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강원도 여행 마지막 행선지로 꼽았다가 시간이 꼬여서 생략했던 곳. 칠곡 가실성당.  아침부터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좀 늦었더니 도착해서 보니 주차장에 차가 한가득이다. 미사 시간에 겹쳤나보다. 그런데 세상 황량한 동네에 뭐 이런 성당이 있다고? 찾아 들어오는 길이 하도 허전해서 진심 또 길 잘 못 들었나 하고 의심했었다..

당황스러웠던 가실 성당 입구 찾기. 시가지는 커녕 맨 농장에 물류 창고에 오가는 차도 거의 없어서 길을 잘못든 줄 알았다.
길에는 인적도 없고 도로 주변도 정돈되지 않아서 어수선했음

아무튼 미사 시간에 얼쩡거리기는 좀 눈치 보이니까 낙동강 자전거길을 먼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는 걸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선물같았던 낙동강 풍경. 그리고 잘 만들어진 자전거 길. 입구 찾느라 한 이삼십분 쯤 헛걸음. 가실 성당에서 강변도로로 나와서 하류쪽으로 한 오십미터? 그 쯤에서 바로 합류할 수 있었는데 생각 없이 네비를 켰더니 상류쪽으로 한 시간을 가라네. 강이 뻔히 보이는데 자전거 길로 들어 갈 수가 없다니. 어떻게 다시 되돌아서 찾긴 했는데 이럴 때는 길 안내도 없고 참 난감하다. 

무슨 접안시설 같은데 뭔지 잘 모름. 아무튼 낙동강.

바로 그 앞의 쉼터에서 물 마시고 쉬었음.

반환점 칠곡 보. 말 많고 탈 많던 4대강 사업의 결과물. 그래서 괜히 한 번 흘겨보았는데 정작 현지 사람들은 공원 조성해 놓고 잘 즐기고 있는 듯 보여서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꽤 넓은 잔디 공원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애기들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바글바글.... 왕복 삼십여km를 아침 점심을 거른채로 달렸더니 체력도 좀 딸리고 라인을 타는 것도 서툴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렇겠지 뭐. 낙동강 자전거 길에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없지도 않았다. 드문드문 이런 저런 라이더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음. 전기 자전거로 유유자적 음악 들으면서 즐기던 사나이, 아저씨, 좀 시끄럽긴 했어요^^. 멋진 패션으로 혼자 스프린트하던 긴머리 아가씨. 헬멧이 불편한지 가다 서다 고쳐 쓰던 아주머니, 거의 선수급으로 스퍼트 하던 로드 사이클 친구들,  그래블 바이크에 커다란 가방을 양쪽으로 달고 종주 중인 듯 보이던 외국인 커플, 심지어 블레이드를 타고 나온 젊은 친구도 있었다. 미니 벨로 비슷한 자전거로 유쾌하게 안뇽하쎄요 인사하던 외국인 친구들도 있었고. 모쪼록 자전거는 자기 페이스대로 신나게. 도로에서건 산에서건 오버페이스만 안하면 돼.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찾아 온 가실성당. 주차장의 차들이 거의 빠지고 없는 걸 보니 나이스 타이밍!

한 눈에 보아도 세월이 느껴진다. 어쩌면 세월을 버거워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음.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소박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뒤편의 소소한 부속 건물들

이게 기도실이라고? 벌칙인가? ... @..@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오! 손으로 꼼꼼하게 몇 번 덧칠한 듯한 회색 페인트의 소박한 본당 정문. 손잡이도 반들반들 옛날 동글이 황동 손잡이다. 열쇠구멍도 있었음! 성당 정문마다 걸려있던 밧줄은 종을 칠 때 쓰는 줄이겠지?

미사가 끝나고 불도 꺼져서 차분히 가라앉은 참 좋았던 본당. 기도 하는 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지만 너무 좋았던 탓에 빈 손으로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기도 중에 부시럭부시럭 죄송했습니다.  

그 와중에 노골적으로 기독교스러웠던 스테인드 글라스. 오래 된 성당에 좀 생뚱맞을 정도로 쨍한 색이었다.

안 가 본 곳은 없나? 곁눈질로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웅성웅성 인산인해.... 

텅 비었던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네 대. 천주교 성지라더니 순례자들인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빠져나왔다. 하마터면 인파에 휩쓸려다닐 뻔. 조용하고 평화로운 가실 성당을 혼자 돌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왜관 읍내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서 신호 걸린 김에 원경 하나.

옛 성당이란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꽤 기품있는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사방의 문들이 다 잠겨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었음. 낡은 문에 손잡이만 새것. 혹시나 빈 틈이 있나 기웃거려봐도 여기저기 출입문마다 그렇던데 아마도 출입을 못하게 잠궈놓기 위해 새로 설치한 듯. 내부 색유리 예쁘다고 자랑도 했드만 좀 열어놓지.... 

오래 묵은 건물들. 예쁘다.

새 건물. 말 그대로 수도원같아. 후드를 뒤집어 쓰고 헐렁하게 발목까지 내리닫이 검은 사제복을 입은 냉정한 얼굴의 과묵한 수도사같은 건물.

어느 친구가 여기서 소울 스테이를 했었노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1박 3식에 8만원, 미사 참석은 자율. 그냥 편안하게 머물다가 홀가분하게 떠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괜찮아보이기는 한데 위치가 워낙에 시내 안쪽이라 좀 번잡한 느낌.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모르지. 어느 날에 갑자기 필이 온다면야...  밥도 맛있다는데!

나오는 길에 도리사를 다시 들렀다 갈까 갈등하다가 수도원 뜰에 나란히 앉아있던 분들의 권유로 들렀던 구상 문학관. 전부터 그다지 호감이 가지는 않는 시인이어서 조금 주저했었는데 오늘 역시도 그러했다. 문학관의 벽면과 배너로 전시 해 놓았다는 건 나름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굳이 이 시인의 눈을 빌려서 세상을 보고싶은 생각이 없다. 그럴싸한 어휘들을 모아 나열해놓은 문학 동호회의 아마추어 습작들과 뭐가 다른지를 모르겠다. 뭐, 순전히 내 마음이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르시다면 당신이 옳다.   

5월 3일 예정되어있던 진주행. 때마침 전 날의 스케줄도 비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박2일이 됐다. 진주 가는 길이면 삼천포도 가야지. 어떤 유튜버가 삼천포를 소개해놨는데 아주 멋지더라니까. 내가 알던 예전의 삼천포가 아니야. 기왕에 떠나는 김에 해인사도 끼워넣었다. 진주 가는 길목에 있으니 마침 잘됐지.  코로나 전에 혼자서 다녀 왔긴 한데 남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한 번 더 가보기로. 

한적한 해인사 주차장. 이른 아침이라 차가 거의 없어서 무턱대고 맨 위 주차장까지 냅다 올라갔다가 어리둥절 다시 내려왔다. 공간 기억력은 꽤 좋은 편이라 한 번 가 본 곳은 잘 안잊어먹는데 뭔가 낯설다... 뭐지??

일주문까지 걸어 올라가다 처음 만난 선재카페. 이른 아침이라 문은 닫혔더라. 절에서 선재를 또 보네. 월정사 선재길. 해인사 선재카페. 처마가 나즈막하니 편안하다. 나중에 내려 오는 길에 막 오픈 준비를 하던 선한 얼굴의 여인네가 앉았다 가시라고 권하던데 갈길이 멀고 시간은 한정인 탓에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주문을 막아놨다. 행사 관계라니 아마 초파일 때문에 그런 듯. 가는 절 마다 알록달록 난리법석인 초파일. 얼른 지나갔으면...

그래서 옆 사진.

장경판전 오르는 계단. 나 여기 안 와본 것 같다. 이런 저런 법당이며 불상들 이런 곳들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긴가민가 그럴 수 있다해도 이런 곳은 기억 못할리가 없잖아. 그러면 그 때는 밥만 먹고 갔던 건가. 분명히 해인사 상가에서 스님 나물 비빔밥인지 산채비빔밥인지를 먹었던 기억은 분명한데. 대체 뭐지? 이 먼길을 와서 절집은 들어오지도 않고 밥만 먹고 내뺐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미스테리를 만났다. 

장경판전. 나는 처음 온 것이 분명하다. 

장경판전 뒤쪽의 법보전. 천장에 가득 매달린 이름들. 기독교 헌금 봉투에 이름 쓰는 것과 같은 것인가. 전능하신 여호와나 자비로우신 석가세존이나 여기나 저기나 어느 동네 사는 아무개라고 이름을 써 붙여놓지 않으면 누군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대비로전은 부처님이 둘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 들여다봤다가 처음보는 쌍둥이 부처님이 신기해서.

종무소로 쓰이던 사운당. 현판 첫 글자를 읽지 못해서 밖에 계시던 분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대체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눈치길래  나 참, 그래서 안에 계시던 분에게 물어봤더니 합장으로 인사 주신 다음 사운당이라 알려주시더라. 그래서 저 사字가 무슨 사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 분도 모른다고. 가만 보니 四 인가 싶기도 한데. 더 이상 물어 볼 사람이 없었음. 다들 몹시 바쁘더라니까.

---검색의 생활화  /사운당(四雲堂)/신심 깊은 불자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뜻이라는데? 해인사 사운당이라고 찾아보니 금방 나오는데? 넉四자가 맞긴 했네. 근데 왜...

일주문 맞은 편에 있던 카페 수다라. 카페 이름은 수다라인데 밖으로 들리는 음악은 페르귄트 조곡 아침(morning mood)이다. 묘하게 안어울리나 싶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절 앞에 카페라고 찬불가만 들을 수는 없잖아? 마침 화창한 아침이기도 했고. 수제 대추차가 아주 일품이라는데 혼자서 뭔.... 게다가 소생은 아직 식전이옵니다.

내용은 멧돼지인데 그림은 집돼지라 좀 웃겼다. 아무튼 와본 것도 아니고 안와본 것도 아닌 아리송한 해인사는 여기까지.  송광사, 통도사 해서 한국 삼대 사찰이라던데 느낌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더라. 그래도 팔만대장경을 본 것으로 충분했음.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 와 본 거 맞아. 이게 무슨 일이야.

삼천포 각산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 고심 끝에 선택한 휴양림 길. 그런데 휴양림 이름이 참. 그냥 산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예쁜 이름을 하나 고안하든지. 홍보를 노린 이름 같긴 한데 잘 안어울린다. 파는 상품이 '자연'휴양림인데 그 상호가 '케이블카'라면 좀 너무하잖아. 거기다가 나는 케이블카가 싫거든. ㅜㅜ

이름은 그랬어도 의외로 꽤 울창한 숲. 측백나무라던데 덩치도 제법 있고 키도 커서 숲 사이로 걷기 좋았다.

그렇지만 각산 전망대는 이리로 오르지 마시오.  다른 길이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좀 무서워도 케이블 카를 타고 가야 함.         ㅜ.ㅜ 한 시간 가까이 땀을 한 바가지 쏟음.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동해와는 많이 다른 남해. 저기 지명이 남해이기도 함.

바다와 섬과 죽방렴. 

삼천포대교. 그 옆에 메주덩어리같이 달려있는 것이 바다케이블카.

그래도 올라 와보길 잘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걸어서 오든 굴러서 오든 여긴 와봐야 한다. 남해 창선과 이어진 삼천포대교도 멋지고 섬과 섬 사이에 놓인 죽방렴들도. 죽방렴은 가까이 봐도 좋은데 이렇게 보니 더 예쁘다. 아무튼 여기는 추천.

거북선마을 쪽에서 본 서포로 가는 사천대교. 삼천포대교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만만찮다. 뻥 뚫려서 눈이 아주 시원하다. 갯벌을 못봐서 좀 섭섭했지만 괜찮아. 갯벌은 다음 기회에. 어차피 마을 안쪽에서는 무슨 경로잔치인지 뽕작이 낭자해서 들어 가 볼 엄두도 안났다. 무수히 오가면서도 멀찌기 지나치기만 하던 처음 와본 사천만. 기억에는 그냥 진삼 국도 지나치다 빛내림이 자주 보이던 동네. 좋네. 진작에 와 볼 걸.

꽤 오래 전에 진주 삼천포 국도를 지나다가 찍었던 사천만의 빛내림. 여기서 빛 내림을 자주 본 듯. 몇 번은 더 본 것 같은 기억이다.

사천만 대포항 근처. 내가 좋아하는 전봇대 풍경. ^^ 나는 하늘에 걸린 전봇대가 너무 좋아. 하늘이 예쁘면 더 좋아.

전봇대는 여기까지. 이 시간 이후로 서둘러 건너갔던 비토섬은 실패.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전혀 달라서 마음이 식어버렸음. 핫플레이스라고들 하길래 궁금했었는데 나와는 맞지 않은 듯. 나즈막한 구릉같은 섬을 기대했는데 맨 산길이드만. 두어군데 기웃거리다가 그냥 차를 돌려 나와버렸다. 듣기로는 일몰이 일품이라던데 글쎄. 물이 빠지고 갯벌이 열리면 좀 다를려나.. 어찌됐든 오늘은 틀렸다.

실안 해변에서 가까이 본 죽방렴. 좀 이른 시간이지만 낙조는 이걸로 끝. 바람도 차고 배도 고프고.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던 길. 목요일 오후 7, 8시쯤 된 시간인데... 인구도 줄고 행정구역도 달라지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알던 삼천포가 아니었다. 낮과 밤이 너무 많이 달라져버린 삼천포. 어둡고 조용하기만해서 적적하고 서글펐음. 그래도 식당은 꽤 분주했고 밥은 맛있게 먹었음.     

둘째 날. 아침 나절 자전거로 삼천포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닌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노출 걱정을 해야 하는지. 조리개 우선으로 놓아야 할 걸 밤에 쓰느라 시간 노출로 해논 걸 깜빡하고 그대로 찍어서 색이 다 날아갔다. 머릿속이 아주 삭아가는 것 같아서 참... 다 날아 간 노출을 커브를 틀어서 억지로 붙잡아 만든 사진들. 그래도 뭐 어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됐지.

삼천포항 방파제에서. 새벽 일을 끝내고 귀항하는 부부인듯.  보기 좋았다. 보기는 좋았는데 어딘지 좀 지친 모습이라.. 

늑도.  . 삼천포대교는 멋진 다리지만 직접 달리는 것 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멋지더라. 삼천포대교 중간에 교각처럼 놓여있는 섬. 

이건 대교 위로 굳이 걸어 올라가서 얻은 그림. 대교 위에서는 모자 조심. 바람에 두어번 날아갔음. 

진주로 돌아오기 전 바다 풍경이 멋지다는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는 괜찮았다. 하지만,  때때로 창에 갇힌 액자 풍경이 더 아름다운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번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도 없다. 지나치는 길에 잠시 쉬어 간다면 모를까 좋은 전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실내로 찾아 들어 가는 것은 나는 좀 아니라고...  그래도 커피는 맛있어서 쪽쪽 소리가 날 때까지 다 먹었어요. 친절한 알바생.

사천 성당. 

외관은 담백했고 예배실은 소박하다. 간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더라. 근처로 지나간다면 들러 볼만한 듯.  한옥 성당이라고 그러길래 어떤가 궁금했었는데 

이런 건물이었다.

지금도 현역으로 잘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천장에 달린 꽃 등이며 접이식 의자며 집기들이 좀... 짙은 갈색의 마루바닥에 좌식으로 보존된 묵직한 옛 건물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웠다. 뭐, 쓰는 사람 마음이지 어쩌겠냐고.

그리고 무사히 일 잘 보고 돌아왔지. 짧은 일정에 즉흥적으로 끼워넣은 좋은 여행이었다. 끝.

여섯시 반쯤 출발했다. 날씨가 걱정이다. 비 온다던데.

영주 봉화 분기점에서 빠져 태백으로 접어들 생각이었는데 정신머리는 엇다가 내다 버렸는지, 거기다가 네비는 또 왜... 돌아와서 복기해보니 아마도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야 할 걸 중부내륙으로 곧장 가버린 모양이다. 뜬금없이 동상주에서 내려 서라더니 예천 근방에서 국도며 지방도에 정체불명의 시골길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뺑뺑이를 돌았다. 안그래도 출발이 늦어서 마음이 바쁘구만 첫날부터 이게 무슨 헛발질. 혼자 툭탁거리며 겨우 태백쪽으로 길을 잡아 넛재 터널 근처를 지날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정암사. 만항재로 바로 올라가서 이 쪽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어평재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네비와 씨름을 하면서 두 번을 돌고 돈 끝에 결국 이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꼭 한 박자씩 늦는 네비. 아, 스트레스. 폰 바꿔야하는데. 태백 들머리의 주유소 아주머니 덕에 그래도 덜 헤맸음. 감사합니다.

정암사는 편안하거나 넉넉하지는 않았다. 엎친데 덮쳐서 비도 오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참이라 차분하게 둘러보지를 못하고 눈으로만 얼추 훑고 말았다. 시간은 아직 오전인데 내내 해질 무렵 같았다. 초반에 가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다닌 시간이 하루 종일 빚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산 중턱에 있다는 수마노탑은 가 볼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애기들도 우산 쓰고 엄마 손 잡고 씩씩하게 올라가드만. 마음이 옹색하니 시간도 옹색해진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다음에 다시 보자.

만항재다. 정암사를 서둘러 지나친 것도 혹시라도 비와 운무에 젖은 멋진 만항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이었는데 이게 다다. 이 사진 한 장. 그리고는 내리 안개길이다.  

건의령 길. 건의령 터널을 빠져나오자 글자 그대로 오리무중. 아무것도 안보였다. 앞 선 버스의 미등을 보고 겨우겨우 따라 내려오다 어떻게 잠깐 안개가 열리는 걸 보고 얼결에 차를 세운 뒤 하나 건진 사진. 가장 멋진 그림을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연히 만났던 어떤 여행자는 그래도 자기는 만족한다던데 아마도 생불이신듯. ㅡ.ㅡ 

아이고 아쉽다고 멱살잡고 우두커니 기다리면 안개가 비켜 준다니? 갈 길이 멀다. 안개는 볼 만큼 봤으니 갈길 가자.

대차게 비를 두들겨 맞으면서 속초에 도착. 허둥지둥 숙소에 짐을 옮겨놓고보니 막막하다. 자전거로 아야진까지 올랐다가 대포항까지 내려 온 다음 속초 시내를 여유있게 돌아 볼 생각이었지만 비 때문에 기동력이 무력해졌으니 뭐 어쩔 수 없지.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바닷가 근처라도 나가보기로. 갯배도 타 보고 예정에 없던 아바이 마을도 주섬주섬...

갯배에서 본 설악대교... 아니, 혹시 시드니니?  ...  ㅎ

설악대교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아바이 마을. 어떻게든 멀리까지 걸어 보려했지만 그게, 도보로는 뻔하지. 다리도 아프고 신발도 축축하고 억지로 다니자니 별로 재미도 없고.. 세상에, 시간 아깝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니.  청초호를 따라 조금 더 걷다가 그냥 돌아서버렸다. 준비했던 계획이 틀어지고 그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으니 플랜B를 생각해놓지 않았던 나한테 짜증이다. 뭐, 첫날부터 날씨가 배신을 할 줄 낸들 알았나. 거기다가 근처에서 먹었던 저녁밥은 딴에는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물탄 사골국.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돈은 더 받아도 좋으니 제발 밥에는 장난치지 말자... 다시는 안가야지. 투덜투덜 숙소로 돌아왔다. 되는 일이 없구나.

숙소는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숙소에 갇혔다. 더 이상 나가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철벅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신발도 젖고 양말까지 젖었다. ㅜㅜ

숙소 휴게실에 앉았더니 이제는 아예 장대비가 지붕을 때린다. 여행객들도 없는 썰렁한 휴게실에 혼자 앉아서 커피 한 잔.

그래, 뭐, 이건 운치가 없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어. 여행이 주는 이런 어정쩡한 낯 선 느낌은 좋아. 나름 애써 공간을 꾸며 놓은 호스텔 쥔장에게 감사. 힘들었던 오늘 하루 중 작은 위안이 되었어요.

둘째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장사항...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낯 선 동네의 비바람 부는 새벽 바닷가라니. 포항에도 이런 해변은 쌔고 쌨어!! 써 먹지도 못할 자전거는 대체 왜 달고 나온거야. 

그냥 이 참에 속초 일정은 다 놔버리고 다음 경로로 건너 뛸까 하고 차를 돌려 나가는데 마침 빗방울이 가늘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던 영랑호. 한 참 위축돼있던 참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호수 옆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내려서 안장을 닦았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 본다. 에잇, 또 비 쏟아지면 되돌아 오면 되지, 자포자기로 소심하게 페달을 밟는데, 손이 시리고 안개비에 옷이 좀 젖긴 했지만 꿀꿀하던 가슴 아래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렇지! 이거야! 이런 거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영랑호는 자전거로 달리기에 딱 맞춤이었고 호수는 그보다 더 좋았고 중간에 걸쳐진 꿀렁다리(꿀렁이 맞아. 출렁하고는 좀 달랐어)도 센스 만점. 흐린 하늘과 흐린 호수 사이를 예리하게 잘라 낸 공제선은 아주 멋진 시각의 쾌감. 마침 날씨 덕분인지 이른 시간 덕분인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더욱 좋았어. 좋아! 이런 거였어! 쓸모없는 자전거는 왜 달고 왔냐던 건 누구였지? 

꿀렁다리(진짜 출렁은 아님) 지금 생각하니 이것도 무슨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눈과 귀가 어느한 쪽으로 쏠려버리면 디테일은 다 놓치는 것이 내 병통인 것. 정신이 한 곳에 팔리면 텍스트는 보는둥 마는둥, 매뉴얼은 쌈싸먹고. 한 참 헛발질 한 다음에야 내가 이걸 왜 못봤지.. 맨날 이런 패턴. -- 찾아보니 영랑호수윗길 이었다. 예쁜 이름이었네. 늦게라도 모르면 물어보자. 검색의 생활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훨훨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자전거를 업고 출발 할 채비를 끝낸 까칠한 빨갱이.

괜히 뭔가 분주하고 비장해진 조수석. ㅋ

속초와 멋진 첫 인사를 나누게 해준 영랑호는 이제 안녕. 내친김에 대포항으로.

관광지도에도 떡하니 대포항전망대라고 해놨더니 어디 찾기도 힘든 구석탱이 골목길에 허접하고 꼬질꼬질한 계단.......이드만 아이고 몰라뵈었습니다. 눈맛은 제대로였네. 가까이 보는 것 보다 내려다보는 것이 백배는 더 멋진 대포항. 혹시나 하더라도 꼭 올라들 가보시기를. 이래서 풍경은 드론 샷을 못이기는 거지. 땅에 붙어서는 제아무리 앵글을 돌려봤자 항공샷을 이길 수가 없어.  

덕분에 눈이 시원해졌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대포항 전경.....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지만 그래도 전망대는 좀 정비해 두자. 속초시장님.

취미의 영역이야 문외한들이 입을 댈 일은 아니지만 비바람에 파도가 제법이라 배가 아주 곤두박질을 치드만 어디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방파제 근처에서 배회하던 낚시배 두 척. 비도 뿌리고 울렁울렁 저래서야 낚시가 되겠나 싶은데도 기를 쓰고 낚싯대 붙들고 시끌벅적.... ㅋㅋ 낚시꾼들도 참 못말리는 꾼들이야.... 

보는 순간 흠칫했던 어느 호텔 입구의 인면상. 길에다가 왜 저런 무서운 걸... ㅡ.ㅡ;

또 다른 호텔의 조형물.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래 뭐, 호텔 앞의 조형물이 심오할 필요는 없으니까...

진부령 식당. 나중에 보니 월계관까지 쓴 원조집이네. 속초를 떠나 고성으로 가는 길에 아점 먹는 중. 이 때까지 여전히 비 옴. 미시령 옛길은 아예 폐쇄 중이었고 울산 바위 역시 코끄트머리도 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내가 끓인 황태국과 맛이 똑 같아서 매우 신기했음. 뭐, 맛있었다는 이야기... @.@

 

얻어 걸린 건봉사. 화진포로 향하던 길에 휙 지나치다 '건봉사'라는 절 이름에 꽂혀서 굳이 찾아 들어간 절. 와보길 잘했어. 이건 괜찮은 촉이었어. 

특이하게 기둥이 네개인 불이문. 무슨 이름 붙은 문화재라던데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아. 내가 말을 걸고싶거나 나한테 말을 걸어오거나 한다면 나는 좋아. 그게  사람이건 귀신이건 뭣이건.

절집 구경을 다니다보면 더러 보이는 간절함들. 간절함과 욕망은 얼마만큼 다른 것일까. 큰 놈 첫 수능날 봉정사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하지만 봉정사 부처님 앞에서 비나이다 우리 새끼 만점 받게 해주십사 기도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될 일이었으면 백번 천번이라도 했겠지.

보았던 중에 가장 우아했던 진신사리탑. 부처님은 출타중인 적멸보궁.

절 입구의 멋진 소나무. 어디 세한도 속에 서 있다가 나온 듯 고졸한 느낌. 예상치 못했던  신 스틸러. 

범종각. 이 사진은 뒷산의 안개가 일 다했다.

이런 예의바른 거만한 느낌도 좋아. 오만하거나 교만하지는 않은 고집불통의 거만함. 

왜 금강산 건봉사인지는 모르겠어. 대개 그 절이 앉은 자락의 산 이름을 붙이던데 이 절이 앉은 산이름이 또 다른 금강산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그 금강산인지. 이 금강산이 그 금강산인가? 아니면 이 금강산은 그 금강산이 아닌 건지? 어쨌든 금강산이 궁금함.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 안그래도 고단한 이 나라를 아주 밑바닥까지 작살 낸 흉물들의 그렇고 그런 사적지들. 화진포호를 자전거로 라이딩하려던 생각은 접기로. 건봉사에서 시간을 뺏기기도 했고, 생각보다 워낙에 넓었고, 찻길을 따라 달려야하는 것도 부담이고, 그래서.

민통선 출입 허가증.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 검은 띠를 덕지덕지 붙였더니 흡사 무슨 대외비문서.

쩌어기 안개 속이 북한이라오........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는 남한이라오........... 그렇겠지.. 저어기 내 차도 보이네. 

이름이 예쁜 명파해변. 우리나라 최북단.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던 명파해변.

박수근 미술관. 전시장이 무려 여섯개라는 말에 섣불리 가슴이 벅차서 좋아했더니 정작 박수근은 박수근 기념관 하나밖에 없더라. 뭔 알 수 없는 현대미술 몇 점에 어린이 체험 미술관에 맨 눈만 어지러운 영상관, 이런 저런 우수마발. 

그래도 이런 박수근의 스케치도 보고 그 아련한 느낌도 보고 느꼈으니 괜찮아. 두시간을 돌아돌아 허위허위 달려왔었어도 괜찮아. 하지만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

정작 박수근은 얼마 없었던 박수근 미술관. 그래 괜찮아. 안왔더라면 언제까지고 궁금해하며 오고싶어했겠지. 그런데 김환기의 작품 하나도 걸려있지 않던 김환기의 안좌도 고택에 갔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

제목 없음(1).mp4
9.23MB

 

한계령. 혹시나 하고 서둘러 달려 올라갔지만 시계 제로/ 가시거리 5m이하/ 일몰.  ---  아무리 여행이 변수의 연속이라지만 이건 참 너무하다. 결국 이후의 스케줄은 다 꼬여버리고 저녁도 제대로 못먹은 채로 예상시간보다 한 참 늦어버렸다. 고산지대 드라이브는 이것으로 모두 실패했다. 만항재/ 건의령/ 미시령옛길/ 진부령/ 한계령. 하나도 남김 없이. ㅜㅜ.

셋째날. 월정사. 이른 아침의 고즈넉한 산사를 기대하고 왔으나 웬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즐비한 건설의 현장... 

팔각구층석탑도 알록달록 울긋불긋 초파일 채비 하는듯. ㅡㅡ

절 구경은 접자. 어차피 오늘의 일정은 트레킹이니까. 별 미련 없이 절마당을 가로질러 선재길 입구에 섰다. 나름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아 두었던 선재길이다. 월정사 상원사 사이의 편도 9km 트레킹.

4월 하순 치고는 꽤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선재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이 걸어 본 누군가가 자기가 다녀본 트레킹 중 으뜸이라더라던데
과연 그러..한가?
뭐 나쁘지는않지만 기대가 너무 컸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싱겁다. 여행은 늘 예상 경로를 벗어나기 마련이지만 나름 운치있고 난이도가 높지않아서 접근은 쉽겠긴한데 산행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에겐 의외로 맛이  덜할듯.

결정적인 것이 트레킹코스와 나란히 달리는 버스길. 트레킹을 잠시 멈추고 찍은 섶다리 사진.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버스 정류장 .. 
덕분에 초보자들의 안전이 담보된다지만 호젓한 고립감을 기대하던 내게는 예상치 못한 구멍이었음. 마치 집을 탈출해서 드디어 독립을 했는데 옆집에 엄마아빠가 이사온 느낌. ㅋ
그친구 진짜 트레킹 전문가 맞냐고..

뭐 그래도 길은 꽤 예쁘고 길이도 적당해서 아쉬움을 다독이면서 쉬엄 쉬엄 완주는했는데 왕복 18km를 걸으려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편도로 만족하기로. 그만큼 쏟아낼만큼의 가치는 아니기도했지만 이게… 하루에30km씩 산길 날아다니던 산싸나희 어데 갔노 무릎도 시큰거리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는 결리고 종아리에 통증이.. 그러게 연식이 좀 되긴 했지 머. ㅡ.ㅡ

KakaoTalk_20240424_070114295.mp4
17.96MB

발을 질질 끌다시피 상원사에 드디어 도착했더니
이런 젠장 상원사는 계단지옥이네. 사람살려.

상원사의 상원사 동종. 진품은 유리 상자를 만들어 씌워놓고 복제품을 걸어 놨더라. 내 눈으로는 똑같이 보였으니 이거나 저거나 뭐. 그럼 나중에 누가 나한테 멋진 선물을 하더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못해서 어리둥절 하는 건 아닐까. .. 그러게 ......... 줄 사람도 없는데 걱정부터 하냐고. ㅎㅎ 

계단 지옥 맞아. 여긴 그냥 포기하고 안올라갔지. 다리가 너무 아파. ㅜㅜ

그리고 이십분을 기다려서 냉큼 버스 탑승. 참 오랜만에 버스로 달려보는 비포장도로. 그 때 그 시절에  지리산 아래 큰집 갈 때 우당탕탕 그 멀미 가득하던 촌 버스. 뜻 밖의 시간에 뜻 밖의 장소에서 뜻 밖의 기억 소환. 요즘 버스 답지 않게 스멀거리던 기름 냄새도 한 손 거들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 서울의 광릉이랑 내소사 길하고 해서 우리나라 삼대 전나무 숲길이라는데 뭐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는 않음. 나는 오히려 계곡 건너편의 산책길이 더 좋았다. 뭐, 사람 나름이니까.

그리고 정동진. 한국 사람이면 아무나 다 간다는 정동진. 인자는 나도 가 봤다.  기차 지나가는 거 한 번 보고 자전거로 부채길까지 갔었는데 바다 부채길은 자전거 입장이 안된단다. 좀 궁시렁거리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걸어서는 답이 안나오는 시간이라. 삼박사일의 일정 중에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봤다. 복도 많지.

별 것도 없드만. 그 놈의 모래시계는 언제적 모래시계가 아직도... 나도 참 재미있게 보긴 했었는데. 한적한 바닷가 동네가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오래동안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대단한 드라마이긴 했나봐. 예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여기저기 소소하게 관광객들이 쏘다니고 차들도 번잡하니까. 심지어 나도 왔잖아? .......친구야.. 나도 떨고 있니? ..... ^^

바다 부채길을 못가라 하길래 괜히 부어서 투덜거리다가 전망대에서 찍어본 유람선의 이륙. 저거 뜯어다가 바다에 놓으면 뜰라나 말라나.

시장에서 만두 하나 사 들고 어제 보다는 조금 이르게 숙소로 돌아 옴. wpr 로비에 있던 수호랑과 그.. 이름이 뭐더라... 그 뭐시기 곰돌이. 

근처 여기저기 보이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흔적. 좀 지쳤는지 시간도 늦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관리가 안돼서 여기 저기 쇠락해져가는 느낌 과 다시 바람불고 비 뿌리던 저녁나절의 스산함 때문이었는지 이것 저것 모두 다여서인지 어쩐지 더 다니고싶은 생각이 안들어서 그냥 숙소 주변에서 카메라만 뺑뺑 돌리면서 몇 컷. TV로 올림픽 경기들을 챙겨보면서  참 기껍고 좋았는데. 귀엽고 재미있던 수호랑 탈바가지 자원봉사자들이며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너나 할 것 없이 살짝 들떴던 분위기 하며.. 그 때만해도 잘 될줄 알았지. 자동차로 압록강을 건너 볼 수도 있겠다고 막 영어공부를 해야 하나.. 그랬었는데. 내 생전에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을 듯 해서 좀 쓸쓸해졌다. 그리고  오전에 걸었던 트레킹이 좀 버거웠는지 맥주 한 잔에 바로 녹아웃. 기절 해 버렸다. 산 너머로 보이던 저 구조물이 올림픽 성화대였나 어느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스키 점프대일거란다. 그 친구들은 스키 타고 막 날아다니던 친구들이라 아마도 맞을 걸. 

[2018 평창올림픽] 수호랑 - 복사본.avi
19.14MB

생각이 나서 찾아 본 수호랑 동영상 하나. 

네째날.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되짚어 올라갔던 풍수원 성당.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그랬는지 비 온 뒤의 화창한 하늘이라 그랬는지 소소한 바람결에 뻣뻣하게 굳은 껍데기가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 언뜻 모르고 지나치면 모를 수도 있는 외진 산기슭 마을 한 켠에 이런 근사한 건축물이 있다니!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라도 와보길 잘했다.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지켜 보던 세월이 하루 하루 쌓아 올렸겠지. 

사진은 놓쳤지만 성경책을 품에 안은채로 혼자 천천히 이 계단을 오르던 수녀님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내부의 사진촬영을 제한합니다/

촬영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출입조차도 할 수 없었던 성당 내부. 나그네에게 잠깐의 평온 한 조각 쯤은 내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굳이 한 시간 넘는 길을 돌아 서둘러 왔는데. 조금 섭섭.

여기는 풍수원에서 많이 멀지 않았던 용소막 성당.

올라 가 볼 수 없었던 곳. 수도원 같은 곳인가?

조금 엉성해 보이던 종탑

엄격한 수도사 같던 풍수원과는 좀 다르게 성당 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의외로 담백한 모습이 사람 좋은 수사 할아버지 같던 용소막 성당.  와보길 잘했어. 두 성당 모두 와보길 잘했어.
청량한 아침과 그때의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멋진 건축물. 나의 선택은 좋았고 행복했음. 잘했어!

 

마지막 행선지 구미 도리사. 야트막한 산 자락인 듯 보여서 그런가 했더니 막판에 갑자기 가파른 산길에 당황.  급한 커브길에서 뒷바퀴가 헛도는 바람에 식겁했음. 결국 겁 먹고 끝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그럼, 절구경은 천천히 걸어서 해야 제 맛인거야. 흠. .. 4륜구동 갖고싶다..@..@

느낌은 오히려 건봉사보다 좋아
거기다가 멀리 낙동강 굽이가 내려다보이는 눈맛은 부석사의 그것에 못지않음
이번 여행가방에 챙겨넣었던 정암사 월정사 상원사들은 좀 많이 실망이었는데 그게,
나는 내가 없었던 오래전의 시간과 사람과 공간들이 긴 시간 가라앉은 어떤 눅눅함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것이지 어마어마한 규모나 대단한 자랑거리를 뽐내는 보물단지라든지, 알록달록 값싸보이는 채색 단청과 이런 저런 번쩍거리는 도금쪼가리들로 잔뜩 자랑질 해 놓은 절집을 보고싶지는 않다는 말이지. 거기다가 초파일이라고 산문 입구에서부터 산속 가득히 달아매 논 그놈의 오색 연등은 참 질색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색감이 이렇게나 싸보였었냐고 ㅜㅜ  초파일이라고 부처님이 나들이 왔다가 좀 뜨아하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은 크리스마스가되면 그나마 조금은 더 예뻐지는데 절집은 아닌거 같아.
스님들, 그놈의 오색 연등 좀 어떻게 안될까 내가 다 안타깝이.
사진 찍을 때도 어떻게든 연등 피해서 찍느라 용 을 썼던거는 공공연한 비밀임.

아도화상이었나? 뭐, 훌륭한 분이었겠지만 첫 인상이 나랑 잘 맞을 것 같지는 않아. 같이 술 한 잔 하다보면 나만 기 빨릴 것 같은 느낌.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걸로. ㅋ --  아니다. 포대화상이었다. 자선을 위한 물건이 가득 든 포대를 들고 다녔다고 포대화상이라는데. 아니, 선물 보따리라면 그럼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었나... ㅡ.ㅡ

콩고물 시루떡 같던 화엄석탑. 탈속한 고승같이 번잡하지 않은 걸작이었다. 멋진 시루떡.

연등에 가려져서 담장 어딘가를 딛고 올라서서야 겨우 찍은 사진이다. 연등들만 아니었다면  저 날렵한 팔작지붕이 날아 오를 듯 멋지게 펼쳐졌을 텐데. 연등이 걸리적거려서 많이 아쉬웠던 도리사 극락전.

소박하지만 초라하지도 않던 태조선원. 템플 스테이 숙소로 쓰는 듯. 이런 정갈하고 정연한 느낌 참 좋지 않아?  나도 방 하나 주지. ㅎㅎ.

태조선원 기둥에 저그들끼리 옹기종기 목탁. 나보고 웃는 거냐?

적멸보궁. 부처님은 치아사리만 남겨놓고 출타중.

진신사리탑. 건봉사의 수려한 사리탑에 비해서는 다소 과장된 느낌.  

돌아 본 순간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적멸보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버려서 폰 카메라로 찍을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화질이 좋지않아 많이 아쉬웠음.

언젠가 배터리 완충으로 다시 한 번....

내 여행의 마지막을 기껍게 채워준 도리사에 감사를.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올 듯.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많이 행복했다.

......... 하지만 클리어가 안됐지? 그럼 뭐 다시 가야지. ㅡ..ㅡ 

 

2000년 초 1월쯤이었던가 외할아버지의 장례로 벽제 화장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장례식이라봐야 외할아버지는 내 장성하고서는 거의 왕래도 없었던데다가 101세로 한 세기를 살고 마감하셨으니 슬프고 섭섭하고 할 일도 없었고

그냥 좀 무료하고 지겨운 장례절차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화장장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준비된 슬픔도 없고 동기도 없는 내가 그 외마디 울음소리에 불시에 억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까닭없는 울음이 터질 듯해서 황급히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장례실의 젊은 엄마였고 영정은 네 다섯살 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였다.

아마도 예식을 끝내고 시신을 화구 쪽으로 밀고가려던 참이었던 모양인데 그 엄마는 거의 실신지경으로 관이 놓인 수레에 매달려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마디 울음소리를 질러내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생각만으로 눈물이 도는 몇 안되는 처참한 광경이었고 그 때를 기억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역시 눈물이 난다.
세상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그 사무치는 울음소리를 덮을 수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의 범위에 있는 한.
남의 장례식에 따라붙을 일도 아니었고 혹 그럴 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울음소리의 충격으로 그만 얼이 빠져버렸었으니 그냥 멍하니 그 가족의 행렬를 잠시 지켜보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었지만 너무 강렬했던 기억이라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그 장면이 각인이 되어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섣불리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출처: https://shaeong.tistory.com/339#rp [시대착오자의 古物箱子]

살고 있는 집 도색작업중. 나같으면 죽었다 깨도 못할 작업위치. ㄷㄷㄷ


더 무서운 사진. $#^@%&..............


수년전 포항공대에서. 건물 로비로 쏟아지던 봄 햇살.

그 때의 황폐했던 머릿속과 맹렬하게 화학반응을 하던 풍경 





신천지나 구천지나 그놈이 그놈이드만 대문짝만한 벽보까지 붙여놓고 아주 경끼를 하는구나.

기껏 공들여 붙들어 놓은 고객들이 보따리 싸서 거기로 갈까봐 잠이 안오지?

신천지 뻐꾸기가 어느 틈에 들어와 알을 까놓을까봐 잠이 안오지?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뭐에 목말라하는지는 관심도 없지?

수 십 년동안 성경책 하나 눈가림으로 옆구리에 끼고 적당히 혹세무민하면서 사업하다보니 

이제는 뭐가 진짜인지 너희들도 막 헷갈리지? 

솔직히 까놓고 말해 봐. 너희들도 안믿지?

지금 너희들이 하는 거. 그거 신앙 아니야 무당짓이지. 

신천지한테 먹힐까봐 전전긍긍할 수준이면 그냥 교회 문 닫아.

그게 그동안 너희들이 보여준 한국 개신교의 수준이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당신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이상 그것은 그것대로 당신이 선택한 당신의 삶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삶에 이타적인 삶이라는 장식을 달지 말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삶과 생명을 소모시켰지만 그들은 내가 타인을 위해 희생했노라고 생각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그 대상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삶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며 사람들이 그들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그러니 희생은 남들이 알아주면 감사하겠지만 내가 나서서 굳이 생색낼 일은 아니야

그걸 굳이 입 밖에 내어 떠벌이는 순간 그놈의 희생은 당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이 될 뿐이지. 기어코 그렇게 되고야 만 것을 축하라도 해 주어야 할까.

 가끔 '내 자식을 위해서 나를 희생했노라'고 떠벌이는 덜 떨어진 부모가 있긴 하지

하지만 스스로 자랑하는 그 희생이란 것에 진정성이 있을 리가. 하물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아닌 타인을 대상으로 감히 내 삶을 희생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아, 누구를 위해서라고 말 한 적이 없다고

희생이라는 말은 무엇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형태거든

누구도 원하지 않고 누구를 향해서도 아닌 희생이라면 그건 희생이 아니라 헛짓이며 개죽음이라 말해야지

권하건대, 당신 스스로 섣불리 희생을 말하지 말기를. 

희생이라는 단어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값진 말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 희생이라는 장식을 하지 않는다

희생은 그 대상이나 제 삼자가 감동하여 머리를 숙여 기릴 때 빛나는 무명의 깃발이지 자신 스스로 입에 물고 가슴에 달 수 있는 양철 훈장이 아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