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 사이로 섭씨 영하 십도의 바람이 불고
몹시 심하게 불고
산바람 골바람 닮은 무시무시 귀신 휘파람 불 때
띵띵 얼어붙은 가로등 노란 불빛 아래
귀신 같은 대가리로 제 몸은 못 가누고
외투 자락 여미기 바쁜 취객 하나.
그 날은 여름이었는데
끝 없는 휴일에
비 한 방울 내리지않고
쓸다 말다 황토 길 누런 먼지만 자욱 일었는데
무슨 재미 있었는지
아무 재미도 없었는지
하얀 꽃 상여 햇빛 속에 눈 부시고
가물가물 높기만 하던 하늘
바람도 없이 하얗게 달아오르던
그날은 여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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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던 날의 기억이다.
나는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한여름 그 뜨겁던 날에 짚 앞길에 세워진 트럭에 얹혀 있던 하얀 상여와 굴건 제복의 군상들만 남아있을 뿐,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기억이 잘려 나간 것 처럼 이 날의 기억만 도드라지게 선명하다.
아랫도리 벗은 사내 아이
후다닥 뛰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뒤돌아보고 기웃거리다 달려 가버리고
아이 따라 느릿느릿 길 건너는 살찐 개 한 마리 너머로
어디론지 멀리 달아나는 국도
서리 맞아 주저앉은 배추밭은 뭐 하러 지키노
삭은 철조망에 걸쳐 늘어진 겨울 오후 네 시 반
다 식은 햇살 위로 낯 선 곳의 낯 선 조용함
길 보다 낮은 구멍 가게 지붕 위로 키 보다 길게 그림자가 자라나면
풀썩 무너지는 바람
때로는 나도 시린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 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