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is Angelicus / Frank
The choir of Paisley Abbey
사람이 성정이 여물지를 못하여서 그런지 이 나이에도 듣다보면 콧머리가 시금털털해지는 곡들은 더러 있었지만
어떻게 수습할 겨를도 없이 왈칵 쏟아져버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년 전에 부산에 사는 동갑내기 지인에게서 얻은 복사 시디입니다. 스피커 회사에서 나눠주는 샘플러 시디라 뭐 되잖은 곡들도 이것 저것 섞여있기도 한데다가 대부분의 그런 류의 음반이 그렇다시피 이것 또한 한 두 곡을 제외하고는 음악보다는 음향효과를 극대화 한 그런 효과음악(?)들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곡의 배열도 두서가 없어 내내 이어 듣자면 몇몇 곡은 좀 짜증스럽기도 했지요.
그랬었는데...
몇 해 전 어느 날 오후에 여느때와 다름없이 별 생각없이 볼륨 열두시까지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순간, ‘저 먼 우주로부터 날아 온 아지못할 그 무엇’ 에 정수리부터 발 끝까지 찌리릿! 관통 당하여 엉거주춤 무심결에 고만 팍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 왜 눈물이 났는지는 나도 몰라요. 며느리도 모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비위가 약해 그런건지 소화불량이라 그랬는지. 뭐 어쨌거나 그 이후로도 들을때마다 그 양이 적거나 많거나간에 눈물이 납니다.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로구나, 라든지, 혼신의 힘으로... 라거나, 비할 바 없이 뛰어난 음악성이로구나... 뭐 이따위 각종 수식어들이 무색해지는, 그야말로 神에게 영혼을 다 바쳐 부르는 듯한 숭고한 목소리입니다.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넘어선 숭고함입니다. 神이건 누구건, 그 어떤 존재가 이 사람이 부른 이 곡을 듣는다면 그 자신도 한번 쯤은 헛기침하며 눈을 끔벅거리지 않을까 그리도 생각해봤습니다.
아니, 뭔 촌뜨기 주제에 뭐 얼마나 보고 들어 봤답시고 따따부따 설레발이냐 삿대질 한다면 섭섭합니다만, 그래도 할 수 없지요. 나는 고만 이 여인네에게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혹시 뭔 일 없는 편집 시디 만들 때는 거의 빼지않고 끼워넣는 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돌려댑니다. 오늘 아침에도 들었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곡을 부른 독창자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잡는 독창자를 알고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있는대로 뒤지면서 난리 법석을 떨어봤지만 이 소프라노가 도대체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몇 살이나 먹었는지, 기혼인지 미혼인지....(대체 이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마는...) 또한, 이 소프라노가 내놓은 또 다른 음반이 있는지, 특히 이 소프라노가 부른 성가곡 음반들이 있는지, 검색 솜씨가 형편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결국 그 외의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짐작에 페이슬리라는 수도원의 성가대에 소속된 무명의 수녀가 아닐까 짐작하는 바, 이 수녀님(혹은 아줌마, 또는 아지매, 혹은 처자,)는 이 한 곡만으로 거의 천사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고 내 혼자 멋대로 결정해버렸습니다.
어쨌든 이름도 모르는 이 소프라노는 딱 이 한 곡만으로 동아시아의 동쪽 변방에 쭈그러져 살고있는 촌뜨기의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말이야 하기 나름이지만 이만큼 넋을 놓고 들었던 음악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신/
또한 목소리의 음색과 성량과 음악적 감성 등등으로 미루어보아
이 여인은 절대로 도무지 도대체 못생길래야 못생길 수가 없는 것으로 확신되는 바,
혹시 그간 심경의 변화 있어 환속을 하시거나 파문을 당하는 불상사가 있다면
주저치 마시고 얼른 우리집으로 전화 하시기 바랍니다. 버선 발로 마중 나간다니까요.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