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하게 춥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햇님과 눈싸움을 해봤다.
그리고 이 컷을 찍고 난 직후 내 고물 카메라는 추위에 얼어서 리셋이 되어버렸다.
무시무시하게 춥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햇님과 눈싸움을 해봤다.
그리고 이 컷을 찍고 난 직후 내 고물 카메라는 추위에 얼어서 리셋이 되어버렸다.
AM 03:15 Bruch/ Kol Nidrei Viola/ Y. Bashmet Piano/ M. Muntian 知足.....또는 至足. |
다 삭아 떨어진 철판 쪼가리 덜렁거리며 칠 번 국도를 질주하는 시골 버스를 타 보았습니까.
부시시한 곱슬 머리에 나이방이 멋진 운전 기사가 켜 놓은 라디오를 들어 보았습니까.
고래고래 시끄러운 그 라디오 소리조차 잘 안 들리게 와당탕탕 발발발발 시끄러운 고물 버스를 타보았습니까.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학교 갔다 오는 여학생은 나이방 기사에게 인사 하고
오냐 조심해서 가거라.
내일 아침부터는 일찌기 나와 기다리지 말고 점빵에 있다가 버스 오는 거 보거든 찬차이 나오니라.
니 안 오면 내 안 가지.
나이방 기사는 일일이 일러주고
아나 봐라, 머시기 아바이야, 내 여게 내린다.
차부에 딱 갖다 대지 마고 쪼매 더 가서 골목 귀티에 좀 대 도. 오늘은 보따리가 두 개라 숨이 차서.
아이고 아지매요. 어만데 대다가 걸리마 안되는데.
짐이 많으마 집에 아저씨 나오라꼬 전화 해 디리까요.
아이다. 나도라.
백줴 영감태이한테 전화해봤자 그녀러 인간 쏘가지 뵈기 싫어서.
.......그러키, 짐 많고 할 때는 좀 거드라주마 손목대기가 뭉그라지는지.
반들반들한 바닥에는 여기저기 시장 보따리에
싸리 빗자루에 쓰레받기에 쓰레기통까지 있는 멀미 냄새 가득한 버스를 타 보았습니까.
생선 냄새 기름 냄새 찐빵 냄새 땀 냄새에
찌들어 비틀어진 고달픈 인생까지 잡탕 범벅으로 자욱한 촌 버스를 타 보았습니까.
그래도 창문만 열면 동해바다 푸른 바람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그런 버스를 타보았습니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오래 메말랐던 겨울 대지에 꽤 심상찮은 찬비가 뿌리고 빗방울 따라 바람도 꽤 설레어서 그랬었는지도 모르지.
그 동네에는 왜 갔었을까. 오래 전 살던 그 동네는 이제 별로 남은 기억이 없는데. 낯 익은 문패는 더러 남아 있었지만 문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는 내가 문을 두드려서 반겨 달려 나올 이도 없을 것을.
하루 내 내린 비로 젖어 주황색 나트륨 가로등에 검은 껍질을 드러낸 감나무며 얼굴을 부비면 얼굴조차 시멘트로 변해버릴 듯 냉담하기 짝이 없는 회색 압축 공법의 콘크리트 전봇대며 빗물에 젖어 더 음험하게 검붉어 보이는 빨간 벽돌 담.
그 곁의 깨끗하지 못한 개천조차 복개 하다가 도중에 방치 된 모양 그대로 모두 담합하여 내게서 등을 돌려버린 듯한 난감함에 잠시 두려웠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눈에 담은 채 그 자세 그대로 운전석을 한껏 뒤로 젖혀 잠시 버티어보다가 이내 그 의미 없는 오기에 미련없이 감자를 먹이면서 얼른 시동 키를 돌렸다.
흐린 유리창으로 보이는 헤드라이트에 비친 무기질의 시멘트 담들은 비좁은 골목에서 나를 밀어내듯 앞뒤로 옹색한데 나는 그 옹색한 공간에서 낡은 내 자동차의 껍질에 흠집이 생길까 조심하며 용케도 차를 돌려낸다. 솜씨도 좋지.
공간에 비해 턱없이 큰 덩치의 짐승이 궁싯거리며 비비적대는 꼴은 절망적이다. 그것은 이미 그 짐승이 자존과 자유를 박탈 당하고 구속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나도 그런 꼴이었을까. 내 차가 네 발달린 짐승에 속한다면.
좁은 골목을 돌아나와 검은 들판을 가로질러 고르지 못한 길을 우당탕 덜컹거리며 달려서 바다를 낀 또 다른 마을로 들어섰다. 몸은 그 마을은 벗어 났으되 마음은 벗어나지 못해 어마지두 어쩌지를 못하고 그냥 맹목 바닷가 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댔다.
달리는 동안 빗방울은 부나비 처럼 하나같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향해 쏟아지고 미처 따르지 못한 놈들은 자동차의 앞유리창을 부딛고 죽는다. 모터가 부실한 와이퍼는 힘겹게, 그렇지만 매우 고집스럽게 그 시체들을 밀어낸다. 이런 날이면 늘 그렇지만, 참 권태로운 풍경이다. 그것도 밤이면 더욱 더.
온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히 가라앉고 오늘은 파도 소리조차 없다.
전봇대에 기생하는 갓 쓴 외등 하나만 빗줄기를 달고 서 있을 뿐이다.
그랬다. 그 때 전봇대 아래 갓 쓴 외등 불빛을 받고 있던 그 여자는 연인의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연인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점에서는. 다만 그 여자는 온 몸에 아련한 연인의 냄새를 머금어 있었고 나는 다만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지. 전봇대 아래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해안선을 따라 걷던 하얀 종아리는 꽤나 색정적이었지만 나는 그 때 낭만적인 연인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돈이었으니까.
약간의 술과 안주를 곁들여 한 두 끼의 끼니를 해결하고 그 다음으로 젖은 군복을 벗어 말리면서 으스스한 맨몸에 조금이라도 깨끗한 이불을 덮고 그 날 밤을 잘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꼭 그만큼의 돈 만이 필요했던 것이지.
실연이었지. 그것도 사랑이었다면.
바다는 비를 먹고 더 검게 가라앉아 낭떠러지 처럼 까마득할 뿐이고 이런 밤에는 새도 날지 않는다.
아니, 원래가 밤에는 새가 날지 않던가?
....무슨 상관이냐고. 새야 날건 말건.
//갯펄에 주저앉은 갈매기를 구워 먹겠다고 생으로 털을 잡아 뽑던 잔인한 놈.
대검으로 목줄기를 관통 시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듯 근육질의 말대가리처럼 절망적으로 완강하던 싸리섬의 고참 하사.
지금 네가 내 눈앞에 있다면 이제는 내 손에 죽는다. 그 때 네 손아귀에서 생으로 털을 뽑히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똥갈매기처럼 단말마로 괙괙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죽어 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때는 간파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그 때 네놈이 기대고 서 있던 그 힘의 정체를 알았거든. 그 허약하기 짝이 없는 뒷배를 말이다. 그것이 세월의 힘이다. 이제는 이름도 잊고 얼굴도 잊었지만 언뜻 뒷모습으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네 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지. 그러한 존재들의 맨 앞줄에 서서 잔악함의 실재를 싸우는 개처럼 목덜미를 부풀려 내게 각인 시켜 주었던 덕분에 말이다. 죽일 놈.//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라디오를 켰다. 낯 익은 선율인데 불현듯 가슴을 적셔오길래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레스피기의 모음곡.
결국 세상은 순간의 선택들의 연속인가 보다.
내가 그대를 잊지 않으려 메모를 하려던 참이었지만 결국 당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레스피기가 내 가슴 속에 먼저 들어와버렸다.
그래. 그건 절망도 아니고 질투도 아니야. 까까머리 시절 그토록 못잊어 가슴 설레어 짝사랑하던 그 아이. 차마 고와서 손 끝하나 댈 수 없을 것 같아 말도 한 마디 못 붙여보고 몇 달을 생가슴만 앓던 그 아이가 어느 날 동네 양아치같은 지저분한 놈들과 히히덕거리며 집 앞을 지나가던 날 나는 알았지. 세상사가 대개 그렇듯이 더우기 여인네는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걸.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겉만 봐야 한다는 것을.
그 때의 낙심과 허망함은 오히려 그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보다는 세상의 알지 못할 이치와 어쩌면 그것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의 굴레에 대한 슬픔이었지.
고주망태가 된 육군 졸병 곁에 꼭 붙어 앉아서 끝끝내 손을 놓지 않던 영하.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술집 아가씨와 치기 만만한 로맨틱 육군 일등병이 영화에서처럼 맺어졌더라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하지만 로맨틱 육군 일등병과는 달리 그 술집 주인은 로맨틱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였던 모양이라 그날 밤의 섬싱은 낫싱이 되고야 말았지만 그날 외박나온 군바리 친구를 하룻 밤 맺어 줄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술집 주인과 싸우던 내 친구는 지금도 참 고맙지. 아마도 그 날 영하와 영화처럼 맺어졌더라면 지금 내 곁에 앞치마를 두른 영하가 날 닮은 아이들을 재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 한 번 맺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때였으니까. 흐흐.
글쎄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몰라. 아마 오늘 밤새 내릴 듯한 이 놈의 심상찮은 겨울 비 때문인 듯 한데
거 참, 무슨 심사로 가슴은 덜거덕거려서 오래된 영사기 돌리며 먼지 털고 앉았는지.
그래도 상처는 자랑하되 아까징끼는 바르고나서 보여야지. 시뻘건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까뒤집고 나 이만큼 다쳤노라고 동네방네 외고 다닌다면 자상을 입은 상처의 모양은 굳이 세세히 관찰 할 수 있겠으나 그게 피아에 반드시 무슨 득이 되겠냐는 말이다.
적당히 치료를 하고 약도 바른 연후에 절반이나 아물거든 그 때서야 내, 모일 모시에 이런저런 연유로 상처 하나 얻었노라고 차분히 뇌까리자면 고개 끄덕일 여유도 있을 것이고 어디보자 붕대 감은 팔뚝을 매만져 볼 마음도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말하자면,
어젯밤의 그 화려했던 술자리를 회상하려면 번지르르하게 채색되어 오고갔던 기름기 섞인 인사 말씀이라든지 혀끝을 자극하던 옥반 가효며 불현듯 코 끝을 스치던 어느 여인네의 분 냄새라든지 때때로 드물게나마 주먹을 부르쥐던 고담준론들을 떠올리며 지그시 감은 눈으로 완상하면 될 일이지 구태어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 넣어 토악질한 오물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덜 삭은 술과 안주를 분석해야 할 절박함은 어지간만 하면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원, 그렇다고 삼대구년 지난 기억을 끄집어내서 고름딱지 떨어져나간 자국 들여다보며 뭘 하자는건지.
난들 아나. 그냥 날씨 탓이라고 대충 뭉개어놓고 말지 뭘. 그러게 사람이란 짐승은 철들만 하면 저물어 가는지.
그래도 그리 어리석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제 앞길 훤히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끝끝내 그 인생 꾸역꾸역 살아갈 사람 몇이나 될까.
그러니 한 치 앞도 모르고 또 살아 보는 거지. 그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너도 속고 나도 속고...
강구항 부근의 과메기 덕장.
과메기는 이렇게 차가운 바닷바람을 쐬면서 시속 30키로미터 이하로 천천히 말라야하는 모양이다.
배추 값이 똥값이라 너도나도 밭째 갈아 엎어버리던 작년 가을
배추 무더기 내려 놓고 망연히 앉아 있는 장꾼 부부. 내가 시장에 들어서서부터 장 다 보고 떠날 때까지 저리 앉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