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나들이 갔던 날.
큰 아이 시험 치르는동안 즉흥적으로 들렀던 산사.
참 오랜만에 갔던 절 구경.
기대 없이 무덤덤하게 올랐다가 눈호강을 했던 절집.
비구니 절인듯 여승들만 오락가락.

문패는 이렇게 생겼다.
이것저것 읽어보는 습성이 아니라서 모르긴 하지만 꽤 멋져 보이는 서체.
서까래와 추녀 끝이 어울려서 제법 그윽하다.

석등이었는지 석탑이었는지 기억이 벌써 아심하다.
총명탕이라도 한 제 달여 먹어야지 벌써부터 잊음이 이렇게 헐해서야 어디. 젠장.

대웅전.

마침 수능날이어서인지 대웅전에는 기도 소리가 낭자하고
대웅전 디딤돌(木?) 아래에는 엄마들의 신발이 한 짐.....
그렇다면 새끼 시험 치르는데 기도는 못 할 망정 한가하게 절집 구경이나 하고 싸돌아댕긴 나는 아주 빵점 애비인지...
희거나 껌거나 그들의 간절한 자식 사랑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내 새끼 잘 되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 몰라도 불자건 기독자건 '거두절미하고 일단 내 새끼 잘 되게 해 달라'고 뉘한테 비는 이기적인 행태는 내사 도무지 이해도 안 가고 시덥게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라 그것 또한 각자 나름대로 신념대로 행할 일이다. 

선방. 

아마도 살림방인듯.

여기도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러게 사진을 찍어오면 그날 그날 지체없이 정리하고 기록을 해 둬야지
뭐 그리 분주한 일도 없으면서 이리저리 시간은 다 흘려보내고 세월따라 기억도 흘려 보내고...
어쨌든 이 돌 계단 위에 있는 저 집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의 촬영지라던데.

과연 그만한 운치가 없지는 않았던 듯. 
꽤나 고즈넉하고 그윽한 집.

그 집의 뒤꼍. 

 

떠난 지 오래 된 고향은 낯 설면서도 낯 설지 않다.

아니, 낯 설지 않으면서도 낯 설다.
커피 한 잔 사 먹게 풋고추 한 소쿠리 사 가라시던 시장 할머니. 반주로 기분 좋게 한 잔 하셨는지. 

볶은 땅콩 한 사발.

한 사발에 삼천원이라시더니
'이천원을 내줘야 하나 삼천원을 내줘야 하나. 그러케, 내가 돈을 잘 몰라서, 흐흐흐...'
 

신발 굽이 닳도록 드나들던 시내 상가. 어느 해 부터인가 차 없는 거리가 됐더라.

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엉거주춤 하다보니 어디서 온 촌놈일까 싶은지 오가는 이들이 힐끔거린다.
아, 이 사람들아, 나도 고향 까마귀라니까.

수복 빵집.

메뉴는 사십년동안 찐빵. 꿀빵. 단팥죽. 팥빙수.
납작한 찐빵에 뜨거운 팥죽을 끼얹어 주는 게 아주 일품이지. 물론 입맛의 절반은 추억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찐빵 꿀빵은 진작에 동이 나고 되는 건 팥빙수 밖에 없다.
늘 그런 집이니 또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 것만 먹고 나온다.
손님들도 칠팔십년대 진주 언저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중년의 남녀 까마귀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그 까마귀들의 2세들이든지.
은행 달력에 이발소 그림. 의자는 바뀌어도 탁자는 그 때 그대로다. 저 빨간 탁자는 몇 번이나 덧칠을 했을까. 


함양.

옆집 마당에 찾아 온 가을.
날은 아직 더웠지만, 오랜만에 이모님께 인사 드리고 뒤꼍을 어슬렁거리다가 한 컷.

삼천포 어시장.

내가 아는 한, 가장 활기찬,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보다 또 다른.
이제는 친지라고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삼천포는 아내의 고향이다. 
  

castaway

떠난지 오래 된 고향은 他地보다 더 낯 설다.
고향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나는 자꾸 사라진 고향을 찾아다닌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다면 고향이 다시 나를 알아 볼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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