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연무가 끼어서 흐릿해진 내 고향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고향은 좋은 곳이다.
떠난 지 이십년에 너무 많이 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참 예쁜 곳이다. 내 고향은 진주다.
아침 일찍 잠이 깨어서 어릴 때 숱하게 올라다녔던 남강변의 망경산에 올라 내 살던 동네를 내려다 봤다. 
..... 나즈막하던 우리 동네는 어디 가고 이 무슨 낯 선 스카이라인? 내 고향은 어디 갔어?

내 친구가 살던 동네.
그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산 아래 마을의 아침. 친구야 밥 먹고 학교 가자.

늘 붙어 다니던 두 친구와 같이 셋이서 쇳덩어리 주으러 다니던 경전선 철길이다. 
나와 같이 쇳덩어리를 주으러 다니던 한 친구는 죽었다. 재작년에 죽었다. 나와 또 다른 친구 하나를 각각 남겨 놓고 저 혼자 소식도 없이 죽었다. 나쁜 놈. 
죽은 지 석달만에 묘지를 찾았던 살아있는 친구와 나는 말 없이 소주만 한 병 들이붓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었다. 죽은 친구의 엄마는 내 전화를 받고 한참을 울었다. 나쁜 놈.
어머니. 울지 마세요. 병하 대신 세배 드리러 가겠습니다. 친구 어머니에게 철석같이 약속 해 놓고는 아직 작년 세배도 미뤄놓고 있다. 나도 나쁜 놈이다. 
친구야 일어나서 학교 가자. 철길에 노란 유채꽃 피었더라. 



이 철길 따라 가면 나동 나오고 유수리 나온다. 더 멀리 가면 하동도 나온다. 아주 멀리 가면 목포도 간다.
내 친구는 나동 공원묘지에 누워 있다.

하동 가는 길. 나동도 간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막혔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삼십분 넘게 기어가다가 결국 중간에서 지방도로 빠져나왔다.
돈 밭는 톨게이트 직원이 꽃놀이 때문이라며 미안해 한다.  
궁리 끝에 갔던 길을 되돌아 오기로 했다. 얼핏 생각했던 것이 그대로 된 셈이다.
그러게 사는 건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의 내일은 별 일 없으십니까?

만장하신 여러분들의 꽃놀이 덕분에 정말 가는 길에 생각했던 그대로 그 길을 되짚어 오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예쁜 사진을 한 장 더 찍을 수 있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1022번 지방도.
예쁜 길이다. 또 가고싶은 길로 치부책에 꼭꼭 적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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