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문화의 불모지인 변방이라 늘 여의치는 않지만 어렵게 기회가 맞아떨어지면 가족을 대동해서 더러 공연장을 간다. 하지만 인근의 소도시라 해봐야 그리 문화적으로 우수한 여건이 갖추어져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렵사리 찾아오는 공연이라야 수도권 인구들에게는 그리 눈길도 끌지 못할 그렇고 그런 공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불모지에 살다보면 이거다 저거다 하고 입맛 가릴 처지가 아니다. 포스터 하나 붙으면 와르르 몰려가서 기갈에 물 한 방울 격으로 냄새라도 맡고 싶은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지. 그러니 내용이 어떠니 색깔이 어떠니 그래봤자 그 뒷 궁리야 어떻든 촌구석까지 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뭐. 그런데 그 중에서 얼굴 좀 알려지고 그 중에 입심 꽤나 있는 이들의 공연장을 가 보면 심심찮게  따라 다니는 것이 '따라 해보기'다.


-'자, 그러면 이렇게 소리 내어 보세요.'

(그게 아무나 진작에 쉽게 될 것 같았으면 당신들이 시방 그 무대에 서서 용을 쓸 일도 없었을걸?)

-'손을 이렇게 올리고, 좌우로 흔들면서, ...'

(흥이 나 봐라. 이 민족은 흥만 나면 도시락 싸다니면서 말려도 남녀 쌍쌍이 붙들고 못 말리게 흔들고 돌아간다니까. )

 

이보슈들. 
나는 당신들에게 그것들을 배우고 싶어서 그 곳에 간 것은 아니야. 나는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일상에 지친 대부분의 나를 멈춰두고 당신들의 그 아름다운 소리나 몸짓을 보고 들으러 간 거야. 따라 하기도 그렇고 안하고 버티고 앉아있기도 어정쩡한 그런 난처한 꼴로 불편한 시간을 보내러 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대부분의 당신들은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그대들의 재능을 펼쳐 보이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해 보세요.' '저렇게 해 보세요.' 때로는 어느 특정인을 지목해서 망신(?)을 주기도 한다. 

'거기 얼룩무늬 티셔츠 입고 안경 끼신 분 일어나 보세요.'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그런 시간이 닥치면 그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황급히 옷차림이나 소지품 같은 것을 살펴 본다. 하는 사람은 진땀나고 보는 사람은 닭살이 돋는 그런 시간. 그걸 꼭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뭔가를 비싼 돈 내고 앉은 관객들에게 배워주고 싶다면 공연 안내 포스터에 반드시 그것을 명기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누구의 무슨 공연- (즐겁고 유익한 따라하기 시간도 있음).-


그렇게만 해 준다면 이런 불평분자는 당신들의 훌륭한 공연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늘 하던 대로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당신들은 이런 불순한 관객의 오염 없이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마음껏 그대의 재능을 빛 낼 수 있겠지. 그렇지 않고 무슨 무슨 공연이라는 표기만 되어있다면 알차게 그것에 충실 하라는 이야기다. 물론 공연 중의 분위기에 기름을 치기 위해서 한마디씩 던지는 재치는 나쁘지 않다. 나도 그쯤의 융통성은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객석의 반응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거나 바라고 하는 행위라면 그것 역시 떫다. 열성적인 오빠부대나 팬들의 환호성은 그럴 만한 대상과 그럴만한 장소가 갖추어졌을 때 기대 해 볼 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대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뜯어 고쳐져야 할 좋지 못한 습관도 아니며 좌중 앞에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미덕인 것도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공연장에서 박수를 치는 것조차도 인색한 편이다. 그야말로 마음이 벅차올라서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예의상 몇 번 맥 빠지게 두드리고 만다.

아, 물론 모범적인 관객의 태도가 아닌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썩 신통하지 못한 내용으로, 게다가 연습부족이 여실한 내용으로 한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이 겨워 기진맥진 때우고 있다든지, 그런 모자라는 재능을 입심에 기대어 그럴 듯 하게 포장하고 있다는 눈치가 보이기라도 한다면 이 고약한 관객의 박수는 미안하지만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고 말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들의 뛰어난 쇼맨십을 발휘하고 싶거든 공연 안내에 그걸 친절히 명기 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공연에 충실해 달라는 이야기고. 그래도 못내 자신의 재능을 떨쳐 보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면 박수소리가 채 멈추기 전에 펼쳐 보일 앵콜이나 한 두 개쯤을 더 준비 해 오는 것은 어떠실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