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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서 바라본 일출.

애엄마 새벽밥 해먹고 수능 감독 가던 날 차 빼주러 나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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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앞산에서 내려다본 동해바다.
정말 좋은 전화번호입니다.
일단 번호가 좋습니다. 0*4*3*2*1*
안보이는 글자는 모니터에 침발라서 박박 닦아내면 보일지도 모릅니다.

다 더해서 짓고 버리면 따라집니다. 고로, 섯다판에서 고민할 필요없이 바로 죽으면 됩니다.
그 외에도 일단 재수가 수시로 좋아서 자주 당첨되는 번호 올습니다. 심심할만하면 전화벨이 울립니다.

리리리~
여보시요.
축하합니다. 당첨 되셨습니다. 빰빠라빰~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금번 우리 인삼 영농조합에서는.....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안녕하세요 이번 모비씨 방송국 사은 행사에서.....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니서치내서치 여론조사 팀인데 대체 당신은 몇살이며 남잔지 여잔지...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안녕하세요 한국겔포스 여론조사 상황실인데 당신은 핵폐기장을 엇다 팔아묵는 것이 좋다고...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아! 박서방이가! 내 금수이 아부진데......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누고?
.......내다!
딸깍.


리리리~
여보시요.
거 어데요?
.............우리집이요!
쾅.

....................
,,,,,
손 돌릴 새 없이 바쁠때 이런 전화 한 번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대량 생산됩니다. 짜 내서 장에 내다 팔면 돈 될지도 모릅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색깔의 기억이 슬슬 올라옵니다.
이삼십년 전에 시외버스 타면 기사 올라오기 전에 삼인조 선수가 얼른 올라옵니다.

....바쁜 여정에 잠시 광고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첨단 반도체 기술로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모렉스 시계 홍보 팀으로써......

..중략.......(표쪼가리 하나씩 나눠주고...)


저기! 안경 낀 할아버지 당첨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시계는 무료이며 제세 공과금 이만 오천원만 내시면 싯가 십오만원의 모렉스 시계를 드리겠습니다! 아! 예! 저기 뽀골머리 아주메도 당첨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보도시 해방되어 인자는 출발하나 싶으면 중간 정류장에서 꼭 하나 올라옵니다.

....안냐심까. 저는 모년 모일 신문지상에 보도 된 꽃제비 나이트크럽 칼부림 사껀에 연루되어 멫년간을 복역하고 엊그지 출감한 깡 모시기라고 합니다.

....중략.......


이를 악물고 착실히 살아보려 했으나 사회의 질시와 냉대에.....(슥 한번 둘러보고)


.....중략.......


여기 이 고급 볼펜 한다스를 이천원씩에 사 주신다면.....(모른 척 팔뚝에 문신 한 번 보여주고)

만약 여러분이 외면하신다면 이 사람 또 다시 어두운 뒷골목에서 지나가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노리게 될지도 모르는......

..........이런 조옷도....협박이잖아...... 뭐 어쨌든 오십원짜리 모나미 볼펜 한다스에 이천원씩 받아먹고 ..... 헐렁한 레자가방 들고 유유히 내립니다.

볼펜 장사는 요즘 잘 안보이지만 그 시절 시계 장사랑 요즘 전화통 붙들고 당첨 장사하는 거시기들이랑 많이 닮았습니다. 참 촌스럽고 낯 간지러운 수법입디다마는 수십년이 지나도 이런 수법이 남아있는 걸 보면....아니 오히려 더 창궐하는 걸 보면 촌스럽기는 해도 썩 괜찮은 아이템인 모냥입니다. 아니라면 이나라 백성들이 아직도 그만큼 순진하다는 건지 어리석다는 건지.

아, 그거요?
시계는 나도 두어 번 당첨 되어 봤지요. 이거 그냥 세금은 은행 가서 내고 시방은 그냥 가져 가면 안되겠냐고 물어 볼라다가 삼인조한테 얻어 터질까봐 암말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볼펜 역시 한 번도 안 사봤습니다.
사실 좀 꿀리고 켕기긴 하던데 못 이겨서 샀다가는 내 못된 소가지가 더 켕길 거 같애서 안사고 버텼습니다. 안 산다니 스윽 째려보기는 합디다만. 뭐, 늬가 볼펜 한타스때매 종점까지 가것냐 똥배짱으로 뭉개고 앉았노라니 못 마땅하나마 그냥 갑디다. 뭐 지가 내 따라서 먼 데까지 갈 일은 없었것지요 뭐.

한동안 당첨 됐다는 전화가 뻔질나게 와 쌓더니 근래에는 좀 뜸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잦아집니다. 어제 오늘 연거푸 세 번을 받았는데 그 중 두 번이 같은 데서 걸려 온 전화라서 그냥 암말도 안하고 아까 오전에도 전화 왔었지요........했더니 그 아가씨도 멋적은지 피식 웃으면서 안녕히 계세요 하고 그만 끊습디다.  
짜증도 나고 우습기도 합니다만 세상이 여기저기 많이 어려운 모냥입니다. 다들 굳건하게 버팁시다.

그건 그렇고 전화번호 안사실라오?
........좋은 번호 놓치시면 손해를 보심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외면으로 이 사람 다시 어두운 골목길에...... ......새끼들 데리고 가서 오뎅이나 사 먹고 와야지요 뭘. 흐흐...



옛날 소리가 듣고싶어서 우드베이스의 오래 된 구식 턴테이블을 하나 구했다.
목을 빼고 이틀을 기다렸더니 운송 중에 쥐어박혀서 두껑은 깨지고 하판은 박살이 났다.
그 서슬에 대미지를 입었는지 한쪽 채널도 먹통이다.
판매자와 통화끝에 환불 받기로 하고 카드리지와 헤드셀은 돌려주고 나머지 큰 덩어리는 내던지기로 했다. 손 떠나면 나몰라라 오리발 신사들이 많은 인터넷 장터에서 그래도 점잖은 분을 만났으니 내가 사는 건 이모양이라도 인덕은 마르지 않았나 싶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못쓰는 물건이거니 내다 놓으려다가 가만 보니 적당히 낡은 우드 베이스가 아깝다.
오디오쟁이라봤자 뚜껑만 열면 까막눈이지만 기왕에 내던지기로 한 것이니 죽이되건 떡이 되건 주물러보기로 했다. 한 시간쯤 인두를 꼬나들고 야단법석을 치다보니 소리가 나기는 나는데 찌---  험 소리는 죽어도 안잡힌다. 고약하다. 어딘가에 단단히 쥐어박힌 모양이다.
어쨌든 소리가 나니 판을 한 장 얹어 본다. 70, 80년대 우리나라 노래들이다. 속 빈 강정같은, 그렇지만 목질의 통울림이 묻어나는 둔탁한 소리에 가슴이 착 가라앉는다.

그랬다.
십년 가까이 백원짜리 압전형 세라믹 바늘로 듣다가 포노 이퀄라이저라는 게 반드시 붙어야만 소리가 난다는 마그네틱 카드리지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소리와 흡사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귀족들의 행진, 트윈폴리오, 송창식, 정태춘, 조동진... 장드롱의 무반주 첼로. 장드롱은 사놓고 차마 듣지를 못했었다. 백원짜리 바늘이 다 긁어먹을까봐.

지금은?
고물이나마 한 때는 방송국에서 깃발 날렸다는 꽤 쓸만한 턴테이블에 시방 구식 빅터 턴테이블에 달려있는 카드리지 보다도 열배는 더 비싼 꽤 유명한 바늘을 달아 두었는데도 그 때만큼 눈물나게 좋지를 않아 쓸쓸하네. 기계가 좋아지면 심성도 기계를 따라가는지.

학교 잔디밭에 드러누워서 건전지 다 돼가는 택트 야전으로 베토벤을 듣고 가슴 벅차하던 그런... 그 때는 순진했다는 이야긴가. 그럼 지금은 뭔지. 교활해진 건가 아니면 까다롭고 삭막해진 건가. 그럴지도 몰라. 귀만 간사해지고 가슴팍은 시멘트처럼 굳어서.

식구들 깰라 소리 낮춰서 박은옥의 비오는 나루를 듣고 있자니 잘 어울리는구나. 어디론가 한없이 흘러가고야 말 것 같은 겨울 새벽. 아주 조용해요. 바람도 없고 개도 짖지 않아 막막한 겨울 새벽. 골목엔 오가는 사람도 없고 별만 시리게 빛나는 적요. 아. 지금 한림정 갈대밭 사이로 달리는 완행 기차 속이면 좋겠다.
좋기는. 서릿발 같은 겨울 새벽, 화살처럼 꽂힌 갈대밭에서 억장만 무너지지. 그래도 물 뚝뚝 흐르는 병맥주 따서  홍익회 후랑크 소세지랑 먹고 마시면 에헤라디여, 아아, 그 가슴 저린 삼등열차의 싸구려 낭만이라니!

아서라.
그러다가 해질 무렵 술 깨어나 보면 낯 선 시골역 대합실 톱밥 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 허망함을 어찌 할라고. 쓰고 버릴 말이라도 그 옛날은 꺼내 놓으면 가슴만 다치지
신새벽에 공연한 소릴. 오늘은 구식 턴테이블 돌리다가 시골역까지 갔구나. 정말 세월은 가나보다. 어느 새 판도 다 돌아 툭탁거리고 있구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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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가족이 다녀갔습니다.

이박삼일 삼박사일로 피서 겸해서 휴가를 우리 동네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어림잡아 6,7년 만에 술잔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한 해에 한두 번은 꼭 만났던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이 맞아 늘 같이 쏘다니고 대학 때도 같은 학교라 과는 달라도 사흘이 멀다 하고 어울려 곤죽이 되도록 퍼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리 퍼마시다 보면 술 뒤끝 코드가 달라서 더러 으르릉거리기도 했지만 사상적 공간적 시간적 공유점이 그 중 많아서 그리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 쯤에 그 친구에게 얽힌 여차여차한 일로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했었는데

지 기억과 내 기억이 어긋나서 오래 묵은 우정도 어긋났었습니다. 하도 속이 상해서 ‘세월과 세상이 너를 변질 시켰구나’ 운운 잘난 체 하면서 내 손으로 잘랐었습니다. 그 길로 일곱 해가 지나도록 전화 한 통화 안하고 지냈습니다. 간혹 생각이야 났었지만 크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작년에 그 친구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술 퍼마시고 다닐 때 수시로 쳐들어가서 속 꽤나 썩여드렸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다른 친구의 전갈로 전해 듣고 급히 고향 가서 영전에 절하고 그 녀석 등 한번 치고 왔습니다. 7년만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몇 달을 연락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 한식 때 어머니 산소에 벌초를 하고 돌아오면서 불현듯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지나는 길목에 저그 선산이 있어 저그 형제간에 벌초를 하고 있던 녀석을 그 어름에서 만나 차 한 잔 하고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내 새끼들한테 만 원짜리 하나씩 쥐어주면서 잘 가라고 내 차 모퉁이 돌아 갈 때까지 내외간에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녀석 아내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입니다. 내 집 솥뚜껑 몇 개인지도 잘 아는 아지매지요. 만나자 대뜸 왜 그리 연락도 없이 살았냐고 눈물이 글썽 원망을 해 댑디다.

여러 가지 양념에 우거지가 뒤섞인 복잡한 원망이었지요. 너그는 왜 나한테 연락 안했냐고 눙쳤더니 눈을 흘깁디다. 나도 그냥 조금 복잡하게 웃고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 들머리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처럼 휴가를 우리 동네서 지냈으면 한다고. 그래서 다른 친구네 가족이랑 어울려서 들이닥칠 테니 민박 하나 잡아 달라고.

누가 뭐랬습니까.

전화야 심상하니 받았지만 가슴 속으로 뭔가 뜨뜻한 것이 차올랐습니다. 긔거나 말거나 친구나 나나 이제는 나이를 꽤나 먹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따지고 가리고 까탈스럽기야 대충 알만한 사람은 아는 성벽이지만 남부여대 바리바리 이고지고 떠들썩하니 들이닥친 친구네 가족들을 맞고 보니 뭐 더 할 말도 없고 해결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습디다. 집구석이란 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히 좁아터져서 내 집에서 먹고 자고를 마련 못해서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좋았습니다. 민박집에서 연 이틀을 못 먹는 술로 날밤을 새다시피 무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처자식 대동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털털털 시동 걸어놓고 손 한 번 꼭 잡았지요.

젠장, 따지고 가리고 잘났다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고 부질없었습니다. 아웅다웅 옥신각신 재고 따지고 산 세월이 부끄러웠습니다. 백년도 못살 위인들이 천년만년 살 것같이 낭비하고 산 시간이 새끼들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언제 크나 같잖기만 하던 쪼꼬만이들이 벌써 고등학교, 중학교, 지 애비 머리 우에서 노는 꼴도 만만찮았고 녀석들이 보기에는 그 때 생기지도 않았던 우리 집 꼬맹이 녀석이 더 새삼스러웠겠지요.


여차한 사정으로 같이 자리를 못한 다른 한 친구는 겨울에 다시 도모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올 여름 지나면서는 늙어가는 것도 한 편으로는 썩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호호 할배는 아니라서 조금은 더 늙을 여력이 꽤 남은 듯하니 앞으로는 또 얼마나 어떻게 변해갈지 아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20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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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비닐판 중에 유로디스크에서 나온 외르크 데무스의 슈베르트 피아노 곡집이 있습니다.
즉흥곡, 왈츠, 등등 잡동사니로 섞인 판인데 그중에 1면 네번째 곡이지요.

Klavierstu"ck Es-dur op.posth. No.2 D 946,2(Komp. 1828).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녹음도 별로 많지않은 그렇고 그런 곡입니다.
하지만 때로 친지들이 뭐 하나쯤 녹음을 부탁할시면 거의 빼놓지않고 중간에 끼워넣는 감초입니다.
뭐 그래봤자 이게 대체 무슨 곡이냐는 반문은 지금껏 단 한 번 밖에 받아보지 못했지만.
게다가 어떤 이는 그 곡 별로더라고 김을 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 차별해서 넣거나 빼거나 합니다. 순전히 내 맘입니다.

이걸 듣고 있노라면 얼핏, 베토벤의 아델라이데가 그려내는 이미지와 엇비슷한 듯도 하고,
그보다도 조용조용 좀 더 아득한 이야기를 하는듯 하고 어찌 보면 슬픈듯, 어찌 보면 또 지극히 아름다운듯,
겉으로 드러나기를 고요하고 행복해보이나 그 속에 어쩐지 흠씬 젖은 가슴팍 한두개 품어있는듯도 보이고.
그러다가도 그저 아늑하게 잠기고만 싶은,
그래서 드물게 음악을 듣다가 이 음악 그저 끝나지 않고 한없이 계속되기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데무스 판으로 연주시간이 8분 21초라 소품 치고는 별로 짧은 편도 아닙니다.

그러다가 혼자 생각에 혹시 슈베르트가 이 곡을 노래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시 이 곡을 뼈대로 해서 꾸민 절절히 아름다운 노래가 유럽 어느 고서점 구석에 꼭꼭 숨어 있지는 않을까 허튼 생각도 해봤고. 뭐 역시나 그 이상은 아는바가 없습니다. 이 곡도 이 음반 외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고.
듣자하니 브렌델이 연주한 것이 일찌감치 발매가 되었더라는 말은 들었는데
어쩐지 그리 열나게 찾아헤매고싶은 생각은 들지않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브렌델의 연주 스타일이나 이미지가 이 곡과는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뭐 어쨌든 혼자 생각으로는 이건 반드시 노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다 안되면 누군가 아무나 독문학에 정통한 이를 꼬드겨서 맘에 드는 가사를 붙여 달래서
분더리히 처럼 곱게는 못해도, 피어스처럼 유장하게는 못해도,
(이 곡에는 디스카우는 안 맞을 것 같습니다. 하기사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독일어를 모르니 그 뜻이나 음을 달달 외기만이라도 해서
남 안볼 때 힘들여 한번 불러 보고싶은 욕망을 꽤 강하게 느껴보았던 곡입니다.
혹, 이게 노래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슈베르트는 일생의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라고 박박 우기고싶기도 할만큼
그 선율이 가곡적(?)인데.......
이거 누가 독일어로 가사 붙여서 신곡 발표회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
슈베르트 곡에 노래아닌 것이 어디 있냐는 말씀이지요?
무식하게 자다깨어 봉창 두드리는 소리 말라는 말씀일 것이고.
원 참, 그렇기는 합니다. 뜬금없이 뭔 신곡 발표회라니. 좋으면 그냥 좋았지 느닷없이 무슨 학예발표회도 아니고... 그래도 하도 좋아서 그래봤지요.
그래도 참 궁금하고 아쉽습니다.
때로는 별로 감흥없는 곡에도 열심히 가사를 붙인 슈베르트가 왜 이 아름다운 곡을 그냥 콩나물로만 남겨 두었는지.

.....
것도 무식한 이야기란 말씀이신데..
그 아쉬움이 이 곡을 들을때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급기야는 눈물 콧물 땟국물로
가슴을 아예 젓담아버리게 할라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요?
슈베르트가 그런 잔머리까지 굴렸다고요?
엣기! 앞뒤 꽉 막힌 로맨티스트 슈베르트 짱구로는 그런 잔머리 못 굴리네요.  

하기사 이 애잔한 곡에 절절한 가사를 완성시켜 그 누군가의 절창으로 불러제껴버리면
그 자리에서 가슴이 터져서 칵 죽어버릴 사람도 더러 몇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요.
아픈 사랑 한 두개 쯤 가슴에 품어안고 이 풍진세상 허위허위 살아가는 이들,
너덜너덜 코 푼 손수건 같은 그리움 가슴에 품어 밤마다 앓아눕는 화상들,
사는 것이 아쉬워 아쉬워 그저 밤이 더디가기만을 고대하는 사람들.

나 아닌 척 뒷짐 지고 먼산 두리번거릴 것 없네요.
암만 청맹과니 촌놈이라도 꽤 쓸만한 촉수 하나쯤은 갖고있는 법이랍니다.
시방 이 곡을 피아노 소리로만 듣기에도 때때로 공연히 코 끝이 시큼시큼 기분이 얄궂그만.
일단 한 번 들어나 보시고 아니라고 장담을 하시든지 장을 담그시던지 말든지.

2003. 11. 9


오륙십년대 글쟁이들은 담배를 사상초로 불렀지요. 오래 된 책 표지나 속지를 보면 예술 한답시고 빨뿌리나 궐련 삐딱하게 물고 썩다리 폼 잡은 사진들도 더러 많습니다. 아, 물론 표현이야 썩다리라고 눈을 흘겼지만 실은 아주 그럴싸하고 멋진 모습들이지요. 내공 없는 껍데기만 가지고는 흉내낼 수 없는 경지올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꼭 담배 핀다고 사상이 우수하거나 담배 안 핀다고 사상이 건전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뭔가 생각이 잘 안 돌때 그 사상초란 걸 피워물고 질겅거리면 뭔가 되는 듯 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이 정말 사상초라 그런 건지 순전히 심리적인 효과인지는 아리송 한 것이 어떨 때는 나 자신 역시 뭔가 해결되지 않는 일을 골몰할 때면 나도 모르게 볼펜 꼭대기를 지근지근 씹어 먹고 있는 나를 발견 할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담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학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심신이 건강한 어떤 사람들은 금연 운동권에서 보여주는 끔찍한 비디오에 현혹 되어서 나 같은 애연가들을 날이면 날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몹시 핍박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한데, 그래도 사는 것이 매우 팍팍하여 쓸쓸할 즈음이면 마당에 나가 별 보고 뒷짐지어 한 연기 하는 것이 그 중 낙일수도 있긴 한데....
그것도 수양이 덜되어 잡스런 것에 좌지우지 되는 범부라 그런 것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만....

너도나도 담배 끊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란 놈이 하는 말,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미개인이 있다니!'
그럼 나도 지기 싫어서,
'이렇게 좋은 담배를 끊는 지독한 놈도 있구나!'
맞받아치고 웃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좀 씁쓸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애연가인 나 자신도 자동차 속 같은 밀폐된 좁은 공간이라든지 하는 곳에서 다른 이들이 내 뿜는 담배 연기는 질색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피운 담배 연기도 바람 쐬고 들어 와 다시 맡아 보면 과연 그리 즐거운 내음은 아닌 것을 십분 인정하기는 합니다. 또한 애연가와 혐연가가 혼재하는 장소에서는 당연히 삼가해야 한다고 주장 하는 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나 다니다가 담배 한 대 피워 물려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저으기 눈치가 보이는 것이 예전 보다는 적잖이 옹색해진 듯 하여 심사가 꽤나 섭섭합니다.

예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두어 해 끊어 본 적도 있고 다시 핀 것도 뭣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기침 콜록거리면서 다시 피워 문 전력이 있으니 뭐 흰소리 한 마디 쯤 한다고 돌 맞을라는가요.  
인자는 섣불리 끊어 볼래도 담배 떼고 사나흘만에 무섭게 땡기는 그 놈의 단 것들이 무서워서, 그 놈의 먹성 때문에, 겁나게 불어나는 허리때매 고만 작파를 하게 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시절 그 양반들이라면 제법 생각도 꽤나 하고 글도 꽤나 쓰던 양반들인데 일없이 사상초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게다가 혹시라도 그런 사상초를 하루 아침에 딱 끊어버리면 사상적으로 매우 부실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어쨌든 세상의 주류에서 밀려 나면 옹색해지기 마련인 것이, 내노라 하는 학자며 석박사들이 나름대로 연구해 놓은 담배의 해악은 킁! 코웃음 한 번으로 날리려고 애쓰면서 담배가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되노라는 이웃의 농사꾼의 말 한마디에 옳다구나 희색이 돌아 거품 물고 대변 하다보면 공연히 혼자 좀 씁쓸히 우습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끊을 사람은 끊을 것이고 죽어도 못 끊을 사람은 허파에 구멍이 나더라도 자나깨나 물고 살 것을 뭐 그리 끊나 못끊나 악다구니에 심지어는 의지 박약이라는 처방까지 들고 다니면서 애연가를 속상하게 맹그는지 세상 참, 야속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어디 근사한 학위 가지신 석학들 중 흡연의 이로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내놓을 분은 안계실까요. 제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으로 강변을 해 봐도 도대체 별 볼일 없는 학위라 그런지 내 꺼는 당최 먹히지를 않아요.
어디 누구 깃대 잡으실 분 안계실까요.

백해무익론에 맞서는 '다문일익론'을 그래도 줄기차게 연구하는 애연가 옹이었습니다.



2003. 3.31


//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동안 여전히 담배를 놓지 못하다가  몇 해전 초여름 집안에 참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 일을 계기로 담배를 끊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담배란 물건이 사람에게 그리도 해악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정갈한 반찬과 갓 지은 밥 한그릇을 아주 맛있게 먹은 뒤에 맛보는 달콤한 과자나 빵. 그리고 그 과자와 빵을 곁들여 마시는 진한 커피한잔. 그리고 입 속에 커피 향을 머금은채로 마당에 서서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 한 모금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금연 이후의 애연가이기도 한 옹이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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