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듣지 않는다.
아마 안 듣기 시작한지 이십년은 족히 되었을 거다.


물론 예전에는 들었다. 들어도 꽤 많이 들었지.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비창 교향곡은
몇 장 되지 않는 내 장서에 끼어들기 시작 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초보의 당연한 순서였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베토벤의 5번, 3번에 뒤이어 교향곡으로는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걸로 기억한다.


첫 번째 음반은 번스타인의 뉴욕 필. 그리고 두 번째 들어온 음반이 비엔나 필과 연주한 문제의 마젤 판이었다. 아주 두터운 시꺼먼 표지에 마젤이 해골 같은 흑백 실루엣으로 박혀진 판이었다. 소장하고 계시거나 기억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듯싶다. 그 뒤로도 몇 몇 지휘자들이 들어온 후 마지막으로 므라빈스키의 음반이 들어오고는 나의 장서에 비창은 더 늘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이십대의 나는 곧잘 마음을 휩쓸리곤 했고 당연히 그럴싸하게 우울한 악상으로 덕지덕지 발려진 비창은 그런 나에게 역시 그럴싸하게 우울한 마음을 포장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비창을 들을 때면 나는 거의 마젤의 음반에 손이 갔고 일 악장 도입부의 그 끈적하고 서늘한 느낌의 마젤에 중독 되어 급기야는 마젤을 제외한 판들은 그냥 판꽂이에 꽂힌 채로 그냥 곰팡이만 슬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언제부터인가 그 곡을 들은 날이면 어쩐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일도 생기긴 했지만 주로 사람과의 사이에서 예사스럽지 않은 대미지를 입곤 했다. 그것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더.


예외 없이 그 때 열애 중이던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그 곡을 들은 날이면 꼭 뭔가 트러블이 생겼다. 사소한 것으로 출발한 것이 종래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날카로운 대립으로 이어져 결국 꽝꽝 얼어버린 마음으로 서로 돌아서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비창 교향곡이 끔찍하게 느껴질 무렵, 결국 서로에게 누적된 상처만 안겨주고 둘은 어느 칼바람 부는 겨울날 모래바람 요란한 낯 선 강변에서 그 뜨거웠던 이십대의 여덟 해를 파묻어버리고 시퍼렇게 띵띵 얼어버린 몸처럼 마음도 그렇게 닫아버린 채로 차갑게 언 손 꼭 잡는 것으로 그 숱한 날들의 기억들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내 딴에는 깊은 상처였지만 남 보기에는 오갈 데 없는 신파가 분명하므로 일단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누구나가 대개 그렇듯이 그 당시만 해도 이 세상에 태어나 오로지 그 사람만 안고 살아가리라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으로 충만하던 이십대 후반 얼치기 로맨티스트는 그 일로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고 그렇잖아도 시원찮던 세상살이를 아주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정말 칵 죽어버리고 싶었던 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깨끗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때때로 나를 우울하게 하기도 한다.


하여간에 결정타였다. 그리고 비창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비창의 탓으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마젤의 연주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비창이든 비창 교향곡은 내게 기피대상 1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가슴 가득히 비창에 대한 적의를 품고 만나는 이들 마다에게 그 곡을 내팽개치기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아 물론 지금은 좀 순화 된 편이다..... 그때에 비하면 나도 꽤나 나이를 먹었으니까. 나이가 들면 이렇게라도 나이 값을 해야 하는 건지.


하여튼 그리하여, 그렇게도 즐겨 듣던 4,5,6번 중 6번은 내 장서에서는 물론이고 내 기억에서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래서 지금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하면 4번을 제일 먼저 꼽는다. 무슨 음악적, 이론적, 이런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기호로.

6번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세워놓고 비교해도 4번이 나아 보인다. 물론 그 일 이후로 비창을 다시 들어본 기억이 없어 정확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 일로 비창 음반들은 하나하나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어떤 판은 제정신을 잃은 나의 광란에 뽀개지기도 했다. 물론 다시 사들인 음반은 당연히 하나도 없었고. 그게 벌써 이십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비창을 듣지 않는다. 엘피건 시디건 내 장서에 비창은 이제 없다. 혹 그 지난날의 망령이 다시 살아 돌아올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말이다. 이건 진심이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기억이었으니까.


그래, 언젠가는 다시 비창을 들어 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그 때는 아마도 내가 소중한 것들과 소중하지 않은 것들의 미망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편안하게 손바닥을 펴고 바라 볼 수 있을 때쯤 일 것 같다. 그래, 그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수긍하면서 오래 된 기억들로 눈물도 조금 흘리면서 제대로 한 번 들어보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듣고 싶지 않다. 지금도 뜻하지 않게 라디오에서 비창이 흘러나오면 당장에 라디오를 꺼 버릴 만큼 혐오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일들이 정말 비창 때문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만약 그게 정말 비창 때문이었다면 그 로린 마젤 지휘의 데카 반 속에는 무슨 귀신이 붙어있었던 것일까? 이젠 더 잃을 것도 없겠다 싶은 지금은 정말 그런지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지만, 아, 그래도 아직은 그 판을 다시 들어보고 싶지는 않아. 정말 진심으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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