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예정되어있던 진주행. 때마침 전 날의 스케줄도 비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박2일이 됐다. 진주 가는 길이면 삼천포도 가야지. 어떤 유튜버가 삼천포를 소개해놨는데 아주 멋지더라니까. 내가 알던 예전의 삼천포가 아니야. 기왕에 떠나는 김에 해인사도 끼워넣었다. 진주 가는 길목에 있으니 마침 잘됐지. 코로나 전에 혼자서 다녀 왔긴 한데 남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한 번 더 가보기로.
한적한 해인사 주차장. 이른 아침이라 차가 거의 없어서 무턱대고 맨 위 주차장까지 냅다 올라갔다가 어리둥절 다시 내려왔다. 공간 기억력은 꽤 좋은 편이라 한 번 가 본 곳은 잘 안잊어먹는데 뭔가 낯설다... 뭐지??
일주문까지 걸어 올라가다 처음 만난 선재카페. 이른 아침이라 문은 닫혔더라. 절에서 선재를 또 보네. 월정사 선재길. 해인사 선재카페. 처마가 나즈막하니 편안하다. 나중에 내려 오는 길에 막 오픈 준비를 하던 선한 얼굴의 여인네가 앉았다 가시라고 권하던데 갈길이 멀고 시간은 한정인 탓에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주문을 막아놨다. 행사 관계라니 아마 초파일 때문에 그런 듯. 가는 절 마다 알록달록 난리법석인 초파일. 얼른 지나갔으면...
그래서 옆 사진.
장경판전 오르는 계단. 나 여기 안 와본 것 같다. 이런 저런 법당이며 불상들 이런 곳들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긴가민가 그럴 수 있다해도 이런 곳은 기억 못할리가 없잖아. 그러면 그 때는 밥만 먹고 갔던 건가. 분명히 해인사 상가에서 스님 나물 비빔밥인지 산채비빔밥인지를 먹었던 기억은 분명한데. 대체 뭐지? 이 먼길을 와서 절집은 들어오지도 않고 밥만 먹고 내뺐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미스테리를 만났다.
장경판전. 나는 처음 온 것이 분명하다.
장경판전 뒤쪽의 법보전. 천장에 가득 매달린 이름들. 기독교 헌금 봉투에 이름 쓰는 것과 같은 것인가. 전능하신 여호와나 자비로우신 석가세존이나 여기나 저기나 어느 동네 사는 아무개라고 이름을 써 붙여놓지 않으면 누군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대비로전은 부처님이 둘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 들여다봤다가 처음보는 쌍둥이 부처님이 신기해서.
종무소로 쓰이던 사운당. 현판 첫 글자를 읽지 못해서 밖에 계시던 분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대체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눈치길래 나 참, 그래서 안에 계시던 분에게 물어봤더니 합장으로 인사 주신 다음 사운당이라 알려주시더라. 그래서 저 사字가 무슨 사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 분도 모른다고. 가만 보니 四 인가 싶기도 한데. 더 이상 물어 볼 사람이 없었음. 다들 몹시 바쁘더라니까.
---검색의 생활화 /사운당(四雲堂)/신심 깊은 불자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뜻이라는데? 해인사 사운당이라고 찾아보니 금방 나오는데? 넉四자가 맞긴 했네. 근데 왜...
일주문 맞은 편에 있던 카페 수다라. 카페 이름은 수다라인데 밖으로 들리는 음악은 페르귄트 조곡 아침(morning mood)이다. 묘하게 안어울리나 싶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절 앞에 카페라고 찬불가만 들을 수는 없잖아? 마침 화창한 아침이기도 했고. 수제 대추차가 아주 일품이라는데 혼자서 뭔.... 게다가 소생은 아직 식전이옵니다.
내용은 멧돼지인데 그림은 집돼지라 좀 웃겼다. 아무튼 와본 것도 아니고 안와본 것도 아닌 아리송한 해인사는 여기까지. 송광사, 통도사 해서 한국 삼대 사찰이라던데 느낌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더라. 그래도 팔만대장경을 본 것으로 충분했음.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 와 본 거 맞아. 이게 무슨 일이야.
삼천포 각산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 고심 끝에 선택한 휴양림 길. 그런데 휴양림 이름이 참. 그냥 산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예쁜 이름을 하나 고안하든지. 홍보를 노린 이름 같긴 한데 잘 안어울린다. 파는 상품이 '자연'휴양림인데 그 상호가 '케이블카'라면 좀 너무하잖아. 거기다가 나는 케이블카가 싫거든. ㅜㅜ
이름은 그랬어도 의외로 꽤 울창한 숲. 측백나무라던데 덩치도 제법 있고 키도 커서 숲 사이로 걷기 좋았다.
그렇지만 각산 전망대는 이리로 오르지 마시오. 다른 길이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좀 무서워도 케이블 카를 타고 가야 함. ㅜ.ㅜ 한 시간 가까이 땀을 한 바가지 쏟음.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동해와는 많이 다른 남해. 저기 지명이 남해이기도 함.
바다와 섬과 죽방렴.
삼천포대교. 그 옆에 메주덩어리같이 달려있는 것이 바다케이블카.
그래도 올라 와보길 잘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걸어서 오든 굴러서 오든 여긴 와봐야 한다. 남해 창선과 이어진 삼천포대교도 멋지고 섬과 섬 사이에 놓인 죽방렴들도. 죽방렴은 가까이 봐도 좋은데 이렇게 보니 더 예쁘다. 아무튼 여기는 추천.
거북선마을 쪽에서 본 서포로 가는 사천대교. 삼천포대교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만만찮다. 뻥 뚫려서 눈이 아주 시원하다. 갯벌을 못봐서 좀 섭섭했지만 괜찮아. 갯벌은 다음 기회에. 어차피 마을 안쪽에서는 무슨 경로잔치인지 뽕작이 낭자해서 들어 가 볼 엄두도 안났다. 무수히 오가면서도 멀찌기 지나치기만 하던 처음 와본 사천만. 기억에는 그냥 진삼 국도 지나치다 빛내림이 자주 보이던 동네. 좋네. 진작에 와 볼 걸.
사천만 대포항 근처. 내가 좋아하는 전봇대 풍경. ^^ 나는 하늘에 걸린 전봇대가 너무 좋아. 하늘이 예쁘면 더 좋아.
전봇대는 여기까지. 이 시간 이후로 서둘러 건너갔던 비토섬은 실패.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전혀 달라서 마음이 식어버렸음. 핫플레이스라고들 하길래 궁금했었는데 나와는 맞지 않은 듯. 나즈막한 구릉같은 섬을 기대했는데 맨 산길이드만. 두어군데 기웃거리다가 그냥 차를 돌려 나와버렸다. 듣기로는 일몰이 일품이라던데 글쎄. 물이 빠지고 갯벌이 열리면 좀 다를려나.. 어찌됐든 오늘은 틀렸다.
실안 해변에서 가까이 본 죽방렴. 좀 이른 시간이지만 낙조는 이걸로 끝. 바람도 차고 배도 고프고.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던 길. 목요일 오후 7, 8시쯤 된 시간인데... 인구도 줄고 행정구역도 달라지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알던 삼천포가 아니었다. 낮과 밤이 너무 많이 달라져버린 삼천포. 어둡고 조용하기만해서 적적하고 서글펐음. 그래도 식당은 꽤 분주했고 밥은 맛있게 먹었음.
둘째 날. 아침 나절 자전거로 삼천포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닌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노출 걱정을 해야 하는지. 조리개 우선으로 놓아야 할 걸 밤에 쓰느라 시간 노출로 해논 걸 깜빡하고 그대로 찍어서 색이 다 날아갔다. 머릿속이 아주 삭아가는 것 같아서 참... 다 날아 간 노출을 커브를 틀어서 억지로 붙잡아 만든 사진들. 그래도 뭐 어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됐지.
삼천포항 방파제에서. 새벽 일을 끝내고 귀항하는 부부인듯. 보기 좋았다. 보기는 좋았는데 어딘지 좀 지친 모습이라..
늑도. . 삼천포대교는 멋진 다리지만 직접 달리는 것 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멋지더라. 삼천포대교 중간에 교각처럼 놓여있는 섬.
이건 대교 위로 굳이 걸어 올라가서 얻은 그림. 대교 위에서는 모자 조심. 바람에 두어번 날아갔음.
진주로 돌아오기 전 바다 풍경이 멋지다는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는 괜찮았다. 하지만, 때때로 창에 갇힌 액자 풍경이 더 아름다운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번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도 없다. 지나치는 길에 잠시 쉬어 간다면 모를까 좋은 전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실내로 찾아 들어 가는 것은 나는 좀 아니라고... 그래도 커피는 맛있어서 쪽쪽 소리가 날 때까지 다 먹었어요. 친절한 알바생.
사천 성당.
외관은 담백했고 예배실은 소박하다. 간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더라. 근처로 지나간다면 들러 볼만한 듯. 한옥 성당이라고 그러길래 어떤가 궁금했었는데
이런 건물이었다.
지금도 현역으로 잘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천장에 달린 꽃 등이며 접이식 의자며 집기들이 좀... 짙은 갈색의 마루바닥에 좌식으로 보존된 묵직한 옛 건물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웠다. 뭐, 쓰는 사람 마음이지 어쩌겠냐고.
그리고 무사히 일 잘 보고 돌아왔지. 짧은 일정에 즉흥적으로 끼워넣은 좋은 여행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