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당

남새밭에 핀 장다리 꽃 위에 노랑 나비가 앉았다
집을 보던 아이는
거울 조각으로 햇빛을 꺾으며 나비를 좇는다


/봄. 빈 방

어스럼 비어 있는 방
종일 비 오더니
혼자 앓는 잠 깨어 듣는 낙숫물 소리는 푸른 연두색


/초여름. 마루 끝

건너 건너 집 아기 울음 소리
먼 곳에 다듬 방망이 소리
하늘에 박힌 해는 왼 종일 그 자리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긴 긴 여름 낮


/여름. 개울

송사리 모래무지 기슭에 졸고
포플러에 걸린 해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물살은 부서져서 온 종일 꿈 같은


/늦여름. 동구

멀리 기울어진 신작로
버스는 우당탕 누렇게 달리고
삼베 홑이불에 누운 아기
정자 나무 그늘에서 여름 한 나절 졸다


/초가을. 길

낮 잠 깨어 울며 달려 나간 대문 밖 큰 길
시장 갔다 오자던 엄마는 언제 가셨을까
뙤약볕만 가득 찬 눈 부신 초가을
저 놈의 소리개는 또 왜 떠서 가슴만 두근거리고


/가을. 역

허수아비 곁에는 허수 아기도 있다
철 늦은 채송화 맨드라미
사루비아 꽃밭도 예쁘다
꼬부랑 할머니 허둥지둥 철길 건너가고
덜커덩 달리다 삐꺽 멎은 시골 역에 익은 가을  한 낮


/늦가을. 들판

오후의 가을 들판은
종종
정물이 된다


/겨울. 마루

종일 흙바람 마당을 쓸어쌓더니
바람 먼지 곱게 앉은 대청 마루엔  아직 발자국도 없이
비껴 앉은 저녁 햇살에
인숙이네 굴뚝 그림자만 슬그머니 올라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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