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포항 출발

09:30 고한역 도착

그러게 왜 먹지도 않는 아침밥은 먹겠노라고 안하던 짓을... 예상보다 날이 좋아서(?) 꽤 뜨거운 볕에 뱃속은 더부룩, 초반 컨디션이 아주 바닥이다. 처음부터 긴 오르막이라는 생각에 겁먹은 거지.  멍청하게 무턱대고 밥을 먹을 게 아니라 뱃속을 비운채로 당만 보충하고 가볍게 출발했어야 했다. 어쨌든 기껏 골라 찾아 간 식당은 실패. 그러니 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고를 일은 아니다. 밥은 정말 맛이 없었고 주인 영감의 불친절에 기분까지 잡쳤음. 콧구녕만 한 식당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고 홀대거기다가 나는 집밥 같은 밥을 원했는데 이보시오 영감님 그래도 이건 너무 집밥이잖아. (이 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밥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대개 우리가 식당에서 기대하는 집밥 같은 밥은 형태는 집밥이되  맛과 간의 균형이 잘 잡힌 솜씨 좋은 손맛으로 지은, 심지어 깨끗하고 정갈한 밥과 반찬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의 밥은 정말 지나치게 집밥이었다. 저그 집에서 대충 차려먹는 집밥.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조미료를 갖다 부어도 좋고 양념을 처발라도 좋으니 밥은 제발 좀 먹을만하게 만들어 달라고! 아침 부터 개 짜증이다.) 오죽하면 내가 밥을 남겼을까! (나는 잘 먹는다. 어지간만 하다면 집에서건 밖에서건 밥을 잘 안남긴다.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먹는다.)
심지어 옆자리 손님 셋은 아침부터 술판 벌여놓고(소주 빈병이 벌써 여러병) 씨근거리며 떠들고 주인 영감은 손님 더 받기 싫다는 건지 사람들 밥 먹고 있는데 안에서 문걸어 잠그는 괴상한 짓까지. 세상에 하다하다 주인이 진상인 식당도 있네.
그런데 밥값 낼려고 보니 카드가 없어요.. 카드 지갑 안에는 잔액도 없는 체크카드만 덜렁. 설상가상. 아마도 어제 집앞 한강마트 갔다가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듯.ㅜㅜ. 심지어 식탁에 앉았을 때 폰을 꺼냈더니 배터리 부족이네?. 이건 또 뭐야. (나중에 보니 자동차에 충전 케이블 불량. 엎친데 덮치고 자빠지고... ㅜㅜ)   

고한역에서 출발해서 만항재 정상까지 네비상으로 50분 나오길래 넉넉하게 1시간 잡았는데 폰 충전하느라 차 공회전 시켜놓고 몇십 분,  카메라 안 갖고 출발해서 다시 빠꾸, 좀처럼 컨디션이 오르지를 않아서 시간 지체로 또 몇십 분,  만항재 도착해 보니 1210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11시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곳곳에서 덜거덕 삐그덕. 

운탄고도 가세요?’ 친구들과 여럿이서 로드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 그렇다니까 부럽단다. 자기도 산악자전거로 한 번 탔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러게 나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나도 초행길이라 해 줄 말이 별로 없다오

조심하세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만나면 다들 하는 인사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보면 더러 다치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런 인사는 진심이다. 산악보다는 로드가 사고는 크게 난다. 산악자전거가 자주 처박히고 넘어지고 많이 다칠 것 같지만 로드는 사고가 나면 무섭게 난다. 산악자전거는 산에서 속도가 나봤자지만 로드는 내리막에서 속도 붙으면 거의 5, 60이다. 그 정도 속도에서 낙차하는 순간 아스팔트에서 맨 몸으로 이 속도를 다 받아내야 한다. 꽤 오래 전 어느 해 겨울에 역시 자전거를 좋아하던 친구와 같이 로드 사이클로 장거리 라이딩을 하다가 친구가 낙차를 하면서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기도 하다. 거기다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라서 자동차랑 엮이는 사고도 더러 생긴다. 그저 오버 페이스 하지 말고 조심조심 산악이나 로드나 다치지 않고 오래 타야지.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속도가 있어서 무섭다.

운탄고도는 예상보다 노면이 거칠다. 부분부분 낙차하면 데미지가 꽤 있을 것 같은 굵은 파쇄석들이 깔려 있는 구간도 많고 비가 많이 왔었는지 얕은 물골들도 있어서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으니 오히려 웬만한 싱글보다 좀 더 긴장된다. 그런 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돌 하나 잘못 밟으면 그냥 슬립이니까. 경사각이 꽤 부담스러운 업힐도 중간중간 섞여 있다. 결국 화절령에서 체력 압박으로 잠시 멈춰서 사북으로 그만 내려갈까 갈등도 했다. 아니, 맨 다운힐이라 그러드만 가끔씩 섞여있는 업힐도 이거 꽤 만만찮구만? 평면 지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복병처럼 나타나는  업 다운들.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포기하면 언제 다시 올라고 어쩌구 셀프 가스라이팅 시전....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맞아. 거기서 자존심 접고 중도 포기했어야 했어.

도롱이 연못 앞 개활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화절령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체력보다는 시간이 더 문제였다. (시간 계산 오류는 중대한 문제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시간 계산을 한 거냐.) 오늘 만난 여러 명의 머피 중에 가장 큰 녀석이었다.

계획상으로는,

14:00 예미역 도착 소요시간 3시간 예정

14:56 기차로 고한역으로 출발

17:00쯤 차를 갖고 다시 예미역 도착해서 자전거 싣고 속초로 출발. 가는 길에 경로를 건의령 쪽으로 해서 해 지는 건의령을 그윽하게 감상하고 강릉에서 곰치국으로 저녁 먹고 속초로 갈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 때쯤 기차에 타고 있어야 할 나는 오후 네시가 넘도록 아직도 운탄고도 위에서 자전거로 죽어라 다운힐 중이었다.

사족:/새비재를 넘고 나서 계속되는 마지막 콘크리트 포장 길은 좀 별로였다. 차라리 비포장 임도면 재미라도 있지 브레이크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급경사각의 어정쩡한 포장도로. 나중에는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길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함백역이라는 낯선 이정표. 내 계획에는 함백역이라는 지명이 없었는데? 왜 예미역은 안 나타나고 함백역이지? 어쨌든 운치 없고 무지막지한 다운힐 끝에 드디어 16:20분쯤 함백에 도착했다. 그리고 함백역을 찾았지만 정작 동네에는 함백역이라는 이정표는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른단다. 이건 뭔 말이지?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길 건너 지나가는 학생(으로 보였음): 몰라요. 여기는 역 없어요.  (뭔 말이야, 오는 내내 본 이정표가 몇 갠데.)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지나가는 아저씨: 아, 저는 여기 안 살지만 검색해 볼께요.(정말 친절한 사람.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색은 실패 )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다리를 건너가던 할머니: 그기... 함백역은 인자는 역이 안 해요.. (^^. 할머니들의 화법은 재미있다.) 기차 탈라믄 저만치 내려가서 예미역으로 가야 돼요. 한 참 가야 돼요.

드디어 예미역이 등장했다. 그리고 함백역은 있었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었다는 것을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알았다. 그러나 마나 결국 플랜B였던 16:08분 기차도 놓쳤다. 예미역에서 고한역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는.

12:22
14:56 플랜A
16:08 플랜B
21:51
다음 기차는 21:51  6시간 가까이 남았다. 나는 왜 이 다음 기차가 오후 여섯시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낭패가 없다. 숙소까지는 언제 들어가나. 이대로라면 새벽 두세시가 돼서야 속초 도착이다. 멘탈이 바삭바삭 깨져 나간다.

버스는 없어요? 동네 가게에 물어봤더니  함백에서 고한가는 버스는 아침 시간에 하루 한 번. 이제 없다는데. 아니, 도대체.... 듣자하니 정선군에서는 예미리를 MTB마을로 조성해서 라이더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그렇게 지역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어쩌고 그러드만 정작 와보니 문 닫고 영업도 안하는 썰렁한 MTB호스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던 자전거족, 버스도 없고 기차도 없고...
한 이삼십분 갖은 궁리를 하다가 별수 없다, 자전거로 꼬인 것은 자전거로 풀자. 결국 자전거로 고한 까지 되돌아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30Km 자전거로는 2시간 쯤. 국도를 타고 우회할 생각이라 이미 체력이 바닥인 점을 감안해서 예상 시간 2시간 반을 잡았다. 흠, 늦어도 저녁 7시 8시 전후면 도착하겠군. 도대체 다음 기차가 밤 열시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문제는 이미 좀 늦은 시간인데다가 남은 배터리가 30%라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불안한 상태. 도중에 배터리 나가면 20Kg쯤 되는 전기 산악자전거를 인력으로 밟고 가는 중노동 예약이다(...). 초반 10Km 가까운 오르막을 배터리 아낄려고 1단으로만 주행했다. 미련 곰탱이. 아마 이 때 그나마 남은 체력을 거의 소진해버린 것 같다. 체력과 배터리 잔량의 등가 교환이냐. 그나마 기 쎈 오르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끌바로 걸었다. 그러니 예상보다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민둥산역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야간 라이딩은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라이트 안 챙김. 후미등도 없음. 믿을 건 바지 뒤쪽에 달린 야간 반사 띠 두 줄. 완전 스텔스 자전거로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특히 터널 안은 극한 체험이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는 거의 미사일 지나가는 소리처럼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 사북 가까이 쯤 왔을 때  자전거 배터리가 꺼졌다. 이제 망한거다. 20키로짜리 전기자전거는 동력이 끊어지자 천근만근이다. 자전거의 무게는 물론이고 체인으로 연결된 모터 기어까지 순전히 다리 힘으로 돌려야 한다. 되로 받고 말로 내 주는 느낌.
그 와중에 꼬맹이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꼬맹이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아빠 강원도 또 갔네? 자전거 타러 왔지롱. 뭐 어쩌고 잠깐 통화하다가 아빠 지금 자전거 타는 중이라 급한 일 아니면 좀 있다 전화하께’. 그리고 잠시 후에 폰 배터리 아웃. 애초에 출발 할 때 40% 충전이었으니 여태 버틴 것만도 다행이지. 아무튼 동력 끊기고 네비까지 먹통이다. 길 잃음. 두 번 잃음. 아니, 조금 전에 표지판에 고한까지  2Km 이드만 가도가도 끝이 없네. (이 때 사실 고한 시내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방향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집에 돌아와서 지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낮이면 방향이라도 가늠이 되겠지만 해는 지고 깜깜한데 동서남북이 오리무중. 도무지 분간이 안 됨. 생판 처음 온 동네에서 제대로 멘탈 털리고. 탈진. 거기다가 길 물어본 택시기사는 뭔 길을 그 따위로 알려주냐..왼쪽 길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꺾었어야 했잖아!! 그 양반 운전하는 사람 맞나? 여하튼 배터리 나간 자전거를 맨다리로 밟으면서 네비도 없이 물어물어 간신히 밤 9:30분에 고한역 주차장에 삭은 미역 꼴로 기진맥진 도착. 헤이, 7, 8시면 도착하겠다더니? 내 고집과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차라리 혼자서 야간 등반을 하는 게 백번 낫지. ..........아니야, 그래도 21:51분 기차를 탔으면 아직 도착도 안했을 거야! (오늘 촬영한 본격 원 테이크 영화 정신승리. 후회는 없다내가 주인공이다.)

자전거를 차 뒤에 달고 운전석에 앉는데 온몸의 감각이 어색하다. 늘 앉던 운전석이 뭔가 불편해서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도 세워 보고... 하루 종일 거의 열 시간을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있어서 그런가 보다. 손 발 허리 어깨 목은 물론이고 엉덩이는 거의 짓무를 지경이다. 저녁으로 곰치국을 먹겠다고?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태백에서 동해로 넘어가 동해시를 지나는 어느 길목에서 초코바 두 개를 샀다. 곰치국은 어딜 가고 초코바 두 개라니... .ㅜ  하지만 이제는 고속도로에 올라서 차로 달리기만 하면 되지. 얼추 시간을 보니 자정 전에는 도착하겠구만. 역시 그 막차를 안타기를 잘했어. ....@..@

그리고 아마도 동해에서 강릉 어느 사이쯤 되었을 듯. 운전 중에 언뜻 룸미러를 보는데, 어라? 자전거가 안 보이네? 후미형 캐리어라 항상 뒷유리 쪽이 가려져서 불편했는데 뒷유리가 훤하다.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쓸고 지나갔다. 만약 자전거를 어디엔가 흘려버렸다면, 그리고 혹시 오밤중에 다른 차가 길바닥에 떨어진 자전거를 못 피하고 사고라도 난다면.... 진짜 식은땀이 뭔지 알겠더라. 강릉 근처 어느 나들목 근처 갓길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세상에, 뒷바퀴를 묶은 벨트가 끊어져서 뒷바퀴가 캐리어 밑으로 빠지는 바람에 프레임을 잡고 있던 클립이 무게를 못이겨서 놓쳐버린 듯. 앞바퀴만 벨트에 묶여서 자전거는 차 뒤에 매달려서 질질 끌려오고 있었더라. -니가 무슨 헥토르냐. 한 일 이십 분쯤 그리 끌려 온 듯. 핸들 바 왼쪽이 그립 채로 갈려나가고 안장도 칼로 자른 듯이 갈려 나갔다. 뒷바퀴는 왼쪽 사이드블럭 깍두기가 다 닳아서 짝짝이가 되어있었다. 핸들바도 안장도  시속 100키로로 아스팔트 바닥에 갈면서 끌려왔으니 칼로 자른 듯 매끈하게 잘 갈렸더라. 심지어 안장은 가죽 리폼 한 뒤 첫 라이딩이었다고. 리폼한 보람도 없이 결국 장렬하게 전사 해버린 셀레 스트라토스... ㅜ.ㅜ (이 모든 사태 파악은 다음 날 아침 숙소 주차장에 내려가 보고서야 알게 됐음. 밤중에 자전거 올려 싣고 오기도 정신 없었다니까.) 자전거야 형편없이 상해버렸지만 그래도 앞바퀴 벨트라도 묶여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십년감수. 모골이 송연.

이 사태의 원흉. 끊어진 뒷바퀴쪽 고정 벨트
칼로 자른 듯 갈려나간 안장. 가죽 리폼 한지 며칠도 안됐는데. ㅜㅜ
역시 갈려 나간 왼쪽 그립. 핸들바도 5센치 정도 같이 갈려나갔다.
양쪽 비교. 오른쪽처럼 생긴 그립이었다.

되짚어 생각해보니 그 전에 차가 한 번 좀 다른 느낌으로 꿀렁거리기는 했었다. 그래도 설마 상상이나 했겠냐고. 단순히 길이 꿀렁거렸나보다 별생각 없이 계속 달렸는데 아마 그때 떨어진 게 아닐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하나가 번쩍번쩍 뒤에 와서 서더니 마이크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대충 들어보니 고속도로에서 서 있지 말고 나가서 정리하라는 말 같더라. 아니, 떨어진 자전거를 다시 올려야 나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수습하고 있는 사람한테 뭔 씨도 안 먹힐 잔소리를. 신경질이 나서 개 소리 할 거면 그냥 갈 길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는데 아마 안 들렸지 싶다. 문 닫고 앉아서 나와보지도 않더라니까. 그 정도면 순찰대가 그냥 야매로 순찰하는 거 아니냐?

아무튼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맥주 한 캔과 와사비 아몬드로 오늘을 기념하고 곯아떨어져 버렸지........... 이걸 계획이라고 세운거냐? 나는 오늘부터 J가 아닌 거다. ㅜㅜ

자정쯤 도착했더니 호스텔 주인장은 이렇게 쪽지와 키만 남겨놨더라. .

그래 뭐,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비록 자전거는 망가졌지만 몸은 조금 피로할 뿐 무너진 곳은 없으니까. 안장이고 핸들바고 그립에 타이어에 또 어디가 어떻게 됐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단골 바이크 샵 사장님이 다 해결 해 줄테니까. 그래서 부서진 건 새로 갈아끼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돈 만 좀 더 들면 되니까...  돈 만 .......... ㅜ.ㅜ  ...... 그래서 이딴 무용담을 자랑삼아 떠들고 있으니까.                   

그래 뭐, 사고 안났고 몸 안다쳤고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 뭐,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뭐.

, 그래서 오늘 만난 머피는 모두 몇 명이었지? 그놈의 징글징글한 머피들은 어디 숨어있다 오늘 죄다 기어 나온 건지 입이 있으면 한 번 말해봐라. 여하튼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날이었다. 기념일로 지정해야지. 데이 오브 데이 오브 데이오브 데이....

(사족/ 편의점 맥주 가격 유감. 네 개를 사면 12000원인데 하나만 살라면 4500. 무슨 가격정책이 그 모양이야. 솔직히 네 캔을 안 살 수가 없잖아! 이건 아닌 척 하면서 거의 강매 수준... 맥주 과소비를 조장하는 편의점 가격정책을 규탄한다!!!)

 

내 일생의 음식은 동태탕이다. 생태탕도 괜찮고 대구탕도 좋지만 굳이 꼽으라면 동태탕이다. 

80년대 어느 해 아마도 초봄이었을 것이다. 김포반도 어디쯤에서 철야 행군을 하고 있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는 있었지만 밤 새 비가 내렸고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와 비바람으로 군화 속도 축축했다. 식사추진이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전날 저녁밥도 못먹고 건빵과 건빵 봉지에 포함된 라면 스프를 찍어먹으면서 허기를 때우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은 물론 속도 쓰리고 배고픔과 추위와 군대라는 이것저것 억눌린 짜증때문에  많이 지치고 우울해져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여전히 깜깜했지만 아마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넓은 벌판의 논두렁길을 지나서 작은 동네를 빠져나갈 때 코 끝으로 동태찌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순간 총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길가의 작은 창문이 처마 밑에 노랗게 불이 켜진 채로 살짝 열려 있었고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음식에 관한 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만큼 강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할 수만 있다면 대열을 이탈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 구걸이라도 하고싶었다. 그 황홀한 동태찌개 냄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열은 계속 이동중이었고 허락 없이 대열을 이탈할 수도 없었고 허락을 해 줄리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음식 한 그릇이 내 자존감을 흔들어버릴만큼 강렬한 충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딱 말 그대로 '구걸을 해서라도 먹고싶었다'. 하지만 시커먼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인정머리 없는 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져 터벅터벅 그 마을을 지나 또 다른 깜깜한 벌판으로 이어졌고 나의 눈물어린 동태탕은 그렇게 허무하게 멀어져 갔다. 기구한 사연도 없고 대단한 서사도 없다.  그 동태탕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이게 다다.

입대 전에도 동태탕을 좋아했냐고?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동태탕이라고해서 자주 먹지도 못했거니와 별로 기억에 남는 음식도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찌개 중의 하나였을 뿐. 오로지 그날 새벽 그 마을에서 누군가가 끓이고 있던 동태탕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밤 새 걸었던 배고픔과 건빵이 만들어 낸 속쓰림과 춥고 질퍽거리던 날씨와 수면 부족과 비바람과 어깨를 파고들던 군장의 무게와 등등 그런 저런 것들이 동태찌개 냄새 하나에 모조리 매몰되어 내 후각세포에 어마어마한 각인을 새겨버린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동태탕을 숭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태탕은 내게 구원의 음식이 되었고 주야장창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동태탕 찬가를 불러댔다. 물론 좀 더 선도가 좋은 생태탕이나 대구탕도 좋아하지만 내게는 단지 동태탕의 아류일 뿐이야. 그 때의 기억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동태탕을 넘어설 수는 없어. 그리고 그 맛을 불문하고 그것이 동태탕이면 한 수 접고 닥치는대로 잘 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없어서 먹다가 말고 숟가락을 놓아버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나의 동태탕에 관한 장황한 무용담을 들은 어느 지인이 그렇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아주 기막힌 동태탕 집을 소개해주겠다면서 가르쳐 준 7번 국도변의 어느 휴게소에 있는 식당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죄악(罪惡)이었다. 세상에 동태탕을 맛없게 만들 수가 있다니! 나는 결국 구원의 음식이던 동태탕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았고 식당을 나서던 나는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그 지인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식당의 주방장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퍼부었다.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동태탕을 맛 없게 만들 수 있다니!! 도대체 어디가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쨌든 동태탕은 지금까지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봄이 되기 전에 몇 번은 더 먹어야하는 음식이 되었고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에 동태탕이 있으면 다른 걸 먹더라도 괜히 한번쯤은 갈등을 한다. 한 때 구내식당처럼 친구들과 수시로 드나들면서 먹었던 포항 흥해읍의 한선뚝배기. 정말 맛있었는데 한 동안 뜸하다가 찾았더니 그 새 어디론가 이사 가버리셨드만. 많이 아쉬웠다. 나는 지금도 동태탕을 만들때면 그 한선뚝배기집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을 기준으로해서 만든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동태탕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지만.

 

 1. 나는 혼자서 배낭 짊어지고 긴 시간 산길이나 들길을 터벅터벅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좋긴하지만 오르고 난 뒤의 지루한 걷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산에 올랐다고 만세 부르고 앉아 놀다가 내려가는 건 재미 없어. 산에 올랐으면 걸어야지. 가능하면 해가 지도록 하염없이 걷는 게 좋아. 숲길을 걷는 것도 좋고 관목대나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은 더 좋아. 딱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전부터 나는 그런 길이 좋아. 신불산 넘어서 영축산 가는 능선길같은 산인듯 들판인듯 황무지같은 느낌.

걷다가 쉬다가 때로는 우두커니 먼 산 바라보면서 생각을 되작거리는 것도 좋고. 봄 가을 평일 산행이면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막막할 정도로 조용한 능선에서 선듯한 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보다 더한 도락이 또 있을까 싶기도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드문 드문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초코바나 양갱을 까 먹는 것도 맛있고 재미있고.

억새가 필 때쯤 되면 혼자 사자평에서 노닥거리다가 산에 기대어서 잠깐씩 졸기도 하고 어느 귀퉁이에서 얼핏 잠이 들었다가 어스럼 저녁 나절에 깨어나 앗차, 늦었구나 귀신 쫓아올라 허둥지둥  바쁜 하산길도 짜릿하지. 그런데 예전에는 멧돼지며 곰이며 들개같은 무서운 짐승들이 없었는데 요즘은 그런 짐승들이 좀 무섭긴 하더라.

지금은 젊었을 때처럼 몸을 생각대로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못쓰게 될까 겁나서 욕심껏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내 몸뚱이보다 더 뚱뚱한 박배낭을 짊어지고 몇 박이고 지리산을 혼자 헤메고 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 밤길에 길을 잃어서 어디쯤인지 짐작도 못할 깊은 산골짜기에 고립된 채로 비박을 하고 다음날 아주 거러지 꼴이 돼서 겨우 하산 한 일도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아, 그때 어쩌면 잘못될 수도 있었구나 싶기도 한데 운이 좋았는지 객기 왕성한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그리 무섭지도 걱정되지도 않았었다. 그 때는 휴대폰도 없던 때고 산악 구조대나 119 구조대도 없었으니 혹시라도 일이 꼬일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다행히 친구 중에 프로 산악인이 있어서 평소에 얻어 들은 잡지식을 탈출 할 때 좀 써 먹긴 했는데 어쨌든 앞뒤 없이 나대고 다니다가 자칫했으면 험한 꼴 볼 뻔 했었다.

지금도 날씨가 그럴듯하면 하루 산행을 하고 싶어서 옷장 속에 있는 배낭이며 장비들을 뒤적거려보기도 하지만 사실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져서 큰 배낭들을 이고지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이제 큰 것들은 당근에다 팔아먹어야 하나 어쩌나 궁리를 하고 있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 선뜻 그러지는 못하지만. 욕심은 한보따리인데 가진 몸이 점점 부실해지니 옳은 생각을 못하고 다른 데다 핑게를 갖다 씌울까 생각도 한다. 예를 들면 '저 신발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만 더 다닐까'  따위의 시한부 핑게.

2.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한 때 잠깐이나마 로드 사이클 선수가 되었었는데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로드 사이클의 속도감에 중독되어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달리다보니 어쩌다 남보다는 조금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던 거지 그다지 자랑할만한 실력은 아닌 걸로.  자랑할 만한 실력이었다면 팔뚝에 태극기 달고 깃발 날렸겠지.

그 다음에 빠져든 것이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 한참 인기 있는 픽시. '후미기리'라는 물건이었는데 고정식 뒷기어를 그렇게 불렀다. 일본어 느낌이니 일본어겠거니 하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하여튼 앞 44, 뒤 14. 당시에 트랙 경기에 쓰이던 기어비인데 꽤 매력적인 자전거였다. 그 매력을 알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왜 픽시에 열광하는지 이해하는 편이다. 요즘 픽시는 디자인도 아주 세련됐드만.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픽시는 좀 위험하기는 하다. 최소한 브레이크는 달고 다니자.

한동안 픽시를 타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핸들을 개조해서 산으로 끌고 올라갔었지. 아주 열악한 자전거였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된 산악 주행을 한 것은 아니었고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정도로 흉내만 낸 정도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그래블 바이크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핸들은 험로에서의 조향때문에 드롭바와 플랫바를 이중으로 묶은 형태로 개조했었다. 기괴한 조합의 자전거였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산에서 자전거를 타 본 1세대 쯤은 되지 않을까싶다.ㅋ. 물론 지금은 제대로 산악 인증을 받은 산악자전거를 갖고 산으로 올라간다. 가슴이 바싹바싹 타버려 죽을 것 같이 숨가쁜 업힐 뒤에 가파른 산길을 거칠게 내려 꽂는 그 미친 희열을 맛볼라고. 그러다가 날아가고 넘어지고 처박히는 것도 괜찮아. 그러다가 가끔은 다치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오는 변태적인 쾌감도 있지. 나 살아있네? 이런 느낌인거. 하지만 깊은 상처나 골절은 오래가기는 하더라. 나이 들 수록 회복이 더디더라고. 

내 자전거들. 빨간 건 하드테일. 산도 타고 길도 타고 장도 보러가는 다목적용. 안쪽의 노란 바퀴는 풀샥. 주로 좀 더 거친 산길을 탈 때. 장비 욕심이 있는 편이라 항상 제대로 갖추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려고 하는 편이다. 언제 불쑥 나가고싶을지 몰라서 정비는 늘 잘 되어있음.. // 장비욕심에 대한 첨언- 하고싶을 때 즉시 시작 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 항상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욕심에 더 가깝다. 내 욕구 충족을 위한 필요에 의해서다. 물론 등급이 높을 수록 신뢰성도 더 높고 더 멋지고 항상성 또한 유리하기는 하다. 역시 물욕인가? ㅡ.ㅡ

 가끔은 그 '죽을 것 같은 업힐'을 하다보면 어라? 숨이 잘 안쉬어지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겁도 난다. 그러니 어지간 할 때 적당히 해라.. 내 허벅지며 종아리 곳곳에는 찍히고 긁힌 흉터가 몇 개씩 있고 몇 년 전에 다친 양쪽 엄지는 지금도 조금 불편해. 오른 손은 산에서 로프 타다가, 왼 손은 자전거로 산 타다가 다쳤지. 이런 저런 소소한 부상으로 병원 출입도 꽤 했네. 나이 많이 들기 전에 몸은 좀 아끼는 게 좋아. 돌아보면 몸을 너무 함부로 써서 후회되는 게 몇 개 있어.

3. 나는 집을 떠나 멀리 낯 선 곳에서 길을 찾아 헤메고 두리번 거리는 것도 좋고  밤이 깊도록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가 모텔 방 못구하면 차 세워두고 아무데서나 침낭 깔고 별 보고 잘 줄도 알아. 요즘은 늦은 나이에 스포츠카를 하나 구해서 잘 타고 다니는데. 고속도로며 국도며 가리지 않고 창문 다 열고 천장까지 열어놓고 달리는 차 소리 바람소리 음악소리가 난리법석으로 미쳐 날뛰는 중에 오페라 아리아 따위를 고래고래 따라부르면서 달리면 기분이 꽤 그럴 듯 해. 아주 혼자서 영화를 찍는 거지. 누가 본다면 깜짝이야 웬 미친놈이냐 욕바가지를 하겠지만 그럴리가. 누가 일부러 창문 열고 내 노래소리를 들을 리는 없잖아? 눈에 띄는 빨간차에다 자전거까지 달고 다니니 간혹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뭐 어때, 민폐만 아니면 되지. 그렇다고 일부러 빨간 차를 고른 건 아니야. 처음에는 까만 걸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내가 유리하게 고를 수 있는 색이 하필 빨간 색이라고 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지. 그래 뭐, 본의 아니게 유독 눈에 잘 띄게는 생겼다. 온 세상에 널린 것이 CCTV에 블랙박스에 ... 수틀리면 '아니, 아까 그 자전거 달고 있는 빨간차' , 그러면 오도가도 못하고 박제 되는 거지.

자전거는 왜 달고 다니냐고? 이거 여행 스타일에 따라서는 정말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아이템임. 나는 없으면 많이 아쉬워. 전에는 앞바퀴를 떼고 안에 실을 수도 있었는데 차를 바꾸고 나서는 못실어. 뒤에다 달고 다니지. 그러게 뒷자리는 좁아터져서 자전거는 커녕 사람도 못태울 엉터리에 승차감도 딱딱해서 못쓰겠더라고? 알고 샀어. 그냥 예뻐서 산 거야. 좀 비싼 장난감으로. 성능이나 뭐 그런 건 사실 잘 몰라.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뭐. 때려 밟아보니까 겁나게 튀어나가기는 하더라. 그런데 딸들은 좀 불만이기는 해. 아빠 차 샀다 그랬을때는 예쁘다고 좋아라 하더니 뒤에 한 번 타 보고는 입이 댓발 나와서 다시는 안탄다는데! 천장이 낮아서 몸이 다 구겨진다나. ㅋㅋ  하여튼 뭐가 어찌됐든 각설하고 그렇게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야.

4. 그렇긴 한데 문제가 있지. 항상 발이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거. 나는 그게 어디든 바닥을 딛고 있어야 안심이거든. 그러게 내가 내 욕망을 채워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뒷덜미를 잡고 있으니 억울하긴 한데 아니 이게 참 방법이 없네. 북한이 열리고 압록강을 자동차나 기차로 넘어가지 못하면 나는 이 나라를 벗어날 재주가 없다는 거야. 심지어 그 살벌한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면서도 줄타기까지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쫓겨서 했었지만 맨몸으로 십 몇미터짜리 고공사다리를 오르는 코스는 죽어도 못하겠더라. 정말 죽는 게 낫지 안되겠더라고. 그 지랄맞던 유격 조교들이 겁도 없이 뻗대는 꼴등병때매 눈이 핑 돌아서 미쳐 날뛰고 욕하고 굴리고 협박해도 그래 그냥 날 죽이는 편이 빠를거다 하고 버티고 안 올라갔어. 결국에는 조교들도 개새끼 소새끼 욕하다가 포기하드만.

맞아. 높은 곳을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은 몸에 많이 해로운 일이야. 발은 땅에 딱 붙이고 있어야 돼. 진짜 높은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몸은 편안한 방구석에 앉아 있는데 시각적인 느낌만으로도 그게 반응이 온다니까. 언젠가는 TV 에서 중국 화산 장공잔도길에 빽빽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여 주는데 그냥 실시간으로 욕이 튀어나왔어. 그게 대체 무슨 짓들이야. 그 뿐이냐, 패러글라이딩 윙슈트 스카이 다이빙 짚라인 번지점프 등등... 이런 걸 재미있다고 제 돈 써가면서.. 정말 대체 뭔 짓이냐고. 심지어 그러다가 떨어져 죽기까지도 하네? 그래 뭐, 그런 것들은 그래도 명색이 스포츠고 놀이 기구라고 쳐. 굳이 따지자면 산악자전거 타다가 죽는 사람도 있기는 있으니까. 그런데 루프타핑같은 건 대체 왜 그러는거야? 벼랑 끝이고 고층 건물 옥상 끄트머리에 그 맨손으로 매달려서 턱걸이는 왜 하며  물구나무를 서는 이유는 뭘까? 죽음을 무릅쓰고 하는 행동들이니만큼 내가 모르는 무슨 철학적 사회적인 동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조회수때문에?

내사 돈 싸들고 와서 부디 가 주십사 한다 해도 어디 근처라도 가까이 가 볼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의미도 없지만 어떤 악당이 쳐들어와서 너 총 맞을래 저거 탈래 협박하면 어쩌면 짚라인 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진짜로 루프타핑 하라면 총 맞고 말지... 말 나온 김에 굳이 그.. 줄 세워 보자면 케이블카-짚라인-패러글라이딩-스카이다이빙-비행기-페루 와이나픽추나 화산 장공잔도 등 그런 길같지 않은 길들-번지점프-윙슈트-프리솔로-루프타핑 .. 대충 그러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이 케이블카 정도라니까. 그것도 어지간만하면 안타고 싶지. 얼마 전에도 삼천포 갔다가 케이블카 타기 싫어서 땀을 한 바가지나 쏟으면서 한시간을 걸어 올라갔다고.

 //고소공포증 [acrophob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높은 장소에 대해 국한된 공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공포는 지나치거나(지나치게?) 비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이 유발된다. 높은 곳에 가면 예외 없이 즉각적인 불안 반응이 나타나고, 심하면 공황발작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환자 본인은 이러한 공포가 너무 지나치거나(지나치게 가 맞겠지?) 비합리적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이나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이다.// 네이버에서 긁어왔는데 괄호 속은 '지나치게'가 맞는 거 같음. 그런데 나더러 환자래. ㅜㅜ 정신병증의 하나라는데..

어떤 사람은 아니, 높은 데를 못간다면서 그럼 산은 또 어떻게 올라가냐고 묻던데 그런 상상력이 부족한 질문은 뭐냐. 여기서  '고소(高所)'라는 것은 해발고도를 말하는게 아니고 단 몇 미터정도라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추락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하는 거라고. 아크로포비아(acrophobia). 그러니까  acro(선단, 말단, 잘린 곳의 정점 뭐 이런 뜻)에 대한 phobia(공포) 인데 이게 고소공포증보다는 오히려 맞는 표현이지. 막연히 단순한 높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해발 천미터 이천미터 이런 산꼭대기는 하나도 안무서워.

억산 944
천황산 1189

막 뛰어 다닐 수도 있고 1915 지리산 천왕봉에서 물구나무를 설 수도 있어. 하지만 건물 옥상 가장자리는 삼층 사층만 돼도 아뜩한  거지. 이거 말이 쉽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느낌인지도 모를 걸. 정말 허리 아래쪽으로 일순간에 피가 싹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야. 겁먹거나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몸이 반응하는 거야. 공포는 겁이 많거나  담력 뭐 이런거 하고는 다른 이야기라니까. 뭐 떨어져 죽을까봐 무섭고 어쩌고 이게 아니라  위치를 인지하는 순간 즉시 몸이 얼어서 굳어버리는 거라고. 산에 미쳐서 돌아다닐 때도 나름 관록의 산싸나희라고 온갖 개폼은 잡고 다니다가 그놈의 신불산 칼바위 한 번 지나가보려다가 발 밑의 절벽을 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돌아서서 말 그대로 엉금엉금 기었었다니까.

신불산 공룡능선 칼바위

아니야. 사실은 기지도 못하고 주저앉은채로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내려왔어. 정말 모양빠지던 날이었지. 그나마 궂은 날이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 뒤에서 칼바위를 지나가려고 기다리던 젊은 커플은 진귀한 구경을 했지. 아니, 저 사람은 걸어가더니 기어서 돌아나오네? 뭐, 그 때도 이미 가오가 몸을 지배할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얼굴은 스카프로 가리고 있었으니까. 혹 그렇다해도 언제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하니 에라 모르겠다 얼굴에 철판 깔고 뭉개면서 뺑소니를 쳐버린 거지. 그러게 진작에 우회로로 갈 것이지....   

5. 뭐, 당연히 고소공포증 있다고 자랑하고 뻐기는 건 아니야. 그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망하고 미안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지.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몇 번이나 제주도를 가자커니 해외여행을 가자커니 졸라대도 선뜻 확답을 못하고 있으니. 나 빼고 갔다와라 나는 괜찮노라 이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너희를 위하여 이 한 몸 살신성인의 의지로 비장한 각오로  비행기를 타는 것도 희한한 일이고...  언젠가 같이 가까운 일본이라도 갔다 오자던 어떤 친구는 위스키를 병째로 몇 병 나발 불고 술김에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거라던데 웃기기는 했지만 그건 그래도 점잖은 편이야. 우리집 큰 놈은 아빠 뒷통수를 갈겨서 기절 시킨채로 비행기에 실으면 되겠다던데. 흉악한 놈.

저것들은 고소공포증이 없나? 날개만 있으면 다 해결되나?

여행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아이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 많아요 라고 설레발을 치지만, 그래,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아니긴 한데 그걸 누가 몰라. 당연히 나도 나가고 싶지. 난들 여행이 좋아서 길거나 짧거나 틈만 나면 집 나가고 싶어서 발사심을 하는 인간인데 욕심이 없겠냐고. 나도 세상의 모든 골목을 가 보고 싶은 사람이야. 형편없는 솜씨라도 그런 별별 사진들을 내 느낌대로 내 카메라에 담아 오고싶고. 신기한 음식도 먹어보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세상도 보고싶다고.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대자연도 만나서 내가 이런 멋진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알고 싶고 내가 보고 싶은 곳을 같이 보고싶어하는 나를 닮은 사람들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을 해버린 것이지 욕심마저 없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갈 수만 있다면 가고싶은 곳이야 쌔고쌨지.

그런데 얼마전에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어. 나 어쩌면 파타고니아 갈려고. 갈 수만 있다면 말이지.  TV에서 파타고니아에 있는 스텝이라는 지형을 봤는데,  나, 거기 꼭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프랑스의 어느 가문은 그 가문 전부가 통째로 그리로 이주를 해서 정착을 했다던데! 몰라, 정작 가 보면 마음만큼 그리 좋지는 않아서 내가 이꼴을 볼라고 천리 만리를 날아왔구나 발등을 찍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북미쪽을 더러 다니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한국에서 거기 가려면 남미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네번 타야한다면서 너 가다가 죽을거야 그러던데. 그럼 나는 가면 못 돌아오는 거겠지? 아니면 죽을 날을 받아놓고 가든지..

운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 동네. 상양리? 하양리?

자식들한테 제사상 못받을까봐 걱정은 아니니까 그건 문제가 아닌데  아니, 진짜로 그럴 수도 있다니까. 할 수만 있다면 자동차 꽁무니에 자전거 얹어서 무사히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고싶지만 뭔 연륙교가 있는 곳도 아니고 있다 해도 석달 열흘 죽어라 달려야 겨우 닿을까말까한 거리라서. 게다가 어느 동네는 무시무시한 마약이며 갱단이 득시글거린다던데 가는 도중에 어느 오지에서  타이어 빵꾸라도 나버리면 카센타 찾는다고 두리번 거리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쓱싹... ㅎㅎ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아니 참, 정말 가려면 갈 수는 있겠지만 참 가능성도 희박하고 그만한 각오를 감수하고라도 가야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내 마음을 몰라. 가기는 어찌어찌 갔다 하더라도 그다음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는 어떻게 타냐고. 그래서 하다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잠깐 비치던 그 못견디게 쓸쓸하고 황량한 먼지바람불던 파타고니아 인근 동네 길가의 오두막에다 방을 하나 얻어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밥 해먹으면서 여생을 보내볼까 하고 상상인지 망상인지까지 해봤더라니까. 참, 내가 생각해도 그걸 생각이랍시고 하고 있는 건지.

몰라. 살 날이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또 모르는 일이지. 어느 날 마음이 후다닥 뒤집히면 무슨 똥배짱으로 가방 챙겨서 비행기에 덜렁 올라설지도 모르지. ...그래도 혹시 비행기는 한 번만 타고 나머지는 자동차로 가는 꼼수는 없을까? 미국에서 직선거리로 얼추 20000km... 구불텅 남미 대륙을 자동차로 냅다 달리면 하루에 이 삼백 키로... 어디보자....  안되겠다. 그냥 배 타고 가까?  

ㅋㅋ ..

지난 달 강원도 여행 마지막 행선지로 꼽았다가 시간이 꼬여서 생략했던 곳. 칠곡 가실성당.  아침부터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좀 늦었더니 도착해서 보니 주차장에 차가 한가득이다. 미사 시간에 겹쳤나보다. 그런데 세상 황량한 동네에 뭐 이런 성당이 있다고? 찾아 들어오는 길이 하도 허전해서 진심 또 길 잘 못 들었나 하고 의심했었다..

당황스러웠던 가실 성당 입구 찾기. 시가지는 커녕 맨 농장에 물류 창고에 오가는 차도 거의 없어서 길을 잘못든 줄 알았다.
길에는 인적도 없고 도로 주변도 정돈되지 않아서 어수선했음

아무튼 미사 시간에 얼쩡거리기는 좀 눈치 보이니까 낙동강 자전거길을 먼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는 걸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선물같았던 낙동강 풍경. 그리고 잘 만들어진 자전거 길. 입구 찾느라 한 이삼십분 쯤 헛걸음. 가실 성당에서 강변도로로 나와서 하류쪽으로 한 오십미터? 그 쯤에서 바로 합류할 수 있었는데 생각 없이 네비를 켰더니 상류쪽으로 한 시간을 가라네. 강이 뻔히 보이는데 자전거 길로 들어 갈 수가 없다니. 어떻게 다시 되돌아서 찾긴 했는데 이럴 때는 길 안내도 없고 참 난감하다. 

무슨 접안시설 같은데 뭔지 잘 모름. 아무튼 낙동강.

바로 그 앞의 쉼터에서 물 마시고 쉬었음.

반환점 칠곡 보. 말 많고 탈 많던 4대강 사업의 결과물. 그래서 괜히 한 번 흘겨보았는데 정작 현지 사람들은 공원 조성해 놓고 잘 즐기고 있는 듯 보여서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꽤 넓은 잔디 공원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애기들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바글바글.... 왕복 삼십여km를 아침 점심을 거른채로 달렸더니 체력도 좀 딸리고 라인을 타는 것도 서툴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렇겠지 뭐. 낙동강 자전거 길에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없지도 않았다. 드문드문 이런 저런 라이더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음. 전기 자전거로 유유자적 음악 들으면서 즐기던 사나이, 아저씨, 좀 시끄럽긴 했어요^^. 멋진 패션으로 혼자 스프린트하던 긴머리 아가씨. 헬멧이 불편한지 가다 서다 고쳐 쓰던 아주머니, 거의 선수급으로 스퍼트 하던 로드 사이클 친구들,  그래블 바이크에 커다란 가방을 양쪽으로 달고 종주 중인 듯 보이던 외국인 커플, 심지어 블레이드를 타고 나온 젊은 친구도 있었다. 미니 벨로 비슷한 자전거로 유쾌하게 안뇽하쎄요 인사하던 외국인 친구들도 있었고. 모쪼록 자전거는 자기 페이스대로 신나게. 도로에서건 산에서건 오버페이스만 안하면 돼.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찾아 온 가실성당. 주차장의 차들이 거의 빠지고 없는 걸 보니 나이스 타이밍!

한 눈에 보아도 세월이 느껴진다. 어쩌면 세월을 버거워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음.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소박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뒤편의 소소한 부속 건물들

이게 기도실이라고? 벌칙인가? ... @..@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오! 손으로 꼼꼼하게 몇 번 덧칠한 듯한 회색 페인트의 소박한 본당 정문. 손잡이도 반들반들 옛날 동글이 황동 손잡이다. 열쇠구멍도 있었음! 성당 정문마다 걸려있던 밧줄은 종을 칠 때 쓰는 줄이겠지?

미사가 끝나고 불도 꺼져서 차분히 가라앉은 참 좋았던 본당. 기도 하는 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지만 너무 좋았던 탓에 빈 손으로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기도 중에 부시럭부시럭 죄송했습니다.  

그 와중에 노골적으로 기독교스러웠던 스테인드 글라스. 오래 된 성당에 좀 생뚱맞을 정도로 쨍한 색이었다.

안 가 본 곳은 없나? 곁눈질로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웅성웅성 인산인해.... 

텅 비었던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네 대. 천주교 성지라더니 순례자들인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빠져나왔다. 하마터면 인파에 휩쓸려다닐 뻔. 조용하고 평화로운 가실 성당을 혼자 돌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왜관 읍내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서 신호 걸린 김에 원경 하나.

옛 성당이란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꽤 기품있는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사방의 문들이 다 잠겨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었음. 낡은 문에 손잡이만 새것. 혹시나 빈 틈이 있나 기웃거려봐도 여기저기 출입문마다 그렇던데 아마도 출입을 못하게 잠궈놓기 위해 새로 설치한 듯. 내부 색유리 예쁘다고 자랑도 했드만 좀 열어놓지.... 

오래 묵은 건물들. 예쁘다.

새 건물. 말 그대로 수도원같아. 후드를 뒤집어 쓰고 헐렁하게 발목까지 내리닫이 검은 사제복을 입은 냉정한 얼굴의 과묵한 수도사같은 건물.

어느 친구가 여기서 소울 스테이를 했었노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1박 3식에 8만원, 미사 참석은 자율. 그냥 편안하게 머물다가 홀가분하게 떠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괜찮아보이기는 한데 위치가 워낙에 시내 안쪽이라 좀 번잡한 느낌.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모르지. 어느 날에 갑자기 필이 온다면야...  밥도 맛있다는데!

나오는 길에 도리사를 다시 들렀다 갈까 갈등하다가 수도원 뜰에 나란히 앉아있던 분들의 권유로 들렀던 구상 문학관. 전부터 그다지 호감이 가지는 않는 시인이어서 조금 주저했었는데 오늘 역시도 그러했다. 문학관의 벽면과 배너로 전시 해 놓았다는 건 나름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굳이 이 시인의 눈을 빌려서 세상을 보고싶은 생각이 없다. 그럴싸한 어휘들을 모아 나열해놓은 문학 동호회의 아마추어 습작들과 뭐가 다른지를 모르겠다. 뭐, 순전히 내 마음이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르시다면 당신이 옳다.   

5월 3일 예정되어있던 진주행. 때마침 전 날의 스케줄도 비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박2일이 됐다. 진주 가는 길이면 삼천포도 가야지. 어떤 유튜버가 삼천포를 소개해놨는데 아주 멋지더라니까. 내가 알던 예전의 삼천포가 아니야. 기왕에 떠나는 김에 해인사도 끼워넣었다. 진주 가는 길목에 있으니 마침 잘됐지.  코로나 전에 혼자서 다녀 왔긴 한데 남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한 번 더 가보기로. 

한적한 해인사 주차장. 이른 아침이라 차가 거의 없어서 무턱대고 맨 위 주차장까지 냅다 올라갔다가 어리둥절 다시 내려왔다. 공간 기억력은 꽤 좋은 편이라 한 번 가 본 곳은 잘 안잊어먹는데 뭔가 낯설다... 뭐지??

일주문까지 걸어 올라가다 처음 만난 선재카페. 이른 아침이라 문은 닫혔더라. 절에서 선재를 또 보네. 월정사 선재길. 해인사 선재카페. 처마가 나즈막하니 편안하다. 나중에 내려 오는 길에 막 오픈 준비를 하던 선한 얼굴의 여인네가 앉았다 가시라고 권하던데 갈길이 멀고 시간은 한정인 탓에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주문을 막아놨다. 행사 관계라니 아마 초파일 때문에 그런 듯. 가는 절 마다 알록달록 난리법석인 초파일. 얼른 지나갔으면...

그래서 옆 사진.

장경판전 오르는 계단. 나 여기 안 와본 것 같다. 이런 저런 법당이며 불상들 이런 곳들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긴가민가 그럴 수 있다해도 이런 곳은 기억 못할리가 없잖아. 그러면 그 때는 밥만 먹고 갔던 건가. 분명히 해인사 상가에서 스님 나물 비빔밥인지 산채비빔밥인지를 먹었던 기억은 분명한데. 대체 뭐지? 이 먼길을 와서 절집은 들어오지도 않고 밥만 먹고 내뺐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미스테리를 만났다. 

장경판전. 나는 처음 온 것이 분명하다. 

장경판전 뒤쪽의 법보전. 천장에 가득 매달린 이름들. 기독교 헌금 봉투에 이름 쓰는 것과 같은 것인가. 전능하신 여호와나 자비로우신 석가세존이나 여기나 저기나 어느 동네 사는 아무개라고 이름을 써 붙여놓지 않으면 누군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대비로전은 부처님이 둘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 들여다봤다가 처음보는 쌍둥이 부처님이 신기해서.

종무소로 쓰이던 사운당. 현판 첫 글자를 읽지 못해서 밖에 계시던 분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대체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눈치길래  나 참, 그래서 안에 계시던 분에게 물어봤더니 합장으로 인사 주신 다음 사운당이라 알려주시더라. 그래서 저 사字가 무슨 사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 분도 모른다고. 가만 보니 四 인가 싶기도 한데. 더 이상 물어 볼 사람이 없었음. 다들 몹시 바쁘더라니까.

---검색의 생활화  /사운당(四雲堂)/신심 깊은 불자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뜻이라는데? 해인사 사운당이라고 찾아보니 금방 나오는데? 넉四자가 맞긴 했네. 근데 왜...

일주문 맞은 편에 있던 카페 수다라. 카페 이름은 수다라인데 밖으로 들리는 음악은 페르귄트 조곡 아침(morning mood)이다. 묘하게 안어울리나 싶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절 앞에 카페라고 찬불가만 들을 수는 없잖아? 마침 화창한 아침이기도 했고. 수제 대추차가 아주 일품이라는데 혼자서 뭔.... 게다가 소생은 아직 식전이옵니다.

내용은 멧돼지인데 그림은 집돼지라 좀 웃겼다. 아무튼 와본 것도 아니고 안와본 것도 아닌 아리송한 해인사는 여기까지.  송광사, 통도사 해서 한국 삼대 사찰이라던데 느낌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더라. 그래도 팔만대장경을 본 것으로 충분했음.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 와 본 거 맞아. 이게 무슨 일이야.

삼천포 각산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 고심 끝에 선택한 휴양림 길. 그런데 휴양림 이름이 참. 그냥 산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예쁜 이름을 하나 고안하든지. 홍보를 노린 이름 같긴 한데 잘 안어울린다. 파는 상품이 '자연'휴양림인데 그 상호가 '케이블카'라면 좀 너무하잖아. 거기다가 나는 케이블카가 싫거든. ㅜㅜ

이름은 그랬어도 의외로 꽤 울창한 숲. 측백나무라던데 덩치도 제법 있고 키도 커서 숲 사이로 걷기 좋았다.

그렇지만 각산 전망대는 이리로 오르지 마시오.  다른 길이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좀 무서워도 케이블 카를 타고 가야 함.         ㅜ.ㅜ 한 시간 가까이 땀을 한 바가지 쏟음.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동해와는 많이 다른 남해. 저기 지명이 남해이기도 함.

바다와 섬과 죽방렴. 

삼천포대교. 그 옆에 메주덩어리같이 달려있는 것이 바다케이블카.

그래도 올라 와보길 잘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걸어서 오든 굴러서 오든 여긴 와봐야 한다. 남해 창선과 이어진 삼천포대교도 멋지고 섬과 섬 사이에 놓인 죽방렴들도. 죽방렴은 가까이 봐도 좋은데 이렇게 보니 더 예쁘다. 아무튼 여기는 추천.

거북선마을 쪽에서 본 서포로 가는 사천대교. 삼천포대교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만만찮다. 뻥 뚫려서 눈이 아주 시원하다. 갯벌을 못봐서 좀 섭섭했지만 괜찮아. 갯벌은 다음 기회에. 어차피 마을 안쪽에서는 무슨 경로잔치인지 뽕작이 낭자해서 들어 가 볼 엄두도 안났다. 무수히 오가면서도 멀찌기 지나치기만 하던 처음 와본 사천만. 기억에는 그냥 진삼 국도 지나치다 빛내림이 자주 보이던 동네. 좋네. 진작에 와 볼 걸.

꽤 오래 전에 진주 삼천포 국도를 지나다가 찍었던 사천만의 빛내림. 여기서 빛 내림을 자주 본 듯. 몇 번은 더 본 것 같은 기억이다.

사천만 대포항 근처. 내가 좋아하는 전봇대 풍경. ^^ 나는 하늘에 걸린 전봇대가 너무 좋아. 하늘이 예쁘면 더 좋아.

전봇대는 여기까지. 이 시간 이후로 서둘러 건너갔던 비토섬은 실패.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전혀 달라서 마음이 식어버렸음. 핫플레이스라고들 하길래 궁금했었는데 나와는 맞지 않은 듯. 나즈막한 구릉같은 섬을 기대했는데 맨 산길이드만. 두어군데 기웃거리다가 그냥 차를 돌려 나와버렸다. 듣기로는 일몰이 일품이라던데 글쎄. 물이 빠지고 갯벌이 열리면 좀 다를려나.. 어찌됐든 오늘은 틀렸다.

실안 해변에서 가까이 본 죽방렴. 좀 이른 시간이지만 낙조는 이걸로 끝. 바람도 차고 배도 고프고.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던 길. 목요일 오후 7, 8시쯤 된 시간인데... 인구도 줄고 행정구역도 달라지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알던 삼천포가 아니었다. 낮과 밤이 너무 많이 달라져버린 삼천포. 어둡고 조용하기만해서 적적하고 서글펐음. 그래도 식당은 꽤 분주했고 밥은 맛있게 먹었음.     

둘째 날. 아침 나절 자전거로 삼천포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닌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노출 걱정을 해야 하는지. 조리개 우선으로 놓아야 할 걸 밤에 쓰느라 시간 노출로 해논 걸 깜빡하고 그대로 찍어서 색이 다 날아갔다. 머릿속이 아주 삭아가는 것 같아서 참... 다 날아 간 노출을 커브를 틀어서 억지로 붙잡아 만든 사진들. 그래도 뭐 어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됐지.

삼천포항 방파제에서. 새벽 일을 끝내고 귀항하는 부부인듯.  보기 좋았다. 보기는 좋았는데 어딘지 좀 지친 모습이라.. 

늑도.  . 삼천포대교는 멋진 다리지만 직접 달리는 것 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멋지더라. 삼천포대교 중간에 교각처럼 놓여있는 섬. 

이건 대교 위로 굳이 걸어 올라가서 얻은 그림. 대교 위에서는 모자 조심. 바람에 두어번 날아갔음. 

진주로 돌아오기 전 바다 풍경이 멋지다는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는 괜찮았다. 하지만,  때때로 창에 갇힌 액자 풍경이 더 아름다운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번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도 없다. 지나치는 길에 잠시 쉬어 간다면 모를까 좋은 전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실내로 찾아 들어 가는 것은 나는 좀 아니라고...  그래도 커피는 맛있어서 쪽쪽 소리가 날 때까지 다 먹었어요. 친절한 알바생.

사천 성당. 

외관은 담백했고 예배실은 소박하다. 간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더라. 근처로 지나간다면 들러 볼만한 듯.  한옥 성당이라고 그러길래 어떤가 궁금했었는데 

이런 건물이었다.

지금도 현역으로 잘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천장에 달린 꽃 등이며 접이식 의자며 집기들이 좀... 짙은 갈색의 마루바닥에 좌식으로 보존된 묵직한 옛 건물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웠다. 뭐, 쓰는 사람 마음이지 어쩌겠냐고.

그리고 무사히 일 잘 보고 돌아왔지. 짧은 일정에 즉흥적으로 끼워넣은 좋은 여행이었다. 끝.

여섯시 반쯤 출발했다. 날씨가 걱정이다. 비 온다던데.

영주 봉화 분기점에서 빠져 태백으로 접어들 생각이었는데 정신머리는 엇다가 내다 버렸는지, 거기다가 네비는 또 왜... 돌아와서 복기해보니 아마도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야 할 걸 중부내륙으로 곧장 가버린 모양이다. 뜬금없이 동상주에서 내려 서라더니 예천 근방에서 국도며 지방도에 정체불명의 시골길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뺑뺑이를 돌았다. 안그래도 출발이 늦어서 마음이 바쁘구만 첫날부터 이게 무슨 헛발질. 혼자 툭탁거리며 겨우 태백쪽으로 길을 잡아 넛재 터널 근처를 지날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정암사. 만항재로 바로 올라가서 이 쪽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어평재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네비와 씨름을 하면서 두 번을 돌고 돈 끝에 결국 이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꼭 한 박자씩 늦는 네비. 아, 스트레스. 폰 바꿔야하는데. 태백 들머리의 주유소 아주머니 덕에 그래도 덜 헤맸음. 감사합니다.

정암사는 편안하거나 넉넉하지는 않았다. 엎친데 덮쳐서 비도 오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참이라 차분하게 둘러보지를 못하고 눈으로만 얼추 훑고 말았다. 시간은 아직 오전인데 내내 해질 무렵 같았다. 초반에 가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다닌 시간이 하루 종일 빚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산 중턱에 있다는 수마노탑은 가 볼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애기들도 우산 쓰고 엄마 손 잡고 씩씩하게 올라가드만. 마음이 옹색하니 시간도 옹색해진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다음에 다시 보자.

만항재다. 정암사를 서둘러 지나친 것도 혹시라도 비와 운무에 젖은 멋진 만항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이었는데 이게 다다. 이 사진 한 장. 그리고는 내리 안개길이다.  

건의령 길. 건의령 터널을 빠져나오자 글자 그대로 오리무중. 아무것도 안보였다. 앞 선 버스의 미등을 보고 겨우겨우 따라 내려오다 어떻게 잠깐 안개가 열리는 걸 보고 얼결에 차를 세운 뒤 하나 건진 사진. 가장 멋진 그림을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연히 만났던 어떤 여행자는 그래도 자기는 만족한다던데 아마도 생불이신듯. ㅡ.ㅡ 

아이고 아쉽다고 멱살잡고 우두커니 기다리면 안개가 비켜 준다니? 갈 길이 멀다. 안개는 볼 만큼 봤으니 갈길 가자.

대차게 비를 두들겨 맞으면서 속초에 도착. 허둥지둥 숙소에 짐을 옮겨놓고보니 막막하다. 자전거로 아야진까지 올랐다가 대포항까지 내려 온 다음 속초 시내를 여유있게 돌아 볼 생각이었지만 비 때문에 기동력이 무력해졌으니 뭐 어쩔 수 없지.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바닷가 근처라도 나가보기로. 갯배도 타 보고 예정에 없던 아바이 마을도 주섬주섬...

갯배에서 본 설악대교... 아니, 혹시 시드니니?  ...  ㅎ

설악대교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아바이 마을. 어떻게든 멀리까지 걸어 보려했지만 그게, 도보로는 뻔하지. 다리도 아프고 신발도 축축하고 억지로 다니자니 별로 재미도 없고.. 세상에, 시간 아깝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니.  청초호를 따라 조금 더 걷다가 그냥 돌아서버렸다. 준비했던 계획이 틀어지고 그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으니 플랜B를 생각해놓지 않았던 나한테 짜증이다. 뭐, 첫날부터 날씨가 배신을 할 줄 낸들 알았나. 거기다가 근처에서 먹었던 저녁밥은 딴에는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물탄 사골국.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돈은 더 받아도 좋으니 제발 밥에는 장난치지 말자... 다시는 안가야지. 투덜투덜 숙소로 돌아왔다. 되는 일이 없구나.

숙소는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숙소에 갇혔다. 더 이상 나가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철벅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신발도 젖고 양말까지 젖었다. ㅜㅜ

숙소 휴게실에 앉았더니 이제는 아예 장대비가 지붕을 때린다. 여행객들도 없는 썰렁한 휴게실에 혼자 앉아서 커피 한 잔.

그래, 뭐, 이건 운치가 없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어. 여행이 주는 이런 어정쩡한 낯 선 느낌은 좋아. 나름 애써 공간을 꾸며 놓은 호스텔 쥔장에게 감사. 힘들었던 오늘 하루 중 작은 위안이 되었어요.

둘째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장사항...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낯 선 동네의 비바람 부는 새벽 바닷가라니. 포항에도 이런 해변은 쌔고 쌨어!! 써 먹지도 못할 자전거는 대체 왜 달고 나온거야. 

그냥 이 참에 속초 일정은 다 놔버리고 다음 경로로 건너 뛸까 하고 차를 돌려 나가는데 마침 빗방울이 가늘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던 영랑호. 한 참 위축돼있던 참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호수 옆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내려서 안장을 닦았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 본다. 에잇, 또 비 쏟아지면 되돌아 오면 되지, 자포자기로 소심하게 페달을 밟는데, 손이 시리고 안개비에 옷이 좀 젖긴 했지만 꿀꿀하던 가슴 아래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렇지! 이거야! 이런 거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영랑호는 자전거로 달리기에 딱 맞춤이었고 호수는 그보다 더 좋았고 중간에 걸쳐진 꿀렁다리(꿀렁이 맞아. 출렁하고는 좀 달랐어)도 센스 만점. 흐린 하늘과 흐린 호수 사이를 예리하게 잘라 낸 공제선은 아주 멋진 시각의 쾌감. 마침 날씨 덕분인지 이른 시간 덕분인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더욱 좋았어. 좋아! 이런 거였어! 쓸모없는 자전거는 왜 달고 왔냐던 건 누구였지? 

꿀렁다리(진짜 출렁은 아님) 지금 생각하니 이것도 무슨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눈과 귀가 어느한 쪽으로 쏠려버리면 디테일은 다 놓치는 것이 내 병통인 것. 정신이 한 곳에 팔리면 텍스트는 보는둥 마는둥, 매뉴얼은 쌈싸먹고. 한 참 헛발질 한 다음에야 내가 이걸 왜 못봤지.. 맨날 이런 패턴. -- 찾아보니 영랑호수윗길 이었다. 예쁜 이름이었네. 늦게라도 모르면 물어보자. 검색의 생활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훨훨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자전거를 업고 출발 할 채비를 끝낸 까칠한 빨갱이.

괜히 뭔가 분주하고 비장해진 조수석. ㅋ

속초와 멋진 첫 인사를 나누게 해준 영랑호는 이제 안녕. 내친김에 대포항으로.

관광지도에도 떡하니 대포항전망대라고 해놨더니 어디 찾기도 힘든 구석탱이 골목길에 허접하고 꼬질꼬질한 계단.......이드만 아이고 몰라뵈었습니다. 눈맛은 제대로였네. 가까이 보는 것 보다 내려다보는 것이 백배는 더 멋진 대포항. 혹시나 하더라도 꼭 올라들 가보시기를. 이래서 풍경은 드론 샷을 못이기는 거지. 땅에 붙어서는 제아무리 앵글을 돌려봤자 항공샷을 이길 수가 없어.  

덕분에 눈이 시원해졌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대포항 전경.....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지만 그래도 전망대는 좀 정비해 두자. 속초시장님.

취미의 영역이야 문외한들이 입을 댈 일은 아니지만 비바람에 파도가 제법이라 배가 아주 곤두박질을 치드만 어디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방파제 근처에서 배회하던 낚시배 두 척. 비도 뿌리고 울렁울렁 저래서야 낚시가 되겠나 싶은데도 기를 쓰고 낚싯대 붙들고 시끌벅적.... ㅋㅋ 낚시꾼들도 참 못말리는 꾼들이야.... 

보는 순간 흠칫했던 어느 호텔 입구의 인면상. 길에다가 왜 저런 무서운 걸... ㅡ.ㅡ;

또 다른 호텔의 조형물.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래 뭐, 호텔 앞의 조형물이 심오할 필요는 없으니까...

진부령 식당. 나중에 보니 월계관까지 쓴 원조집이네. 속초를 떠나 고성으로 가는 길에 아점 먹는 중. 이 때까지 여전히 비 옴. 미시령 옛길은 아예 폐쇄 중이었고 울산 바위 역시 코끄트머리도 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내가 끓인 황태국과 맛이 똑 같아서 매우 신기했음. 뭐, 맛있었다는 이야기... @.@

 

얻어 걸린 건봉사. 화진포로 향하던 길에 휙 지나치다 '건봉사'라는 절 이름에 꽂혀서 굳이 찾아 들어간 절. 와보길 잘했어. 이건 괜찮은 촉이었어. 

특이하게 기둥이 네개인 불이문. 무슨 이름 붙은 문화재라던데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아. 내가 말을 걸고싶거나 나한테 말을 걸어오거나 한다면 나는 좋아. 그게  사람이건 귀신이건 뭣이건.

절집 구경을 다니다보면 더러 보이는 간절함들. 간절함과 욕망은 얼마만큼 다른 것일까. 큰 놈 첫 수능날 봉정사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하지만 봉정사 부처님 앞에서 비나이다 우리 새끼 만점 받게 해주십사 기도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될 일이었으면 백번 천번이라도 했겠지.

보았던 중에 가장 우아했던 진신사리탑. 부처님은 출타중인 적멸보궁.

절 입구의 멋진 소나무. 어디 세한도 속에 서 있다가 나온 듯 고졸한 느낌. 예상치 못했던  신 스틸러. 

범종각. 이 사진은 뒷산의 안개가 일 다했다.

이런 예의바른 거만한 느낌도 좋아. 오만하거나 교만하지는 않은 고집불통의 거만함. 

왜 금강산 건봉사인지는 모르겠어. 대개 그 절이 앉은 자락의 산 이름을 붙이던데 이 절이 앉은 산이름이 또 다른 금강산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그 금강산인지. 이 금강산이 그 금강산인가? 아니면 이 금강산은 그 금강산이 아닌 건지? 어쨌든 금강산이 궁금함.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 안그래도 고단한 이 나라를 아주 밑바닥까지 작살 낸 흉물들의 그렇고 그런 사적지들. 화진포호를 자전거로 라이딩하려던 생각은 접기로. 건봉사에서 시간을 뺏기기도 했고, 생각보다 워낙에 넓었고, 찻길을 따라 달려야하는 것도 부담이고, 그래서.

민통선 출입 허가증.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 검은 띠를 덕지덕지 붙였더니 흡사 무슨 대외비문서.

쩌어기 안개 속이 북한이라오........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는 남한이라오........... 그렇겠지.. 저어기 내 차도 보이네. 

이름이 예쁜 명파해변. 우리나라 최북단.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던 명파해변.

박수근 미술관. 전시장이 무려 여섯개라는 말에 섣불리 가슴이 벅차서 좋아했더니 정작 박수근은 박수근 기념관 하나밖에 없더라. 뭔 알 수 없는 현대미술 몇 점에 어린이 체험 미술관에 맨 눈만 어지러운 영상관, 이런 저런 우수마발. 

그래도 이런 박수근의 스케치도 보고 그 아련한 느낌도 보고 느꼈으니 괜찮아. 두시간을 돌아돌아 허위허위 달려왔었어도 괜찮아. 하지만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

정작 박수근은 얼마 없었던 박수근 미술관. 그래 괜찮아. 안왔더라면 언제까지고 궁금해하며 오고싶어했겠지. 그런데 김환기의 작품 하나도 걸려있지 않던 김환기의 안좌도 고택에 갔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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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1).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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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혹시나 하고 서둘러 달려 올라갔지만 시계 제로/ 가시거리 5m이하/ 일몰.  ---  아무리 여행이 변수의 연속이라지만 이건 참 너무하다. 결국 이후의 스케줄은 다 꼬여버리고 저녁도 제대로 못먹은 채로 예상시간보다 한 참 늦어버렸다. 고산지대 드라이브는 이것으로 모두 실패했다. 만항재/ 건의령/ 미시령옛길/ 진부령/ 한계령. 하나도 남김 없이. ㅜㅜ.

셋째날. 월정사. 이른 아침의 고즈넉한 산사를 기대하고 왔으나 웬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즐비한 건설의 현장... 

팔각구층석탑도 알록달록 울긋불긋 초파일 채비 하는듯. ㅡㅡ

절 구경은 접자. 어차피 오늘의 일정은 트레킹이니까. 별 미련 없이 절마당을 가로질러 선재길 입구에 섰다. 나름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아 두었던 선재길이다. 월정사 상원사 사이의 편도 9km 트레킹.

4월 하순 치고는 꽤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선재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이 걸어 본 누군가가 자기가 다녀본 트레킹 중 으뜸이라더라던데
과연 그러..한가?
뭐 나쁘지는않지만 기대가 너무 컸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싱겁다. 여행은 늘 예상 경로를 벗어나기 마련이지만 나름 운치있고 난이도가 높지않아서 접근은 쉽겠긴한데 산행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에겐 의외로 맛이  덜할듯.

결정적인 것이 트레킹코스와 나란히 달리는 버스길. 트레킹을 잠시 멈추고 찍은 섶다리 사진.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버스 정류장 .. 
덕분에 초보자들의 안전이 담보된다지만 호젓한 고립감을 기대하던 내게는 예상치 못한 구멍이었음. 마치 집을 탈출해서 드디어 독립을 했는데 옆집에 엄마아빠가 이사온 느낌. ㅋ
그친구 진짜 트레킹 전문가 맞냐고..

뭐 그래도 길은 꽤 예쁘고 길이도 적당해서 아쉬움을 다독이면서 쉬엄 쉬엄 완주는했는데 왕복 18km를 걸으려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편도로 만족하기로. 그만큼 쏟아낼만큼의 가치는 아니기도했지만 이게… 하루에30km씩 산길 날아다니던 산싸나희 어데 갔노 무릎도 시큰거리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는 결리고 종아리에 통증이.. 그러게 연식이 좀 되긴 했지 머.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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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질질 끌다시피 상원사에 드디어 도착했더니
이런 젠장 상원사는 계단지옥이네. 사람살려.

상원사의 상원사 동종. 진품은 유리 상자를 만들어 씌워놓고 복제품을 걸어 놨더라. 내 눈으로는 똑같이 보였으니 이거나 저거나 뭐. 그럼 나중에 누가 나한테 멋진 선물을 하더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못해서 어리둥절 하는 건 아닐까. .. 그러게 ......... 줄 사람도 없는데 걱정부터 하냐고. ㅎㅎ 

계단 지옥 맞아. 여긴 그냥 포기하고 안올라갔지. 다리가 너무 아파. ㅜㅜ

그리고 이십분을 기다려서 냉큼 버스 탑승. 참 오랜만에 버스로 달려보는 비포장도로. 그 때 그 시절에  지리산 아래 큰집 갈 때 우당탕탕 그 멀미 가득하던 촌 버스. 뜻 밖의 시간에 뜻 밖의 장소에서 뜻 밖의 기억 소환. 요즘 버스 답지 않게 스멀거리던 기름 냄새도 한 손 거들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 서울의 광릉이랑 내소사 길하고 해서 우리나라 삼대 전나무 숲길이라는데 뭐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는 않음. 나는 오히려 계곡 건너편의 산책길이 더 좋았다. 뭐, 사람 나름이니까.

그리고 정동진. 한국 사람이면 아무나 다 간다는 정동진. 인자는 나도 가 봤다.  기차 지나가는 거 한 번 보고 자전거로 부채길까지 갔었는데 바다 부채길은 자전거 입장이 안된단다. 좀 궁시렁거리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걸어서는 답이 안나오는 시간이라. 삼박사일의 일정 중에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봤다. 복도 많지.

별 것도 없드만. 그 놈의 모래시계는 언제적 모래시계가 아직도... 나도 참 재미있게 보긴 했었는데. 한적한 바닷가 동네가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오래동안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대단한 드라마이긴 했나봐. 예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여기저기 소소하게 관광객들이 쏘다니고 차들도 번잡하니까. 심지어 나도 왔잖아? .......친구야.. 나도 떨고 있니? ..... ^^

바다 부채길을 못가라 하길래 괜히 부어서 투덜거리다가 전망대에서 찍어본 유람선의 이륙. 저거 뜯어다가 바다에 놓으면 뜰라나 말라나.

시장에서 만두 하나 사 들고 어제 보다는 조금 이르게 숙소로 돌아 옴. wpr 로비에 있던 수호랑과 그.. 이름이 뭐더라... 그 뭐시기 곰돌이. 

근처 여기저기 보이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흔적. 좀 지쳤는지 시간도 늦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관리가 안돼서 여기 저기 쇠락해져가는 느낌 과 다시 바람불고 비 뿌리던 저녁나절의 스산함 때문이었는지 이것 저것 모두 다여서인지 어쩐지 더 다니고싶은 생각이 안들어서 그냥 숙소 주변에서 카메라만 뺑뺑 돌리면서 몇 컷. TV로 올림픽 경기들을 챙겨보면서  참 기껍고 좋았는데. 귀엽고 재미있던 수호랑 탈바가지 자원봉사자들이며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너나 할 것 없이 살짝 들떴던 분위기 하며.. 그 때만해도 잘 될줄 알았지. 자동차로 압록강을 건너 볼 수도 있겠다고 막 영어공부를 해야 하나.. 그랬었는데. 내 생전에는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을 듯 해서 좀 쓸쓸해졌다. 그리고  오전에 걸었던 트레킹이 좀 버거웠는지 맥주 한 잔에 바로 녹아웃. 기절 해 버렸다. 산 너머로 보이던 저 구조물이 올림픽 성화대였나 어느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스키 점프대일거란다. 그 친구들은 스키 타고 막 날아다니던 친구들이라 아마도 맞을 걸. 

[2018 평창올림픽] 수호랑 - 복사본.avi
19.14MB

생각이 나서 찾아 본 수호랑 동영상 하나. 

네째날.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되짚어 올라갔던 풍수원 성당.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그랬는지 비 온 뒤의 화창한 하늘이라 그랬는지 소소한 바람결에 뻣뻣하게 굳은 껍데기가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 언뜻 모르고 지나치면 모를 수도 있는 외진 산기슭 마을 한 켠에 이런 근사한 건축물이 있다니!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라도 와보길 잘했다.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지켜 보던 세월이 하루 하루 쌓아 올렸겠지. 

사진은 놓쳤지만 성경책을 품에 안은채로 혼자 천천히 이 계단을 오르던 수녀님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내부의 사진촬영을 제한합니다/

촬영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출입조차도 할 수 없었던 성당 내부. 나그네에게 잠깐의 평온 한 조각 쯤은 내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굳이 한 시간 넘는 길을 돌아 서둘러 왔는데. 조금 섭섭.

여기는 풍수원에서 많이 멀지 않았던 용소막 성당.

올라 가 볼 수 없었던 곳. 수도원 같은 곳인가?

조금 엉성해 보이던 종탑

엄격한 수도사 같던 풍수원과는 좀 다르게 성당 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의외로 담백한 모습이 사람 좋은 수사 할아버지 같던 용소막 성당.  와보길 잘했어. 두 성당 모두 와보길 잘했어.
청량한 아침과 그때의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멋진 건축물. 나의 선택은 좋았고 행복했음. 잘했어!

 

마지막 행선지 구미 도리사. 야트막한 산 자락인 듯 보여서 그런가 했더니 막판에 갑자기 가파른 산길에 당황.  급한 커브길에서 뒷바퀴가 헛도는 바람에 식겁했음. 결국 겁 먹고 끝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그럼, 절구경은 천천히 걸어서 해야 제 맛인거야. 흠. .. 4륜구동 갖고싶다..@..@

느낌은 오히려 건봉사보다 좋아
거기다가 멀리 낙동강 굽이가 내려다보이는 눈맛은 부석사의 그것에 못지않음
이번 여행가방에 챙겨넣었던 정암사 월정사 상원사들은 좀 많이 실망이었는데 그게,
나는 내가 없었던 오래전의 시간과 사람과 공간들이 긴 시간 가라앉은 어떤 눅눅함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것이지 어마어마한 규모나 대단한 자랑거리를 뽐내는 보물단지라든지, 알록달록 값싸보이는 채색 단청과 이런 저런 번쩍거리는 도금쪼가리들로 잔뜩 자랑질 해 놓은 절집을 보고싶지는 않다는 말이지. 거기다가 초파일이라고 산문 입구에서부터 산속 가득히 달아매 논 그놈의 오색 연등은 참 질색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색감이 이렇게나 싸보였었냐고 ㅜㅜ  초파일이라고 부처님이 나들이 왔다가 좀 뜨아하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은 크리스마스가되면 그나마 조금은 더 예뻐지는데 절집은 아닌거 같아.
스님들, 그놈의 오색 연등 좀 어떻게 안될까 내가 다 안타깝이.
사진 찍을 때도 어떻게든 연등 피해서 찍느라 용 을 썼던거는 공공연한 비밀임.

아도화상이었나? 뭐, 훌륭한 분이었겠지만 첫 인상이 나랑 잘 맞을 것 같지는 않아. 같이 술 한 잔 하다보면 나만 기 빨릴 것 같은 느낌.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걸로. ㅋ --  아니다. 포대화상이었다. 자선을 위한 물건이 가득 든 포대를 들고 다녔다고 포대화상이라는데. 아니, 선물 보따리라면 그럼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었나... ㅡ.ㅡ

콩고물 시루떡 같던 화엄석탑. 탈속한 고승같이 번잡하지 않은 걸작이었다. 멋진 시루떡.

연등에 가려져서 담장 어딘가를 딛고 올라서서야 겨우 찍은 사진이다. 연등들만 아니었다면  저 날렵한 팔작지붕이 날아 오를 듯 멋지게 펼쳐졌을 텐데. 연등이 걸리적거려서 많이 아쉬웠던 도리사 극락전.

소박하지만 초라하지도 않던 태조선원. 템플 스테이 숙소로 쓰는 듯. 이런 정갈하고 정연한 느낌 참 좋지 않아?  나도 방 하나 주지. ㅎㅎ.

태조선원 기둥에 저그들끼리 옹기종기 목탁. 나보고 웃는 거냐?

적멸보궁. 부처님은 치아사리만 남겨놓고 출타중.

진신사리탑. 건봉사의 수려한 사리탑에 비해서는 다소 과장된 느낌.  

돌아 본 순간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적멸보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버려서 폰 카메라로 찍을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화질이 좋지않아 많이 아쉬웠음.

언젠가 배터리 완충으로 다시 한 번....

내 여행의 마지막을 기껍게 채워준 도리사에 감사를.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올 듯.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많이 행복했다.

......... 하지만 클리어가 안됐지? 그럼 뭐 다시 가야지. ㅡ..ㅡ 

 

2000년 초 1월쯤이었던가 외할아버지의 장례로 벽제 화장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장례식이라봐야 외할아버지는 내 장성하고서는 거의 왕래도 없었던데다가 101세로 한 세기를 살고 마감하셨으니 슬프고 섭섭하고 할 일도 없었고

그냥 좀 무료하고 지겨운 장례절차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화장장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준비된 슬픔도 없고 동기도 없는 내가 그 외마디 울음소리에 불시에 억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까닭없는 울음이 터질 듯해서 황급히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장례실의 젊은 엄마였고 영정은 네 다섯살 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였다.

아마도 예식을 끝내고 시신을 화구 쪽으로 밀고가려던 참이었던 모양인데 그 엄마는 거의 실신지경으로 관이 놓인 수레에 매달려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마디 울음소리를 질러내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생각만으로 눈물이 도는 몇 안되는 처참한 광경이었고 그 때를 기억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역시 눈물이 난다.
세상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그 사무치는 울음소리를 덮을 수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의 범위에 있는 한.
남의 장례식에 따라붙을 일도 아니었고 혹 그럴 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울음소리의 충격으로 그만 얼이 빠져버렸었으니 그냥 멍하니 그 가족의 행렬를 잠시 지켜보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었지만 너무 강렬했던 기억이라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그 장면이 각인이 되어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섣불리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출처: https://shaeong.tistory.com/339#rp [시대착오자의 古物箱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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