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그럭저럭한 추억들은 지리산 아래 마을의 큰집이 있던 시골이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시골이 참 싫었다.
전기불도 안들어오고 해만 지면 완전히 아둑시니..
마른 흙먼지 위에 멍석 깔고 앉아서 먹던 투박한 음식에다
어쩐지 거기만 가면 몸에 뭐가 나서 지독하게 가려웠던 기억.
어른들은 아마도 물이 맞지 않아 그런가보다 했었지만
이유가 어쨌든 그 새빨갛게 약이 오른 환부를 피가 나도록 긁어대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겨울이야 뭐 그럭저럭 지낼만 했었지만
벌레와 모기와 땡볕... 그리고 끈적이는 목덜미와 따분하기 짝이 없던 매미 소리와
그리고 뜨뜻미지근 맛없는 싱거운 과일과 끝없이 지루하던 초록색 풍경의 여름은...
하기야 거기가 어디든 여름은 지금도 싫지만.
이유가 어쨌든 나는 내 발로 시골로 걸어 들어와 살고 있다.
무슨 고집인지
이 끝없이 지루한 녹색 풍경 속에서 아이들 얼굴 새까맣게 태우면서...
며칠 전에 쳐서 긁어 두었던 풀을 태웠다.
우습지만 내가 이 깡촌에 살아서 그 중 행복한 시간이 낙엽이나 마른 풀을 태우는 시간이다.
풀이 타는 냄새가 좋고 그리고 그 그림이 좋아서 그렇다.
그리고 이 일은 뭔가를 생각나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지리산 아래 마을에서 맡았던 그 냄새 때문에.
다만, 그 시간은 저녁 무렵이어야 한다.
해가 막 지고 난 뒤의 박명.
풀이 타는 연기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그 옛날 해 지고 어두운 멍석 위에서
모기에 뜯겨 가면서 땀 범벅으로 뜨거운 수제비 먹으면서 맡았던 쑥불 냄새를 기억한다.
아래 위로 팔남매의 득시글거리던 땟국 절은 사촌들을 기억하고,
지금은 풍비 박산으로 흩어진 그 형제들을 기억하고,
그 많은 사촌들을 그 작은 몸으로 다 낳아 기른 오종종 키 작은 큰 어머니도 기억하고,
말 없는 세월을 살다 저수지에 몸을 던진 큰 아버지를 기억한다.
올 해도 여름은 오고
어김없이 세월도 흘러 간다.
세월이 나를 지나 가는 것인지
내가 세월 속에 왔다 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추억은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