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 반쯤 출발했다. 날씨가 걱정이다. 비 온다던데.
영주 봉화 분기점에서 빠져 태백으로 접어들 생각이었는데 정신머리는 엇다가 내다 버렸는지, 거기다가 네비는 또 왜... 돌아와서 복기해보니 아마도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야 할 걸 중부내륙으로 곧장 가버린 모양이다. 뜬금없이 동상주에서 내려 서라더니 예천 근방에서 국도며 지방도에 정체불명의 시골길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뺑뺑이를 돌았다. 안그래도 출발이 늦어서 마음이 바쁘구만 첫날부터 이게 무슨 헛발질. 혼자 툭탁거리며 겨우 태백쪽으로 길을 잡아 넛재 터널 근처를 지날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정암사. 만항재로 바로 올라가서 이 쪽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어평재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네비와 씨름을 하면서 두 번을 돌고 돈 끝에 결국 이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꼭 한 박자씩 늦는 네비. 아, 스트레스. 폰 바꿔야하는데. 태백 들머리의 주유소 아주머니 덕에 그래도 덜 헤맸음. 감사합니다.
정암사는 편안하거나 넉넉하지는 않았다. 엎친데 덮쳐서 비도 오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참이라 차분하게 둘러보지를 못하고 눈으로만 얼추 훑고 말았다. 시간은 아직 오전인데 내내 해질 무렵 같았다. 초반에 가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다닌 시간이 하루 종일 빚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산 중턱에 있다는 수마노탑은 가 볼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애기들도 우산 쓰고 엄마 손 잡고 씩씩하게 올라가드만. 마음이 옹색하니 시간도 옹색해진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다음에 다시 보자.
만항재다. 정암사를 서둘러 지나친 것도 혹시라도 비와 운무에 젖은 멋진 만항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이었는데 이게 다다. 이 사진 한 장. 그리고는 내리 안개길이다.
건의령 길. 건의령 터널을 빠져나오자 글자 그대로 오리무중. 아무것도 안보였다. 앞 선 버스의 미등을 보고 겨우겨우 따라 내려오다 어떻게 잠깐 안개가 열리는 걸 보고 얼결에 차를 세운 뒤 하나 건진 사진. 가장 멋진 그림을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연히 만났던 어떤 여행자는 그래도 자기는 만족한다던데 아마도 생불이신듯. ㅡ.ㅡ
아이고 아쉽다고 멱살잡고 우두커니 기다리면 안개가 비켜 준다니? 갈 길이 멀다. 안개는 볼 만큼 봤으니 갈길 가자.
대차게 비를 두들겨 맞으면서 속초에 도착. 허둥지둥 숙소에 짐을 옮겨놓고보니 막막하다. 자전거로 아야진까지 올랐다가 대포항까지 내려 온 다음 속초 시내를 여유있게 돌아 볼 생각이었지만 비 때문에 기동력이 무력해졌으니 뭐 어쩔 수 없지.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바닷가 근처라도 나가보기로. 갯배도 타 보고 예정에 없던 아바이 마을도 주섬주섬...
갯배에서 본 설악대교... 아니, 혹시 시드니니? ... ㅎ
설악대교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아바이 마을. 어떻게든 멀리까지 걸어 보려했지만 그게, 도보로는 뻔하지. 다리도 아프고 신발도 축축하고 억지로 다니자니 별로 재미도 없고.. 세상에, 시간 아깝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니. 청초호를 따라 조금 더 걷다가 그냥 돌아서버렸다. 준비했던 계획이 틀어지고 그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으니 플랜B를 생각해놓지 않았던 나한테 짜증이다. 뭐, 첫날부터 날씨가 배신을 할 줄 낸들 알았나. 거기다가 근처에서 먹었던 저녁밥은 딴에는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물탄 사골국.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돈은 더 받아도 좋으니 제발 밥에는 장난치지 말자... 다시는 안가야지. 투덜투덜 숙소로 돌아왔다. 되는 일이 없구나.
숙소는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숙소에 갇혔다. 더 이상 나가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철벅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신발도 젖고 양말까지 젖었다. ㅜㅜ
숙소 휴게실에 앉았더니 이제는 아예 장대비가 지붕을 때린다. 여행객들도 없는 썰렁한 휴게실에 혼자 앉아서 커피 한 잔.
그래, 뭐, 이건 운치가 없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어. 여행이 주는 이런 어정쩡한 낯 선 느낌은 좋아. 나름 애써 공간을 꾸며 놓은 호스텔 쥔장에게 감사. 힘들었던 오늘 하루 중 작은 위안이 되었어요.
둘째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장사항...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낯 선 동네의 비바람 부는 새벽 바닷가라니. 포항에도 이런 해변은 쌔고 쌨어!! 써 먹지도 못할 자전거는 대체 왜 달고 나온거야.
그냥 이 참에 속초 일정은 다 놔버리고 다음 경로로 건너 뛸까 하고 차를 돌려 나가는데 마침 빗방울이 가늘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던 영랑호. 한 참 위축돼있던 참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호수 옆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내려서 안장을 닦았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 본다. 에잇, 또 비 쏟아지면 되돌아 오면 되지, 자포자기로 소심하게 페달을 밟는데, 손이 시리고 안개비에 옷이 좀 젖긴 했지만 꿀꿀하던 가슴 아래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렇지! 이거야! 이런 거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영랑호는 자전거로 달리기에 딱 맞춤이었고 호수는 그보다 더 좋았고 중간에 걸쳐진 꿀렁다리(꿀렁이 맞아. 출렁하고는 좀 달랐어)도 센스 만점. 흐린 하늘과 흐린 호수 사이를 예리하게 잘라 낸 공제선은 아주 멋진 시각의 쾌감. 마침 날씨 덕분인지 이른 시간 덕분인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더욱 좋았어. 좋아! 이런 거였어! 쓸모없는 자전거는 왜 달고 왔냐던 건 누구였지?
꿀렁다리(진짜 출렁은 아님) 지금 생각하니 이것도 무슨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눈과 귀가 어느한 쪽으로 쏠려버리면 디테일은 다 놓치는 것이 내 병통인 것. 정신이 한 곳에 팔리면 텍스트는 보는둥 마는둥, 매뉴얼은 쌈싸먹고. 한 참 헛발질 한 다음에야 내가 이걸 왜 못봤지.. 맨날 이런 패턴. -- 찾아보니 영랑호수윗길 이었다. 예쁜 이름이었네. 늦게라도 모르면 물어보자. 검색의 생활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훨훨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자전거를 업고 출발 할 채비를 끝낸 까칠한 빨갱이.
괜히 뭔가 분주하고 비장해진 조수석. ㅋ
속초와 멋진 첫 인사를 나누게 해준 영랑호는 이제 안녕. 내친김에 대포항으로.
관광지도에도 떡하니 대포항전망대라고 해놨더니 어디 찾기도 힘든 구석탱이 골목길에 허접하고 꼬질꼬질한 계단.......이드만 아이고 몰라뵈었습니다. 눈맛은 제대로였네. 가까이 보는 것 보다 내려다보는 것이 백배는 더 멋진 대포항. 혹시나 하더라도 꼭 올라들 가보시기를. 이래서 풍경은 드론 샷을 못이기는 거지. 땅에 붙어서는 제아무리 앵글을 돌려봤자 항공샷을 이길 수가 없어.
덕분에 눈이 시원해졌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대포항 전경.....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지만 그래도 전망대는 좀 정비해 두자. 속초시장님.
취미의 영역이야 문외한들이 입을 댈 일은 아니지만 비바람에 파도가 제법이라 배가 아주 곤두박질을 치드만 어디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방파제 근처에서 배회하던 낚시배 두 척. 비도 뿌리고 울렁울렁 저래서야 낚시가 되겠나 싶은데도 기를 쓰고 낚싯대 붙들고 시끌벅적.... ㅋㅋ 낚시꾼들도 참 못말리는 꾼들이야....
보는 순간 흠칫했던 어느 호텔 입구의 인면상. 길에다가 왜 저런 무서운 걸... ㅡ.ㅡ;
또 다른 호텔의 조형물.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래 뭐, 호텔 앞의 조형물이 심오할 필요는 없으니까...
진부령 식당. 나중에 보니 월계관까지 쓴 원조집이네. 속초를 떠나 고성으로 가는 길에 아점 먹는 중. 이 때까지 여전히 비 옴. 미시령 옛길은 아예 폐쇄 중이었고 울산 바위 역시 코끄트머리도 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내가 끓인 황태국과 맛이 똑 같아서 매우 신기했음. 뭐, 맛있었다는 이야기... @.@
얻어 걸린 건봉사. 화진포로 향하던 길에 휙 지나치다 '건봉사'라는 절 이름에 꽂혀서 굳이 찾아 들어간 절. 와보길 잘했어. 이건 괜찮은 촉이었어.
특이하게 기둥이 네개인 불이문. 무슨 이름 붙은 문화재라던데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아. 내가 말을 걸고싶거나 나한테 말을 걸어오거나 한다면 나는 좋아. 그게 사람이건 귀신이건 뭣이건.
절집 구경을 다니다보면 더러 보이는 간절함들. 간절함과 욕망은 얼마만큼 다른 것일까. 큰 놈 첫 수능날 봉정사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하지만 봉정사 부처님 앞에서 비나이다 우리 새끼 만점 받게 해주십사 기도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될 일이었으면 백번 천번이라도 했겠지.
보았던 중에 가장 우아했던 진신사리탑. 부처님은 출타중인 적멸보궁.
절 입구의 멋진 소나무. 어디 세한도 속에 서 있다가 나온 듯 고졸한 느낌. 예상치 못했던 신 스틸러.
범종각. 이 사진은 뒷산의 안개가 일 다했다.
이런 예의바른 거만한 느낌도 좋아. 오만하거나 교만하지는 않은 고집불통의 거만함.
왜 금강산 건봉사인지는 모르겠어. 대개 그 절이 앉은 자락의 산 이름을 붙이던데 이 절이 앉은 산이름이 또 다른 금강산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그 금강산인지. 이 금강산이 그 금강산인가? 아니면 이 금강산은 그 금강산이 아닌 건지? 어쨌든 금강산이 궁금함.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 안그래도 고단한 이 나라를 아주 밑바닥까지 작살 낸 흉물들의 그렇고 그런 사적지들. 화진포호를 자전거로 라이딩하려던 생각은 접기로. 건봉사에서 시간을 뺏기기도 했고, 생각보다 워낙에 넓었고, 찻길을 따라 달려야하는 것도 부담이고, 그래서.
민통선 출입 허가증.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 검은 띠를 덕지덕지 붙였더니 흡사 무슨 대외비문서.
쩌어기 안개 속이 북한이라오........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는 남한이라오........... 그렇겠지.. 저어기 내 차도 보이네.
이름이 예쁜 명파해변. 우리나라 최북단.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던 명파해변.
박수근 미술관. 전시장이 무려 여섯개라는 말에 섣불리 가슴이 벅차서 좋아했더니 정작 박수근은 박수근 기념관 하나밖에 없더라. 뭔 알 수 없는 현대미술 몇 점에 어린이 체험 미술관에 맨 눈만 어지러운 영상관, 이런 저런 우수마발.
그래도 이런 박수근의 스케치도 보고 그 아련한 느낌도 보고 느꼈으니 괜찮아. 두시간을 돌아돌아 허위허위 달려왔었어도 괜찮아. 하지만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
정작 박수근은 얼마 없었던 박수근 미술관. 그래 괜찮아. 안왔더라면 언제까지고 궁금해하며 오고싶어했겠지. 그런데 김환기의 작품 하나도 걸려있지 않던 김환기의 안좌도 고택에 갔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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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혹시나 하고 서둘러 달려 올라갔지만 시계 제로/ 가시거리 5m이하/ 일몰. --- 아무리 여행이 변수의 연속이라지만 이건 참 너무하다. 결국 이후의 스케줄은 다 꼬여버리고 저녁도 제대로 못먹은 채로 예상시간보다 한 참 늦어버렸다. 고산지대 드라이브는 이것으로 모두 실패했다. 만항재/ 건의령/ 미시령옛길/ 진부령/ 한계령. 하나도 남김 없이. ㅜㅜ.
셋째날. 월정사. 이른 아침의 고즈넉한 산사를 기대하고 왔으나 웬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즐비한 건설의 현장...
팔각구층석탑도 알록달록 울긋불긋 초파일 채비 하는듯. ㅡㅡ
절 구경은 접자. 어차피 오늘의 일정은 트레킹이니까. 별 미련 없이 절마당을 가로질러 선재길 입구에 섰다. 나름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아 두었던 선재길이다. 월정사 상원사 사이의 편도 9km 트레킹.
4월 하순 치고는 꽤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선재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이 걸어 본 누군가가 자기가 다녀본 트레킹 중 으뜸이라더라던데
과연 그러..한가?
뭐 나쁘지는않지만 기대가 너무 컸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싱겁다. 여행은 늘 예상 경로를 벗어나기 마련이지만 나름 운치있고 난이도가 높지않아서 접근은 쉽겠긴한데 산행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에겐 의외로 맛이 덜할듯.
결정적인 것이 트레킹코스와 나란히 달리는 버스길. 트레킹을 잠시 멈추고 찍은 섶다리 사진.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버스 정류장 ..
덕분에 초보자들의 안전이 담보된다지만 호젓한 고립감을 기대하던 내게는 예상치 못한 구멍이었음. 마치 집을 탈출해서 드디어 독립을 했는데 옆집에 엄마아빠가 이사온 느낌. ㅋ
그친구 진짜 트레킹 전문가 맞냐고..
뭐 그래도 길은 꽤 예쁘고 길이도 적당해서 아쉬움을 다독이면서 쉬엄 쉬엄 완주는했는데 왕복 18km를 걸으려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편도로 만족하기로. 그만큼 쏟아낼만큼의 가치는 아니기도했지만 이게… 하루에30km씩 산길 날아다니던 산싸나희 어데 갔노 무릎도 시큰거리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는 결리고 종아리에 통증이.. 그러게 연식이 좀 되긴 했지 머. ㅡ.ㅡ
발을 질질 끌다시피 상원사에 드디어 도착했더니
이런 젠장 상원사는 계단지옥이네. 사람살려.
상원사의 상원사 동종. 진품은 유리 상자를 만들어 씌워놓고 복제품을 걸어 놨더라. 내 눈으로는 똑같이 보였으니 이거나 저거나 뭐. 그럼 나중에 누가 나한테 멋진 선물을 하더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못해서 어리둥절 하는 건 아닐까. .. 그러게 ......... 줄 사람도 없는데 걱정부터 하냐고. ㅎㅎ
계단 지옥 맞아. 여긴 그냥 포기하고 안올라갔지. 다리가 너무 아파. ㅜㅜ
그리고 이십분을 기다려서 냉큼 버스 탑승. 참 오랜만에 버스로 달려보는 비포장도로. 그 때 그 시절에 지리산 아래 큰집 갈 때 우당탕탕 그 멀미 가득하던 촌 버스. 뜻 밖의 시간에 뜻 밖의 장소에서 뜻 밖의 기억 소환. 요즘 버스 답지 않게 스멀거리던 기름 냄새도 한 손 거들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 서울의 광릉이랑 내소사 길하고 해서 우리나라 삼대 전나무 숲길이라는데 뭐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는 않음. 나는 오히려 계곡 건너편의 산책길이 더 좋았다. 뭐, 사람 나름이니까.
그리고 정동진. 한국 사람이면 아무나 다 간다는 정동진. 인자는 나도 가 봤다. 기차 지나가는 거 한 번 보고 자전거로 부채길까지 갔었는데 바다 부채길은 자전거 입장이 안된단다. 좀 궁시렁거리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걸어서는 답이 안나오는 시간이라. 삼박사일의 일정 중에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봤다. 복도 많지.
별 것도 없드만. 그 놈의 모래시계는 언제적 모래시계가 아직도... 나도 참 재미있게 보긴 했었는데. 한적한 바닷가 동네가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오래동안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대단한 드라마이긴 했나봐. 예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여기저기 소소하게 관광객들이 쏘다니고 차들도 번잡하니까. 심지어 나도 왔잖아? .......친구야.. 나도 떨고 있니? ..... ^^
바다 부채길을 못가라 하길래 괜히 부어서 투덜거리다가 전망대에서 찍어본 유람선의 이륙. 저거 뜯어다가 바다에 놓으면 뜰라나 말라나.
시장에서 만두 하나 사 들고 어제 보다는 조금 이르게 숙소로 돌아 옴. wpr 로비에 있던 수호랑과 그.. 이름이 뭐더라... 그 뭐시기 곰돌이.
근처 여기저기 보이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흔적. 좀 지쳤는지 시간도 늦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관리가 안돼서 여기 저기 쇠락해져가는 느낌 과 다시 바람불고 비 뿌리던 저녁나절의 스산함 때문이었는지 이것 저것 모두 다여서인지 어쩐지 더 다니고싶은 생각이 안들어서 그냥 숙소 주변에서 카메라만 뺑뺑 돌리면서 몇 컷. TV로 올림픽 경기들을 챙겨보면서 참 기껍고 좋았는데. 귀엽고 재미있던 수호랑 탈바가지 자원봉사자들이며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너나 할 것 없이 살짝 들떴던 분위기 하며.. 그 때만해도 잘 될줄 알았지. 자동차로 압록강을 건너 볼 수도 있겠다고 막 영어공부를 해야 하나.. 그랬었는데. 내 생전에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을 듯 해서 좀 쓸쓸해졌다. 그리고 오전에 걸었던 트레킹이 좀 버거웠는지 맥주 한 잔에 바로 녹아웃. 기절 해 버렸다. 산 너머로 보이던 저 구조물이 올림픽 성화대였나 어느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스키 점프대일거란다. 그 친구들은 스키 타고 막 날아다니던 친구들이라 아마도 맞을 걸.
생각이 나서 찾아 본 수호랑 동영상 하나.
네째날.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되짚어 올라갔던 풍수원 성당.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그랬는지 비 온 뒤의 화창한 하늘이라 그랬는지 소소한 바람결에 뻣뻣하게 굳은 껍데기가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 언뜻 모르고 지나치면 모를 수도 있는 외진 산기슭 마을 한 켠에 이런 근사한 건축물이 있다니!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라도 와보길 잘했다.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지켜 보던 세월이 하루 하루 쌓아 올렸겠지.
사진은 놓쳤지만 성경책을 품에 안은채로 혼자 천천히 이 계단을 오르던 수녀님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내부의 사진촬영을 제한합니다/
촬영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출입조차도 할 수 없었던 성당 내부. 나그네에게 잠깐의 평온 한 조각 쯤은 내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굳이 한 시간 넘는 길을 돌아 서둘러 왔는데. 조금 섭섭.
여기는 풍수원에서 많이 멀지 않았던 용소막 성당.
올라 가 볼 수 없었던 곳. 수도원 같은 곳인가?
조금 엉성해 보이던 종탑
엄격한 수도사 같던 풍수원과는 좀 다르게 성당 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의외로 담백한 모습이 사람 좋은 수사 할아버지 같던 용소막 성당. 와보길 잘했어. 두 성당 모두 와보길 잘했어.
청량한 아침과 그때의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멋진 건축물. 나의 선택은 좋았고 행복했음. 잘했어!
마지막 행선지 구미 도리사. 야트막한 산 자락인 듯 보여서 그런가 했더니 막판에 갑자기 가파른 산길에 당황. 급한 커브길에서 뒷바퀴가 헛도는 바람에 식겁했음. 결국 겁 먹고 끝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그럼, 절구경은 천천히 걸어서 해야 제 맛인거야. 흠. .. 4륜구동 갖고싶다..@..@
느낌은 오히려 건봉사보다 좋아
거기다가 멀리 낙동강 굽이가 내려다보이는 눈맛은 부석사의 그것에 못지않음
이번 여행가방에 챙겨넣었던 정암사 월정사 상원사들은 좀 많이 실망이었는데 그게,
나는 내가 없었던 오래전의 시간과 사람과 공간들이 긴 시간 가라앉은 어떤 눅눅함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것이지 어마어마한 규모나 대단한 자랑거리를 뽐내는 보물단지라든지, 알록달록 값싸보이는 채색 단청과 이런 저런 번쩍거리는 도금쪼가리들로 잔뜩 자랑질 해 놓은 절집을 보고싶지는 않다는 말이지. 거기다가 초파일이라고 산문 입구에서부터 산속 가득히 달아매 논 그놈의 오색 연등은 참 질색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색감이 이렇게나 싸보였었냐고 ㅜㅜ 초파일이라고 부처님이 나들이 왔다가 좀 뜨아하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은 크리스마스가되면 그나마 조금은 더 예뻐지는데 절집은 아닌거 같아.
스님들, 그놈의 오색 연등 좀 어떻게 안될까 내가 다 안타깝이.
사진 찍을 때도 어떻게든 연등 피해서 찍느라 용 을 썼던거는 공공연한 비밀임.
아도화상이었나? 뭐, 훌륭한 분이었겠지만 첫 인상이 나랑 잘 맞을 것 같지는 않아. 같이 술 한 잔 하다보면 나만 기 빨릴 것 같은 느낌.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걸로. ㅋ -- 아니다. 포대화상이었다. 자선을 위한 물건이 가득 든 포대를 들고 다녔다고 포대화상이라는데. 아니, 선물 보따리라면 그럼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었나... ㅡ.ㅡ
콩고물 시루떡 같던 화엄석탑. 탈속한 고승같이 번잡하지 않은 걸작이었다. 멋진 시루떡.
연등에 가려져서 담장 어딘가를 딛고 올라서서야 겨우 찍은 사진이다. 연등들만 아니었다면 저 날렵한 팔작지붕이 날아 오를 듯 멋지게 펼쳐졌을 텐데. 연등이 걸리적거려서 많이 아쉬웠던 도리사 극락전.
소박하지만 초라하지도 않던 태조선원. 템플 스테이 숙소로 쓰는 듯. 이런 정갈하고 정연한 느낌 참 좋지 않아? 나도 방 하나 주지. ㅎㅎ.
태조선원 기둥에 저그들끼리 옹기종기 목탁. 나보고 웃는 거냐?
적멸보궁. 부처님은 치아사리만 남겨놓고 출타중.
진신사리탑. 건봉사의 수려한 사리탑에 비해서는 다소 과장된 느낌.
돌아 본 순간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적멸보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버려서 폰 카메라로 찍을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화질이 좋지않아 많이 아쉬웠음.
언젠가 배터리 완충으로 다시 한 번....
내 여행의 마지막을 기껍게 채워준 도리사에 감사를.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올 듯.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많이 행복했다.
......... 하지만 클리어가 안됐지? 그럼 뭐 다시 가야지.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