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자는 듯 죽어 가는 듯
대롱대롱 시렁 아래 목 매달고 숨 찬 거미
창호지 문 밖으로는 먼지 바람이 후다닥 마당을 까 뒤집고
군불 식어 웅크린 삿자리 웃 목엔 늙은 호박과
갈라진 메주와 귀퉁이 튿어진 고구마 자루
딴에는 저마다 사연이 깊어 뭔가할 말이 있을 법도 한데
저 혼자 낙숫물 소리만 그럴 듯 한 콩나물 시루
봉창 아래 너덜너덜 국회의원 나리도 공화당 소싯적 이야기지
인자는 뉘가 뉜지
이 놈인지 그 놈인지
임자는 정지에 가서 고구마나 몇 개 쪄 오든지
어흠.
아, 테레비 쫌 꺼삐리고 고만 자빠져 자
어둑 구석에 무슨 배애지는 쳐 고프댜.
썩을 놈의 영감태기
뵈기 싫은 것들은 범도 안 물어 가.
짧은 글
고향
2009. 1. 2. 18:47
까치
2009. 1. 2. 18:43
북동 하늘에서 샛바람이 불면
전기 줄 위의 까치들은 그 곳을 본다
무엇을 그리워하고나 있는 듯이
풍향계처럼 일제히 바다 건너 그 곳을 본다
보이기나 하는지
보기나 하는지
그래도 떼 지어 줄 지어 나란히 앉아서
해가 지도록 하염없이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을 보고 있다
날이 흐리고
빗방울이 후두둑 듣는데 전기 줄 위의 까치들은
풍향계가 되어 바람이 불어 오는 곳만 바라보고 있다
풍경
2009. 1. 2. 18:40
/봄. 마당
남새밭에 핀 장다리 꽃 위에 노랑 나비가 앉았다
집을 보던 아이는
거울 조각으로 햇빛을 꺾으며 나비를 좇는다
/봄. 빈 방
어스럼 비어 있는 방
종일 비 오더니
혼자 앓는 잠 깨어 듣는 낙숫물 소리는 푸른 연두색
/초여름. 마루 끝
건너 건너 집 아기 울음 소리
먼 곳에 다듬 방망이 소리
하늘에 박힌 해는 왼 종일 그 자리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긴 긴 여름 낮
/여름. 개울
송사리 모래무지 기슭에 졸고
포플러에 걸린 해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물살은 부서져서 온 종일 꿈 같은
/늦여름. 동구
멀리 기울어진 신작로
버스는 우당탕 누렇게 달리고
삼베 홑이불에 누운 아기
정자 나무 그늘에서 여름 한 나절 졸다
/초가을. 길
낮 잠 깨어 울며 달려 나간 대문 밖 큰 길
시장 갔다 오자던 엄마는 언제 가셨을까
뙤약볕만 가득 찬 눈 부신 초가을
저 놈의 소리개는 또 왜 떠서 가슴만 두근거리고
/가을. 역
허수아비 곁에는 허수 아기도 있다
철 늦은 채송화 맨드라미
사루비아 꽃밭도 예쁘다
꼬부랑 할머니 허둥지둥 철길 건너가고
덜커덩 달리다 삐꺽 멎은 시골 역에 익은 가을 한 낮
/늦가을. 들판
오후의 가을 들판은
종종
정물이 된다
/겨울. 마루
종일 흙바람 마당을 쓸어쌓더니
바람 먼지 곱게 앉은 대청 마루엔 아직 발자국도 없이
비껴 앉은 저녁 햇살에
인숙이네 굴뚝 그림자만 슬그머니 올라 서서
가을 바람
2009. 1. 2. 18:29
하냥 세상 일을 보듬고 달음박질 치기는 잠시 그만 두고
한가로이 강변에 앉아 억새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 봄도 좋을 일이로다
품은 뜻이 작아 고개가 숙여지리로다
하늘의 솜씨는 한 낱 억새 한 잎에도 우주가 숨어 있는 법
하물며 그 억새를 고개 숙이게 하는 그 밝은 바람임에야!
휴일
2009. 1. 2. 18:27
기차도 하나 지나가고
비행기도 셋 날아가고
풀이 마르는 가을에는 바람도 이리 좋은데
집 그늘에 앉아 하늘 바라고 이토록 무심타
아무라도 기다리다가 바라보다가
살아 가는 것이 검거나 희거나
희거나 말거나
그저 그럭 저럭 해는 지고
오늘은 찾아 오는 벗도 없구나
어두워지는 길 따라 자리 털고 일어서면
돌아 온 내 자리엔 묵은 냄새
되돌아 문간에 기대어 서서 산 그림자 보고
오늘은 아무에게라도 섭섭하다는 말 하고싶어 진다만
황가네 집
2009. 1. 2. 18:24
기찻길 옆 황가네 집은
밤 낮 오가는 기차 소리에 들뜨는데
식당차
침대차
시커먼 화물 열차
황혼에 흔들리는 통근 삼등 열차
육중한 바퀴 으르렁거리고 지나가면
황가네 집은 몸을 떨어 기차를 닮아 가는데.
절간
2009. 1. 2. 18:23
한 낮에 중이 염불을 하는데
간 밤에 꿩 구워 먹었는지
당최 무슨 소린지
딱
딱
볕 바른 법당 기와 지붕에는
풀만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