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 사이로 섭씨 영하 십도의 바람이 불고
몹시 심하게 불고
산바람 골바람 닮은 무시무시 귀신 휘파람 불 때

띵띵 얼어붙은 가로등 노란 불빛 아래
귀신 같은 대가리로 제 몸은 못 가누고
외투 자락 여미기 바쁜 취객 하나.


지난 여름 신났던 놀이터의 아이들
지금은 어디어디에 숨어 있을까
여름과 숨바꼭질 하느라 엿보고 있을까

십팔 평 주공 아파트 단지의 겨울 오후 다섯 시
심부름 나온 자그마한 계집아이
비닐 봉지 달랑거리며 춥지 않을까


운동장은 비어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감꽃이 떨어져 시들어가도
아무도 실에 꿰어 목에 걸지 않는다

새벽 안개 속으로 달려와
시큼한 감꽃을 먹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까치집을 짓던 철봉대 모래밭도 비어 사금파리만 반짝거리고
햇살에 숨찬 아주까리도 졸고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텅 빈 복도는 바람만 달리고
초여름 한 낮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날은 여름이었는데
끝 없는 휴일에
비 한 방울 내리지않고
쓸다 말다 황토 길 누런 먼지만 자욱 일었는데

무슨 재미 있었는지
아무 재미도 없었는지
하얀 꽃 상여 햇빛 속에 눈 부시고

가물가물 높기만 하던 하늘
바람도 없이 하얗게 달아오르던
그날은 여름이었는데


#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던 날의 기억이다.
나는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한여름 그 뜨겁던 날에 짚 앞길에 세워진 트럭에 얹혀 있던 하얀 상여와 굴건 제복의 군상들만 남아있을 뿐,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기억이 잘려 나간 것 처럼 이 날의 기억만 도드라지게 선명하다.
  



아랫도리 벗은 사내 아이
후다닥 뛰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뒤돌아보고 기웃거리다 달려 가버리고

아이 따라 느릿느릿 길 건너는 살찐 개 한 마리 너머로
어디론지 멀리 달아나는 국도

서리 맞아 주저앉은 배추밭은 뭐 하러 지키노
삭은 철조망에 걸쳐 늘어진 겨울 오후 네 시 반

다 식은 햇살 위로 낯 선 곳의 낯 선 조용함
길 보다 낮은 구멍 가게 지붕 위로 키 보다 길게 그림자가 자라나면
풀썩 무너지는 바람

때로는 나도 시린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 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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