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어질고 살갑기가 세상에 비할 바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 집 현관문을 열면 대문 밖 스무 걸음 쯤 저만치 바로 마주 보이는 낡은 집입니다. 내가 이 마을에 들 때 할머니네 밭을 사서 집을 지었지요.

집 짓고 이사 왔더니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동네 맨 윗집이라 밤이면 헛헛했는데 빈 터에 집이 들어서고 밤이면 불이 환하게 보이니 담이네가 들어와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늘 치사를 하셨습니다.


어질고 살가운데다 성정은 또 얼마나 깔끔하신지 나이 들어 눈이 어둡고는 해 지면 채소를 안 만진답디다. 혹 티끌이나 벌레를 못 볼까봐 늘 밝은 햇살 아래서만 음식 장만을 하시는 분이지요.

할아버지는 수 삼년 전에 일찍 돌아가셨지만 건실하니 아들농사 삼형제 번듯하게 잘 지어 효성 지극하고. 그러고도 아들네 며늘네 업혀 살기 불편타고 늘 혼자 사시지요. 욕심 없고 경우 바르니 책잡는 사람도 없지요. 너도나도 저런 어른이 없다고들 입을 모으고.


이 날까지 십년이 넘도록 명절이면 잊지 않고 늘 음식 나눠주시고 모내기철이면 모밥이며 갓 담근 김치며 한 양푼씩, 가을걷이 때면 갓 찧은 햅쌀 자루 이고지고, 시시 철철이 채소며 곡식이며 갖다 주시는데

아이고 품앗이할 소출도 없는데 자꾸 받기만 해서 어쩌냐고 쩔쩔매노라면 아이고 담이 아부지는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촌에 늙은이가 손 댄 거라 혹 깨끗하지 못할까봐 그것만 늘 걱정하십니다.


나는 이 할머니 김치만큼 맛있는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갓 담근 김치는 냄새만 맡아도 입에 군침이 돌고 대번 뜨거운 밥 생각이 절로 나지요. 정말 맛있습니다. 어디서건 김치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자랑할 만큼 정말 맛있는 김치였습니다. 서슴없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분이라고 내세웠지요.


몇 년 전인가 어느 해 모내기철에는 우리 식구 모두 방금 점심 밥 먹고 막 일어섰는데 모밥 해서 가져왔다며 팥 밥 한 양푼에 김치 두어 포기 그래 주셨지요. 기왕에 밥은 먹었고 배는 잔뜩 불렀으니 맛이나 보고 아껴뒀다 저녁에 먹자, 밥 한 술에 김치 한 조각 입에 넣었다가 웬걸, 그 자리에서 밥 한 양푼을 김치 한 가지 반찬으로 꿀꺽 단숨에 해 치우고는 동산같이 부른 배를 끌어안고 숨을 못 쉬어 한나절을 식식거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일단 맛보면 안 먹고는 못 배기는 그런 마법으로 버무린 김치.


봄가을로 우리 집 어린 놈 소풍이며 운동회며 가방 싸들고 대문 밖 나서면 얼른 달려와서 천원 이 천원 손에 쥐어주시며 우리 담이 운동회 날인데 못 가봐서 어쩌냐고 정말로 미안해  하시고 여름이며 겨울이며 내 집 마당에 낯 선 차 들어서면 손님 오셨는데 반찬이라도 보태라고 수시로 김치며 채소며.


자랄 때 겪어 본 적이 없어 그런지 나는 누가 날 챙겨주면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렇게 따시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내 집에 마실 오셔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에미 없는 자식이 제일 불쌍하다며 담이 아부지는 엄마가 기러바서 우째 이래 사셨냐고 안타깝다 답답하다 하시더니 달포 전 책 한 권 냈다하고 인사 드렸더니 아이고 담이 아부지 기어이 큰 일 하셨다고, 당신 아들 일처럼 그리도 기뻐하고 좋아하시더니, 엊그제 설 전날 식용유 한 꾸러미 갖다 드리고 세배를 오늘 가나 내일 가나 니미락 내미락 하고 있었더니 어제 새벽 주무시다가 자는 듯이 혼자 돌아가셨답니다. 

설 쇠고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떠나고 혼자 이불 펴고 조용히 주무시다가 그냥 그대로 혼자 저세상 떠나셨답니다.


사람이 무섭도록 깔끔한 성정도 탈이 되는지라 어찌 가시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여 주시지도 않고 당신 입을 수의 어느새 깔끔하게 손질해서 다려 놓으시고 그나마 가시는 날도 정월 초사흘, 아들네들 설에 모여 제사까지 한 번에 지내라고 돌아가시면서도 아들 생각하신 것인지.

어제 읍내 병원 빈소 가서 잘 가시라 인사드리는데 모질고 독한 성깔이라 좀체 눈물 없던 이 놈의 인사가 엎드려 핑 도는 눈물 감추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빈소에 놓인 영정을 돌아서서 또 보고 또 보고 굴건제복 막내아들 손 한 번 잡고 그저 허랑하니 집으로 돌아 들어오는 길에 어째 얼굴도 한 번 안보여주시고 그리 가셨는지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아서 애꿎은 한숨 끝에 눈물을 몇 번이나 삼켰습니다. 


나야 늘 어른 손이 그립고 아쉬운 터라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처럼 그리 생각하고 기대어 살았었는데 집에 돌아와 들어서는 길에 문 닫힌 채 적막한 할머니 집을 보자 하니 그만 억장이 무너지고 허전한 마음을 가누기가 힘이 듭니다. 뉘라서 남의 자식을 그만큼 따시게 다독거려 주실 것인지,

내, 팔자에 없는 복을 얻어 할머니 같은 분을 이웃으로 두고 사는구나, 늘 그리 기꺼워했었는데 이제는 그 기억을 지팡이 삼아서 버티고 살아야 할 모양입니다.


지금도 할머니 보고 계신다면 아이고 담이 아부지는 촌 늘그이를 갖고 별 소리를 다한다고 손사래를 치시겠지요. 김치 양푼 건네주시면서 ‘짠지 기러블 때 아무따나 잡수소’ 허둥지둥 대문 나서시던 뒷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어머니보다 더 살갑고 자상하시던 할머니, 이제는 굽은 허리 펴시고 극락 가시는데 나는 받기만하고 드리지를 못해 늘 겨워하던 마음 그냥 그대로 지고 살랍니다.


사는 꼴이 허망해집니다.

모레 아침 하관이라는데 날씨라도 봄날처럼 푸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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