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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분을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때 살던 진주 칠암동 집 백평남짓 마당에 꽂힌 수십 그루의 갖가지 꽃과 나무들로도 모자라서 이백여개의 크고 작은 화분을 보듬고 사셨습니다.
갖가지 기화요초로 백화만발한 분재들은 아마도 훌륭한 취미임에 틀림없으며 가족들의 정서 순화에도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는 칭송도 들어마지않았겠지요. 옳고말고요. 꽃과 나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물상입니다.. 다만 문제는, 우아하게 매만지고 그윽히 완상하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그 화분에 물 주고 들어 나르는 노가다는 순전히 우리 4남매의 몫이었다는겁니다. ..말이 좋아 이백개지.....

비가 옵니다.
‘비 온다. 화분 내다 놔라~~!!’
밤이고 낮이고 없습니다.
젖은 고무신짝이 헐떡거리도록 마루에서 마당으로 들락날락 화분을 내놓습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납니다.
‘화분 들여놔라~~~~!!!’
이건 더 하기 싫습니다.
화분도 물을 흠씬 먹어 훨씬 무거워졌을 뿐더러
빗물에 튀어서 미끈미끈 시퍼렇게 이끼 덮인 오지화분에 흙모래까지 잔뜩 묻어있습니다.

때때로 젖은 화분 밑에 거머리며 지렁이도 붙어서 따라옵니다. 달팽이는 기본입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대청마루를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지렁이, 거머리, 달팽이. 그 외에도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많은 각종 발 많거나 발 없는 족속들.......... 질색입니다.

그리 좁지않았던 왜식 구조의 기와집 마루들은 사람 다닐 통로만 남겨둔 채로 그 수많은 화분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끗발이 떨어지는 화분들은 마루 밑 축담 옆이나 굴뚝 부근에서 찬밥 신세였지요.
아버지는 그 끗발 떨어지는 꽃나무들이 차마 애련하고 가엾은 나머지 급기야 마당에 두평 남짓 구덩이를 파다가 반지하 온실을 만듭니다. 남향으로 비스듬히 눕힌 천장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가마니를 두 겹으로 덮어놓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해 뜨면 가마니를 걷어놓습니다. 저녁에 해 지면 가마니를 덮어야합니다. 그 짓을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해야합니다.
혹시나 까먹거나 삐딱하게 버티다가 잊어버리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빌어묵을 놈들이 고거 하나 제대로 못덮어서 화초들이 다 얼어죽을라..$%^^*&&^@$!.......’

.........

-쉬이벌, 그라마 아부지는 이 삼동에 손발 얼어터지는 자식들보다 그깟녀러 화분이 더 좋단 말이요?

억울하고 신경질나서 이렇게 항거 해보고싶어도 시대적 배경이 일천구백육십년대올습니다.
어디를. 아버지한테는 끽 소리도 못냅니다. 그랬다가는 죽을만치 두들겨맞고도 온 동네 씨도 못받을 말종자로 찍혀서 덕석몰이를 당할....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 없을 때 마당에서 제일 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에다 주머니칼 던져 박는 걸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 늙은 은행나무는 껍데기가 울퉁불퉁하도록 나한테 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덕분에 표창 던지기 솜씨가 꽤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그 실력 시방도 갖고 있으면 어디 조폭 영화 단역이라도 한번 꿈꿔보는건데!...

하여간에 그놈의 화분들은 화분 주제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호강을 하다가 마당이 좁은 서부시장 뒤쪽으로 이사를 가서는 대형화 하기시작합니다.
칠암동 시절의 화분들이 그나마 올망졸망한 오지화분들이었다면 서부시장 시절의 화분들은 사람 몸뚱아리만한 덩치에 분재의 키도 보통 일미터를 넘나드는 도자기 화분들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니미, 혼자 들고 들어갈려다가 허리 뿌러집니다. 이 때도 아부지는 변함없이 턱 끄트머리로 분재 취미를 즐기십니다.

‘바람 분다. 디라 놔라.’
‘비 온다. 내다 놔라.’

그 시절까지 출가를 안하고 집에 있던 세째누나와 나는 띵빠리같이 살찐 화분을 마주 들고 낑낑 게걸음을 걸으면서 맹세를 했습니다.

‘내가 커서 분재를 한다면 개자슥이다.’

상대적으로 집을 일찍 떠났던 큰 누나와 둘째 누나는 그래도 좀 덜한 편이라서 시방도 위로 두 분 누님들 집에 들어서면 그렇게 열성적이지는 안해도 아파트 베란다에 보면 더러 볼만한 분재들이 십수개쯤 펄럭이고 있습니다만 상기한 세째 누님과 나는 한세월 아주 오지게 질려버린데다 타고난 게으름도 만만치 않아서 어쩌다 생긴 화분이 아니고서야 내 돈 주고 화분을 사 볼 생각은 꿈도 안꿉니다. 그나마 공으로 생긴 화분들도 시난고난 말려죽이기를 다반사로.....

.............
세월이 가고 결혼을 하고 ....... 어쩌다보니 마당이 있는 집을 지어 이사를 했습니다.
꽃집 딸이었던 아내는 이것도 심자 저것도 심자 화분이 예쁘네 꽃이 어떻네, 아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째서 식물을 싫어하냐, 세상에 살다보니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다 있구나 긁고 쑤시고 들썩거리지만 그래봤자 내사 요지부동입니다. 웃기지 마라. 분재와 나무와 풀과 그 모든 식물에 얽힌 그 신간스런 인고의 나날들을... ‘니가 내를 아나?’


...........
.......
이 자리에 발 붙이고 산지도 벌써 어언 십오년. 일상에 코가 꿰어 동분서주 살다가 어느 틈에 허리 한 번 펴고 하늘 한 번 보았더니 엇주?
처음 집 짓고 준공검사때매 마지못해 마당에 꽂았던 회초리만했던 묘목들이 지깐에는 나무랍시고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낙엽 떨구더니 이것봐라? 어느새 가지들이 넘실넘실 지붕을 넘어다봅니다.
나도 그동안 그럭저럭 먹은 나이가 있다보니 한번씩 그 나무들이 새삼스럽게 돌아다 보입니다. 아무 애정도 없이 되는대로 사다 꽂은 천원짜리 싸구려 묘목들... 나무는 십년을 보고 사람은 백년을 본다더니 그게 그거였던가.

수일 전에 마당에 나무 몇 그루 심고 나서 뭔 심사가 선듯만듯 하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마음에 내켜 화분 두어 개 만들어봤습니다. 흙 갈고 구근 두어개 옮겨 심고는 물 적셔서 테라스에 두었습니다.
꽤나 무거운 도자기 화분을 영차! 들어 옮기면서 인자는 세상에 안계신 아버지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깐에는 멋낸답시고 마당에 깔린 잔자갈도 한 줌 집어다가 어설프게 깔아놨더니 그걸 본 마누래는 뭔 뜻인지 혼자 씩 웃습디다. ...... 주글래?

....작심삼일로 또 말려 죽일지는 메누리도 모르지만 그래도 근 사오십년만의 변신이니 칭찬할만하지 않은가요. 아니면 어릴 적 그 맹세대로 기어코 나는 개자슥이 되어야할까요. @@....





뒷다리/ 사진 설명
발육상태가 좀 쇠어 꼬부라지긴 했어도 맹세코 내가 마음에 내켜서 만들어 본 첫 화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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