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읍내 오일장에 갔었습니다.
개천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보니 앞차가 닭장차네요. 여러 칸으로 높다라니 쌓아올린 네모난 철망 속에 털이 숭숭 빠진, 비루먹은 닭인지 중병아린지 수십 수백 마리가 쓰레기 뭉치처럼 엉켜 쑤셔 넣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쳐 보기에도 마음이 불편한데 맨 뒤쪽을 보니 낯 선 형상의 큼직한 기계가 놓여있었습니다. 까닭 없이 섬찟한 느낌에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그 의심스러운 기계의 출구 쪽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중충하게 젖어있는 기계 구멍 주변에 여기저기 닭털이며 썩 유쾌하지 못한 부산물들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닭을 모가지만 뎅겅 잘라서 퍼덕퍼덕 하는 놈을 기계 아가리에 던져 넣으면 자동으로 웅웅 돌면서 후다닥 털 뽑고 내장 털고 해서 순식간에 식용 생닭으로 둔갑시키는 물건으로 보였습니다.
일순간에 자동화라는 미명하에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매우 비도덕적인 행위의 일면을 본 듯하여 에잇, 살다가 못 볼꼴을 보고야 말았구나, 참담한 심사를 어쩌지 못하고 장을 보는 둥 마는 둥 어마지두 간에 돌아오기는 했는데 몇 날이 지나도 참 얄궂은 마음이 쉽사리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기계에 던져 넣건 목을 비틀어 잡건 모든 도축 방법이 짐승의 목숨을 끊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렇다고 해서 진작부터 먹어오던 닭고기나 육류들을 당장에 끊거나 삼가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닭 잡는 기계를 보고 참혹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인지요.
혹시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인간이란 종족의 값싼 지적 유희는 아닌지, 기왕에 먹을 음식이야 쌔고 쌨으니 그 경로나마 트집을 잡아서 조금 우아해보고 싶어 흘리는 악어의 눈물은 아닌지 이런 저런 궂은 생각으로 우울해졌습니다.
생명/
어떤 절대자가 생명의 저울을 걸어놓고 한 수도승을 시험하는데 저울의 한 쪽에 죽은 비둘기를 얹어두고 이윽고 말씀하시기를
‘이 비둘기의 생명에 걸맞은 값을 얹어보라.’
그 말씀에 공력이 대단하던 그 수도승, 선뜻 자신의 허벅지 살을 그 비둘기 만큼만하게 베어 저울 맞은편에 얹어 보았으나 저울추는 까딱도 않았습니다. 당황한 그 수도승, 이번에는 자신의 한 쪽 팔을 잘라 저울에 던졌으나 그래도 무정한 절대자의 추는 묵묵부답이었다지요. 그제야 아차, 깨달음을 얻은 그 수도승은 자신 스스로 그 저울에 올라섰고 비로소 저울은 수평으로 서더라는 이야깁니다.
무릇 온 세상의 온갖 미물들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깨우쳐 주고자하는 거룩한 이야기겠지요. 어린놈이 즐겨듣는 어린이 동화 테이프에 있던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값/
사람의 몸을 용도에 따라 값으로 환산해 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성인의 몸에 있는 지방으로 비누 일곱 개, 인으로 성냥 대가리를 만들고 철분과 탄소로 못과 연필심 등을 만들 수 있답니다. 돈으로는 오 만 원 쯤 받을 수 있다던가. 이건 공업적 해체 방법이랍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화학 약품으로 추출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말도 있었습니다. 인슐린, 알부민, 콜라겐, DNA와 호르몬 등은 매우 고가의 물질이라 그러네요. 촌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이야기라, 거 참, 세상에는 별 괴이한 짓을 하는 사람도 다 있구나, 그러고 넘기기는 했습니다만 가만 생각해보자니 그럼 나는 도대체 얼마짜리인지. 공업적 해체 방법이나 화학적인 방법은 매우 어려운 방법이라 제쳐 두고서라도 다소 엽기적이기는 하나 알기 쉽게 마트나 식육점에 널린 삼겹살 따위의 고깃덩어리로 환산을 하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기로 치자면 개나 소나 나이 든 수컷의 고기는 그 중 질이 떨어지는 정육이니 파는 사람이 몰래 속여 팔지만 않는다면 그 중 헐값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도대체 동네 뒷산에 목 매인채로 복날만 기다리며 살찌고 있는 개 값보다 나을지 어떨지.
사람의 값을 매긴다는 것부터가 다분히 특이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의 호기심을 만족 시키는 것 외에는 딱히 실효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공업적, 화학적, 식육적 방법 이외에 좀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수천 년 이래로 그 잘난 인간들이 짐승과 다르다고 우기는 정신적인 가치. 말하자면 개개인에 얽힌 인간관계의 경중에 따른 추상적인 값이나 어떤 사람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대한 무형의 가치. 아름다움, 소박함, 선함, 타인에 대한 긍휼이나 감사함 같은 것도 가능할까요?
말 해보나마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의 눈물 몇 방울, 남은 세월동안 쏟아 놓을 밑바닥 허전한 한숨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누군가가 소멸됨으로 해서 받게 될 경제적 이득이나 손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그 인간 살아생전에 보험을 얼마나 들어놨던가, 혹은 자식에게 남겨 줄 재산이나 여타 자산이 얼마 만큼이냐는 따위, 이런 것들로 사람의 가격이 정해지는 세상이라 생각하다보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수십 년 치이고 채이고 찢어지고 부서진 나머지 몸과 마음에 남겨진 기기묘묘한 형상의 온갖 흉터자국들, 그거 말끔히 지우고 새로 깨끗한 인생 하나 만들려면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요? 정말 온 세상에 무슨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보험 광고처럼 죽어서 타게 될 보험금으로 모든 것이 정산되고 탕감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 건가요. 그것 참, 아무리 궁리 해봐도 나는 그다지 값이 안 나갈 것 같은 생각에 불현듯 인생이 쓸쓸해져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