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작은 배낭을 지고 산을 오릅니다.
한시간 반이면 다녀 오고도 남을 작은 산이라 물 한병, 수건 하나면 충분하지만 그래도 굳이 납작한 스포츠 배낭을 지고 갑니다. 내용물은 수건 한장, 물 한병, 핸드폰, 면장갑, 주머니칼 정도. 배낭이 등에 붙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든든하지요.

2.
나는 오래 전 지리산에서 잠깐동안 배낭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혼자 산을 오르면서 시간에 쫓긴 나머지 등산로를 버리고 희미한 산길을 택했다가 낭패를 당했었습니다. 빤히 보이던 길이 돌아서자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 낭패감은 당해 보지 않으면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낭패감은 그래도 사치였습니다.
가벼운 몸으로 잃어버린 길을 찾겠노라고 배낭을 잠시 벗어놓고 맨몸으로 안개 자욱한 덤불 속을 헤매던 나는 그만 배낭을 둔 자리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지요. 급기야 해는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그 막막하던 공포와 절망.  
배낭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이의 시각은 짐작에 한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거의 어두워진 산골짜기에서 참 다행히도 돌 덩어리만큼 크고 무거운 배낭을 되찾아 짊어지는데 그 때처럼 등을 압박하는 짐의 무게가 반갑고 고마운 적이 없었습니다.

큰 산을 며칠 일정으로 오르는 장기 등반때 등에 진 배낭은 크고 무겁습니다. 정말 그 압도적인 무게는 살인적이지만 그래도 그 웬수 덩어리같은 배낭 속의 내용물이 없다면 그 깊은 산 속에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최소한 나는) 자연 속에서 맨 손으로 살아가기에는 완벽하리만치 무능한 존재인가 봅니다. 여기서 쓸데 없는 생각 한 토막... 현 시점에서 인류가 졸지에 석기 시대로 돌아 가야 한다면 대체 몇 명이나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3.
희거나 껌거나 간에 이 풍진 세상, 세상의 모든 너희들을 위해서 어금니 물고 허위허위 살아 가는 거라며 유세 꽤나 떨고있는 우리들이지만 기실은 세상의 그 모든 짐들이 오히려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짐들을 ‘붙들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짐들이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족이란 서로에게 닻이며, 혹은 덫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덫 보다는 닻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그런 면에서 나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장삼이사, 범부의 범주에 드는 모범 생활인일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 쪽으로도 곁눈질 해 봅니다.
거친 항해도 때로는 더 없이 낭만적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배는 항구와 가까울때 비로소 더 멋있어보이는 법이지요. 그러자면 적당한 곳에 닻을 내리고 갈매기 벗삼아 다소 촌스러운 기념사진이라도 늦기 전에 박아 놓을 일입니다.
......
왼갖 잡설 중에 참 장한 생각 하나 했지요?... @@..

4.
어쩌다 초저녁에 잠이 들어버리는 날이면 더러 한밤중에 잠이 깨어 황망한 경우가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다시 잠 들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불끄고 억지로 누우면 온갖 잡생각으로 오히려 더 심난하기때매 일부러 긴치않은 일거리를 만들어서 밤중에 부시럭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찮아서 미뤄두었던 것들이나 조용할 때 혼자 해 보고싶었던 일이라든지......
하지만 거의가 다 먹고 사는데 별로 요긴하지 않은 일들이라 c/p가 그다지 높지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때 얼핏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 늦은 시각에 대체 뭣때매 이러고있지?

오늘 밤이 꼭 그런 날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잠이 부족한 날은 명줄이 짧아진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같은 때가 꼭 그렇지요. 청춘은 피고지고 세월은 이고지고..

......그러니 될수 있는 한 얼른 한식경이나마 만사 제쳐두고 잠이나 잘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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