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잘스 영감님.

때로는 모노시대를 살다 모노 음반들만 남기고 가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또 어쩌다 보면 모노 음반만 남기고 가버린 것이 다행스럽기도 한 낡은 영감님.


갑갑하고 둔해빠진, 순 시대 착오적인 모노가 그렇게 다행스러운 이유는

모노답게 투박하고 깊은 그의 첼로에
더러더러 그가 피던 빨뿌리 곰방대 담배 연기처럼 묻어있는 늙은 할배의 탄식 같은 중얼거림 때문이지.

침침한 골방에 쩔어 있는 담뱃진 냄새 같은 모노 톤의 그 신음소리가
첨단 기술의 입체 음향으로 나발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어쩌면 소스라쳐서 닭살이 돋을 듯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가 연주한 음반이면 거의 빠짐없이 군데군데 묵은 먼지처럼 묻어있는 그 중얼거림은
그 자신의 음악 속에서 희유하는 굴드의 흥얼거림과는 달라.
그의 중얼거림은 너무 아프고 너무 짙어서
어떤 때는 간혹 나를 따뜻하게 보듬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름끼치게 하며,
더러는 아득한 낙심과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게도 하는데
이왕에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판이나 하나 얹어 놓고 듣고지고... 하고지고...


이제는 거의 삭아빠진, 흑백의 모노톤으로 인쇄된 자켓의 카잘스 트리오의 백악관 연주실황.
여기도 역시 빠짐없이 영감님의 탄식 같은 신음소리는 묻어있지만
쿠프랭의 연주회용 소품을 잘 들어 봐.
저것 봐,
판을 뒤집고, 바늘을 얹고, 엉덩이 걸음으로 잽싸게 뒤로 물러앉아 숨을 고르기도 전에
첫 음표보다 더 먼저 불쑥 배어나오는 저 신음소리.


‘첫 음표보다 먼저’ 그의 감성이,
그가 껴안고 앉은 낡은 첼로보다도 먼저 그의 늙은 몸뚱아리가 울린다는 것. 
이것 봐,
게으른 머리를 흔들어 털어 내고 잘 들어 보라니까!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쿠프랭은 일찌감치 저 한 쪽에 밀쳐 둔 채로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거기다가 중간 중간 탄식처럼, 혹은 음표나 숨표처럼 묻어나오는 저 중얼거림들을 봐.

그 신음 소리들은 귀에 들어와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뒤통수를 때리고 들어와 등골을 타고 흘러 벼락 맞은 듯 내 몸을 관통해 버린다는 말이야. 
귀로 듣고 곰곰히 머리로 새길 시간이 없다니까!
그 심사를 짐작하려 애쓸수록 가닥은 더더욱 흐트러져 버리고.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울림만 남아서 영감님의 담배연기처럼 방 한 가운데 쯤을 조용히 떠 돌 뿐이지.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한없이 가라앉는 그 고요한 아다지오 사이사이에
적재적소 에 묻어 나오는 신음소리들. 정말 마치 악보에 표기된 음표나 쉼표들 같지 않아?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는 쿠프랭의 소품보다 이곡의 신음소리가 더 훌륭하게(?) 느낄지도 몰라.


아아, 새의 노래다. 영감님이 그리도 사랑해 마지않아 연주회마다 빼지 않고 집어넣었다는 새의 노래다.

고향은 짐승이건 사람이건 숨질 때면 머리를 향하는 애닯은 곳이라는데
그 동네 새들이 모두가 저리 아름답게 노래하는지 내사 알 도리는 없지만,
영감님의 고향 카탈로니아에는 대체 어떤 새들이 저리 비통한 울음을 하는지도 내사 알 도리는 없지만,
영감님은 어쩌자고 저 새소리보다 더 슬픈 목소리로 새를 노래하고 말았는지.
어쩌자고 저리도 우울한 중얼거림으로 날 마저 울리고 말았는지. 어쩌자고...
 


그 옛날, 사나운 겨울 바람에 덜컹거리는 페인트 칠 벗겨진 낡은 나무창틀,
그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오후의 식은 햇살.
닳고 닳아 나무 결이 맨질거리는 마루바닥에 그 햇살 깔고
세수도 안한 얼굴로 수세미 머리를 한 채 한껏 게으름을 피면서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소파에 파묻혀서 듣다 보면 
그렇게 뼈마디가 저릿저릿할 만큼 행복하기만 하던 저 탄식과 신음 소리가 이제는 왜.
 


난 잘 모르겠네. 그건 메누리도 모를 걸. 당신은 그걸 알고 있을까? 
아니, 글쎄, 요즘 들어 깜빡이는 횟수가 자꾸 잦아지다 보니 기억을 못하는지도 몰라.
혹시 내 수첩 속 어딘가에는 잘 메모해 둔 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뭐든 생각 날 때 갈겨 써 두지 않으면 그나마 영영 잊어버리는 수가 많다니깐.
그러게 말이야,  난 이제 중년이거든.


그렇지.
지나간 것들이 그리워지고 다가 올 것들은 두려워지지.

지나간 것들은 뭐든지 그리워지고 다가 올 날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두렵기만 하고.
그렇게 이제는 천천히 조금씩 낡아가는 것일까.
아니, 그래도 한 해가 넘어갔으니 나도 영감님의 저 깊은 탄식 소리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걸까.
그럼 그것으로 오늘 하루는 행복해져도 무방한 것일까.



.........
아니, 그런데 당신의 오디오에서는 영감님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는다고?

아아.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오디오를 좀 더 나은 것으로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도 명분 없이 하이엔드에 맹종하는 무리들은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 음반을 들으면서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래도 못내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하,
물론 당신이 이 음반 속에 먼지처럼 묻어있는 늙은 영감의 신음소리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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