안경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이런 용도 저런 용도로 잡다한 도수의 안경이 필요하게 된 것.

나이보다 빨리 시작 된 노안이 점점 깊어지니 이제는 안경 없이는 거의 모든 일상이 갑갑하다.
애 엄마가 라식인지 라섹인지를 하고 싶다고, 수십년 코끄트머리에 걸쳐져있는 근시 안경을 벗어 던지고 싶다는데도 어지간하면 말리고 싶은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근시를 버리는 순간 찾아 올지도 모를 노안, 그리고 여기저기 덜그덕 거리는 대여섯개의 안경들...
물론 순전히 단골 안경점의 안경사 싸나희의 말일 뿐이지만. 
게다가 근시 안경이 원시 안경보다는 그래도 좀 덜 늙어 보이는 효과도 없지 않을 것이고.

뭐 그래도 안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노안은 정말 불편하며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더불어 지나간 세월 때문에 불현듯 쓸쓸해지는 효과까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용도의 안경이나마 없었더라면 인생 답답해서 어떻게 살 뻔했어?
나는 안경이 일곱 개야....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야...◎◎..

어쨌든 이번에 새로 만든 안경은 모양도 마음에 들 뿐더러
안경점 사나희가 아주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 덕분에 눈에도 아주 잘 맞아서 흡족해.
다만 얼결에 좀 비싼 듯한 것으로 선택했더니 약간 손이 오그라들었지만. 뭐, 그래서 이렇게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지.
여러모로 고마운 단골이라 그 또한 흡족하고.

---
글을 쓰다 말고 몇 주간 처 박아 둔 사이에 애 엄마는 서울에서 얼렁뚱땅 라식 수술을 하고 왔다.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방해꾼(?)이 없는 사이에 쓱싹 해치웠을까 생각이 들어 잘했군! 한 마디 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 빛나는 저돌과 즉흥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간 큰 여자.

아무튼 이제는 병이 깊어서 적당한 원거리에서 보는 사물들도 안경이 없이는 아사무사 한 지경이라 
'아빠 눈은 망원경이야!' 
근거리를 잘 보지 못하는 눈을 호도하기 위해 애들에게 으스대던 흰소리도 이제는 고만 옛말이 되고 말았다.

각설하고, 
그래서 나는 안경이 일곱개다. 많아서 자랑이라니깐... 참.... 

  



벼르고 벼르고 몇 달을 벼르다가 현상소에 맡긴 필름이 사진으로 되돌아 왔다.
일반 스캔이지만 우선 느낌은 괜찮다. 다만 흑백이 거의 다 날아 가버려서 좀 섭섭하다.

오십천변의 낚시꾼.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내 사진을 완성 시켜주기를 바랬지만...... ㅡㅡ
아마도 깔개나 낚시 의자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끝까지 저 옹색하고 불편한 자세를 바꾸지 않던 사나희.
야시카 35ME.  

가족들과 구룡포 나들이 때 적산 가옥에서.
일포드 125

부흥리 앞바다.
펜탁스 135였는지 니코르 105였는지 도무지 오락가락...

이것도......... @@

큰 놈 수시 전형 때 들렀던 서울 모 처의 까페.
맞은 편에 앉았던 큰 놈이 찍었다.
초점이 살짝 나갔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역시 야시카에 대한 과도한 편애.... 

마을 뒷 산 산기슭. 기대보다 한 참 못해서 실망했던 그림.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다. 욕심껏 집어넣으면 이꼴이 난다는 본보기.


돌아 볼 사이도 없이 3월이 다 갔다. 보낸 기억이 없는데 언제 다 갔노.
4월은 그러지 말아야지. 그나마 벌써 닷새는 지나버렸고. 
벼르던 성묘는 꿈도 못 꾼 채로 한식이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말 쯤에나 도모해 볼까.

동네 윤집사님 댁의 매화.
처음엔 배꽃인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그러게 꽃도 모르면서 뭔.

동네 뒷쪽의 갈대밭. 갈대는 다 져서 쭉정이만 남았다.
조금 지나면 여긴 아주 올챙이 소굴이다. 물반 고기반.
이제 곧 논에 물 담으면 산천이 떠나가라 개구리들이 울어제낄거야. 
그럼 제대로 봄이 왔다는 것이고 머지 않아 곧 여름이 된다는 이야기지.


마당의 연산홍.
철쭉은 벌써 만개했던데 얘는 왜 늦는지. 꽃은 똑 같던데 말이지. (내가 보기엔... )

읍내 오일장에 다녀 오는 길에 오십천변에서.
봄볕이 노곤하니 자전거도 한 잔 걸치고 삐딱하게 낮 잠 한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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