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열두시 반이다.
모로 누운 오른쪽 눈꼬리에 흥건하게 눈물이 괴어있었다.
......이것 참...  이나이에 꿈에 휘둘려서 잠을 깬단 말이가.

이야기도 그리 올바르지 못하여 어리둥절한 꿈 끝에
차를 운전해서 어디론가 가던 중에 좁은 길에서 마주오는 차를 만났다.
그리고 그 차와 교행하려고 차를 비끼는바람에 그 인근에 살던 친구를 만났다.
(앞뒤도 안 맞고 매우 이상하지만 꿈에서는 더러 생기는 인과관계다. 하여튼, )
그 친구는 당연히(?) 나를 청해서 이웃에 사는 친구와 함께 서로 안부를 묻고 맞절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는데 와중에 무슨 기별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나는 한없이 어지러운 어떤 헝겊 주머니를 뒤지면서 어어 소울음을 울었고 내 곁에 선 형제들도 슬피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왜 오마니는 이리 돌아가셔야하냐고 하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인 채로 잠이 깨었는데 열두시 반이다.
쉰 줄에 앉아 베개를 적신 눈물도 하도 어이가 없고 자다 깨던 서슬에 느끼기를 생시에도 두어번 울음을 삼키던 와중이라 열적고 남사스런 마음에 그만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드물게 어머니 꿈을 꾸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신다.
물론 나 역시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게 있어서 어머니의 얼굴은 하나 남은 흑백 사진 속의 서른살 남짓하던 젊은 얼굴 뿐이다.
당연하다. 서른 다섯에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내가 어머니보다 더 늙어버려서 시방은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어떠하셨을까 궁리도 해 볼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고 자식은 자식인지
이렇게 늙어버린 아들의 꿈에서도 어머니는 어머니로 나타나 갑자기 사라지시기도 하고
또 어젯밤처럼 억장 무너지게 홀연히 돌아가시기도 한다.  

내가 다섯살에 서른 다섯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쉰살이 넘어버린 아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꿈결에나마 나타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꿈에서건 생시에서건 살아 움직이는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거나
그 뜨시고 푸근하다는 어머니의 품에 한 번 안기어보는 것이야 이미 생사를 달리하신 까닭에 일생에 이룰 수 없는 바램이지만 그래도 꿈결에서라도 한 번 못이긴체 그 인자하신 얼굴(얘기로 듣자하니 매우 인자하셨더라길래!)에 웃음 담아서 슬쩍이라도 한번 보여주시지를 않느냐고 밤중에 혼자 마루에 앉아 씽퉁한 생각만 되작였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작은 놈 곁에 누워 다시 잠이 들긴 했는데 자고 일어나도 그 꿈이 여운이 남아있어 혼자 삭이기도 마음에 좀 어색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젯밤 어머니 꿈을 꾸고 하도 섧게 울었노라 말을 꺼냈더니 지난 주에 성묘 갈까 했다가 가지 못하여 섭섭해 나타나신 것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오라, 그도 그럴듯 하구나. 거 참, 한참 어린 아내가 나보다 궁리가 낫기도 낫네 열적게 웃는데, 원 참. 그렇다면 성묘가 미뤄진 사정을 모르시는 바도 아닐 것이고 그 한주일을 기다리지 못해서 다 늙은 아들의 꿈에 나타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시는지.
기왕에 그리하실려면 내, 그리도 목 늘어지게 바래는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주시든지. 맨날 그놈의 어이어이 초상치는 장면만 그래 연거푸 보여줘서 뭔 재미냐고. 귀신이 정말 귀신같은 귀신이 아니라 바보귀신인 모냥이다하고 혼자 피식 웃으면서 간밤의 눈물바람을 뭉개어보려하긴 하는데,
혼자 일요일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도돌아올까 고향 간 김에 하룻밤 자고 넉넉히 돌아올까 짧은 산수로 갑자을축하며 앉았던 생각을 바꿔서 그래도 며느리랑 손녀들도 대동해서 오마니 산소앞에 재롱이라도 떨고 오면 지리산 자락에 혼자 누워 늘 적적한 어머니 심사가 조금 뜨시게 되실라는지 궁리가 새로 분분하다.  
혼자 가거나 다 가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어쨌든지 성묘는 하러 갈 생각이지만 간밤 꿈때매 그렇기도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내사 싱숭생숭 별로 반갑지도 않고 기분이 얄궂고 그렇다.

설 연휴, 추석 연휴, 길이야 삼수갑산으로 미어터지든지 말든지 결사적으로 고향가시는 분들,
그리고 아직까지 갈 고향이 남아 있는 분들은 위로 삼대 내리 삼대 복을 지었거나 받았거나. 
쪼글쪼글 연로하셔서 뜨신 정밖에 안남았을 어머니가 목 늘이고 기다리시는 분들은 좋겠소.
그래 그 남아있는 고향 가시거든, 그래서 몹시 닭살만 아니시라면 이번 추석에 백줴 어마이 한 번 꼭 보듬어 보시고
어마이 볼태기에 뽀뽀도 한 번 하시고...  
뭐 어쨌거나 사돈팔촌 다 모여서 벅적거릴 수 있는 설이며 추석이며 그거,
때때로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때도 없지는 않지만, 조선 사람한테는 질긴 심줄이지.
아주 굵고 질긴 고래심줄이지.  


2005.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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