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리

어느날 밤에 흰소리들

매구씨 2024. 5. 20. 23:11

'결사적으로 유쾌하게'

이십대 이후의 내 좌우명이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좌우명이 저꼴이라 그런지 나는 그다지 유쾌하게 살지는 못했다.  좌우명이니 가훈이니 금언이니 이념이니 뭐 간판처럼 내 걸어 놓은 이따위 것들은 대체로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몸부림이나 얼굴 가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생이 그렇지 못한 꼴이니 꿈이라도 꿔보겠다는 그런 거야. 그러게 안되는 걸 억지로 만들려다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자세는 망가지고 그렇게 가짜배기에 싸구려가 돼 가는 거지. 그래도 그렇게 꿈꾸며 살고싶기는 하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만화같이 살아보는 거 안될까? 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도무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이는 별종이라고? 맞아. 나는 몽상가다. 알고 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내가 몽상가라서 니가 불편한가? 일생을 내 뒷다리를 걸면서 훼방질에 지적질에 죽어라 망해라 저주를 일삼던 지긋지긋한 인간들. 숨좀 쉬고 살자고 비명을 질렀더니 우정이랍시고 사랑이랍시고 송곳구멍같은 뻔한 소리만 지껄이던 인간들.  

어제도 또 어제도 말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나쁜 놈들이 더 많다고. 당연하지. 세상은 도덕책이 아니니까. 그러니 택도 없이 내 앞에 서서 턱 치켜들고 공자왈 맹자왈 하지 말 것. 하지만 그 나쁜 놈들도 지 세상을 살겠다는데는 나도 이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일 것이고. 세상이 내 것이 아니니 부디 각자 쪼대로 살 뿐이다. 그러니 너는 턱없이 내게로 다가와 나를 찌르지 마라. 나를 찌르지 않으면 내가 너를 찌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요즘은 겁도 많아져서 젊었을 때처럼 별로 사납지도 않아요.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먼저 물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먼저 놓지도 않으니까 조심해. 오래 참는다고 해서 끝내 참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나는 다툼이 귀찮을 뿐이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해서 도망 갈 생각은 없어. 가만 놔두면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사라질거야. 나는 내 낙원을 지켜야 하니까. 손바닥만한 낙원일지라도.

그래, 뭐, 떠도는 말 중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있더라. 꽤 근사해 보이는 말이기는 하다만, 있어보이는 말씀은 거기까지만. 나는 내 낙원을 찾아 도망 친 거야. 그 아우성 악다구니 속에서 굳이 불편한 낙원을 만들 생각도 자신도 없어서.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이유로든 내가 당신을 거짓으로 속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나를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참지 않거나 버릴 것이니까. 니가 누구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너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으면서 가증스러운 혓바닥을 꼬고 말장난 하는 너를 용납하지도 않을 거야. 너는 결국 내 편이 아니거든. 돌아 올 생각도 없잖아?  나는 너를 고쳐 쓸 생각이 없어. 니가 누구든.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사람과의 관계도 상거래와 똑같은 거야. 내가 받은 만큼 니한테 지불할 것이고 너 또한 나한테 그래야 해. 너나 나나 가치가 없는 곳에 지불을 계속할 필요는 없겠지? 가끔씩 끝없이 지불만 하는 경우도 있겠지. 그건 니가 나한테는 그만큼 비싼 몸이라 그런 거야. 그러니 너는 그냥 받으면 돼. 부담스러워 할 것 없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나도 본전 생각을 하게 되겠지. 지불하고 싶은 만큼씩 지불하고 사는 거야. 관계는 장신구 같은 거야. 가치가 깨지면 관계도 끝장 나는 거지. 어때, 단순하지?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살만큼 살아봤으니 이제는 한 시라도 견디면서 살지는 않을 생각이야. 남의 눈으로 사는 너희들처럼 남의 생각과 판단으로 내 머리를 채우면서 살 생각은 없어. 나한테는 내가 제일 먼저 소중해. 그럼 안녕.