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1
01. 시인의 마을
02. 회상
03. 떠나가는 배
04. 윙 윙 윙
05. 촛불
06. 사망부가
07. 서울의 달
08. 애고, 도솔천아
09. 봉숭아
10. 북한강에서
11. 바람
12. 탁발승의 새벽 노래
13. 우리는
14. 장서방네 노을
15. 하늘 위에 눈으로
16. 들 가운데서
17. 서해에서
18. 사랑하는 이에게 3

CD. 2
01. 실향가
02. 양단 몇 마름
03. 고향집 가세
04. 사랑하는 이에게 2
05. 인사동
06. 한 여름 밤
07. 나 살던 고향
08. 저 들에 불을 놓아
09. L.A. 스케치
10.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11. 92년 장마, 종로에서
12. 정동진 1
13. 건너간다
14. 5.18
15. 수진리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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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은 이 음반의 1집에 실린 노래들을 사춘기적 값싼 감상의 소산이라 했다 한다.
"우리의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 보이는 불빛처럼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없죠. 그런데 정태춘은 달라요. 위로는 무슨 위로냐, 뭔가를 바꿔야한다는 거죠"
이 음반에 담긴 그의 아내 박은옥의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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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말마따나 사춘기 적 유치한 감상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 성숙한들
어찌 속 깊은 아픔을 품어 간직할 줄을 알겠으며
당신의 지난날 그 '값싼 사춘기적 감상'의 물을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하며 마셨고
지금도 즐겨 마시고자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렇다면 당신의 잣대로는 갖다 내 버려야 마땅할 값싸고 유치한 감성의 소유자일 뿐인가. 

나도 당신의 노래를 아직 누구의 노래보다도 더 좋아하고 즐겨 부르지만
언젠가 제 스스로 자신의 옛 노래들을 값싼 감상이라 폄하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나 또한 그 때 부터 그대를 처음보다는 값을 덜 치기로 작심했었다.

나도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으며, 목청껏 따라 불러 보며, 시큰해지는 콧날을 비비기도 했지만
그 캄캄하던 칠십 년대 후반 포장마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을 처음 들으면서 받은 충격에 어찌 비할 것이며
思亡父歌가 내게 집어 던진 만장 쪼가리에 묻은 나와 내 아버지의 남루한 삶의 질곡에 비하겠는가.

그런가? 날더러 개인주의자라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모르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그대는 가슴팍이 텅 빈 허깨비의 군상들이 부르짖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과 자유만 소중한 사람이든지.

나 또한 그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이 가위질을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뚝 솟은 깃발’이 ‘푸른 하늘 구름’으로 바뀌었었다는 것을 뒷날에서야 알았고
그 깃발을 되찾기 위해 그대가 힘들게 싸워 온 이야기를 보고 들어서 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가치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뚝 솟은 깃발이 오르기 전에 먼저 알고 즐겨 불렀던  푸른 하늘의 구름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고 또 우뚝 솟은 깃발이 펄럭일 푸른 하늘 또한 반드시 필요한 배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주인은 당신이지만
그 노래를 듣고 사랑할 자유는 우리들에게 남겨 놓았어야 했다는 이야기지.

굳센 팔다리의 투사들도 때로는 뜨거운 가슴을 쥐어뜯으며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 온 세월이 겨워 서산에 지는 노을을 아파할 줄도 알았어야 했거든.
그렇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 투사들은 살 냄새에 땀 냄새며 입 냄새 고약한 지치고 가여운 이웃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정치 사회적 구도의 완성만을 위해 달리는 정치적 도구들일 뿐이라는 말이 되겠지.

세상은 투사들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 그리 되어서도 안 되고.
때로는 힘차게 달리는 다리도 있고 부르쥐는 주먹도 있어야 하지만
그 시각에도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어야 하고
뱃속에는 냄새나는 음식물 찌꺼기도 더러더러 채워 놓아야 힘이 생기는 법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대가 사춘기적 값싼 감상이라고 내 던진 그 노래로 젊은 날을 적잖이 적셔 온 그런 사람들이라야 만이
그대가 지향해 마지않는 멋진 투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지.
또,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이웃과 세상은
그것을 가슴이 터져라 품어 본 사람만이 그것을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될 듯한데
그 또한 그대의 생각은 어떤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던져 놓았으면 그것으로 그대의 소임은 끝이다.
그 뒤의 그대의 행보가 투사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그것은 그대의 판단이지만
그대가 이미 세상 사람들의 손에 던져 준 그것들을 차갑게 부정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보듬어 마지않는 많은 이들의 작은 가슴을 보듬어 품을 아량이라고는 없이
그렇듯 값없이 걷어 차버린다면 그대가 진정 바꾸고자 하는 세상의 의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대의 지난날을 부정하고 폄하한다고 해서 그대의 앞날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자신의 과거를 못내 잘라 내 버리고 싶다면 그대는 앞만 보고 그대의 갈 길을 가라.
그러나 지난날의 정태춘은 우리에게 남겨 두고 가라.
지난날의 그대에게 보냈던 우리들의 사랑을 그런 야멸차고 싸가지 없는 말로 배신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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